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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chool of Ath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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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June 2015


The School of Athens 

라파엘로가 “아테네의 학당”에 자신의 라이벌 미켈란젤로를 그린 까닭은?

산치오 라파엘로(Sanzio Raffaello, 1483-1520)

전 세계 카톨릭 신자들의 성지인 바티칸 산피에트로성당(성베드로성당) 이곳의 ‘서명의 방’에는 라파엘로가 그린 프레스코 벽화 네 점이 있다.

라파엘로를 세계적인 화가로 만든 작품이다.

라파엘로가 25살때, 로마 교황 율리우스 2세 명령으로 각각 ‘신학’, ‘법학’,’철학’, ‘시학’을 나타내는 네 개의 벽화를 그린다.

아버지가 궁중화가이긴 했지만 젊은 나이에 비해 파격적인 일이였다. 

그것은 이 성당의 건축을 맡은 르네상스 대표적인 건축가 도나토 브라만테의 추천으로 이루어졌다.

이 벽화를 3년 만에 완성했는데 그 중에 가장 높이 평가받는 것이 ‘철학’을 상징하는 “아테네의 학당(The School of Athens)” 폭 80미터짜리인 이 그림에 아테네 학당에 모인 철학자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아테네학당(School of Athens), 프레스코 벽화, 579.5x823.5cm, 로마 바티칸의 스텐차 델라 세나투라

가운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등 54명의 인물이 표현되어 있다.

하늘을 향해 오른 손을 들고 있는 플라톤.

그의 저서 “티마이오스 (Timaeus)”를 들고 추상적, 논리적 철학으로서의 정신적 이데아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듯 하다.

플라톤의 모델은 라파엘로가 존경한 스승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오른쪽은 플라톤 이데아론과는 달리 현실세계를 중시한 질료론을 설파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의 저서 “니코마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를 들고 손을 현실을 의미하는 앞을 향하게 하고 자연과 생물의 관찰을 중시하는 현상적, 경험적 철학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듯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델은 미켈란젤로이다.

앞머리가 벗겨지고 들창코인 소크라테스(Socrates)가 사람들에게 의문을 갖고 끊임없이 분석해 가는 것이 참된 진리에 도달한다는 것을 진지하게 설파하고 있다.

그와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군인같은 인물은 소크라테스에게 감명받았던 알키비아데스(Alcibiades).

그리고 마케도니아 왕이요 아리스토텔레스 제자인 알렉산더 대왕이 소크라테스 강연 중 딴 곳을 보고 있다.

산술과 음악에 능통했던 철학자로 기하학에 관한 그의 정리를 ‘하모니의 잣대’를 한쪽 다리를 괴고 설명하고 있는 약간 대머리의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0-500).

바로 옆에서 그에게 칠판을 내밀어 보이는 사람이 그리스의 철학자 아낙사고라스이다.

주변에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에피카르모 아르키타스(Archyta of Tarentum) 등 피타고라스의 제자들

바로 뒷쪽에 여성이 있는데,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 그녀의 저서는 남아 있지 않다.

그 앞에 노란색상의에 푸른 망토를 걸친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 (B.C.5세기).

존재의 철학자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그의 사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립하는’존재하는 것’

그 뒤에 살이 찐 체구에 포도잎 면류관을 쓰고 있는 에피쿠로스 (B.C. 341-270).

행복이란 정신적 쾌락을 추구한다는 ‘쾌락설’을 주장한 철학자. 금욕을 강조한 스콜라 철학과 비교된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한탄한 우울한 철학자

오른쪽에 사색의 즐거움에 깊이 잠겨 있는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Heracleitos, B.C. 535-475)

대리석 탁자에 기댄 채 한 손으로 얼굴을 괴고 종이에 글자를 적고 있다.

이 인물의 모델은 외모에 관심이 없는 젊은 미켈란젤로이다.

금욕의 실천을 강조하고 명예와 부귀를 천시했던 견유학파 디오게네스 (Diogenes, B.C. 412-323).

세상이 혼탁하여 누가 진정 의인인지 몰라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녔으며 알렉산더대왕이 찾아와 가르침을 원하자 햇빛을 막지 말고 옆으로 물러날 것을 요구한 기인. 알렉산더대왕 대관식에 초청되었으나 참석을 거부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허리를 굽혀 캠파스를 돌리고 있는 유클리드 (Euclid, B.C. 3세기) 당시의 예술가로 베드로 성당을 설계한 브라만테가 모델이다. 그 제자가 열심히 보고 있다.

유클리드 뒤에 등을 보이고 지구의를 두 손으로 들고 서 있는 프롤레마이오스 (Claudios Ptolemaeos).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한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

별이 반짝이는 천구를 한 손으로 받쳐든 조로아스터(Zarathushtra B.C. 628-551). 그 오른쪽에는 후배 화가인 소도마(Il Sodoma).

프롤레마이오스와 소도마 사이에 검은 모자를 쓴 라파엘로 그도 이 현장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리고자 하는 인물을 현존하는 모델을 사용한 예가 있는 데 이는 두 사람의 업적을 동시에 기리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라파엘로는 자신보다 불과 8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 미켈란젤로를 모델로 삼았다.

그 이유는 라파엘로가 산피에트로 대성당에 벽화를 그리고 있을 때 근처의 시스티나성당에 미켈란젤로가 천장화를 그리고 있었다.

라파엘로가 우연히 그 작업중인 천장화를 보게되는데, 그 엄청난 규모와 힘찬 붓터치, 그리고 오묘한 색감에 감동했다고 한다.

그 박진감 넘치는 그림에 압도되고 비록 자신과 라이벌 관계였지만 천재적인 미켈란젤로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천재의 반열에 끼고 싶었던 모양이다.

오른쪽 귀퉁이에 자신을 표현한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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