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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thera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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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uly 2015


Logotherapy

빅터 프랭클

빅터 프랭클과 삶의 의미..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로고테라피의 창시자

“존재 자체만으로 세상을 정당화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찬사를 듣는 빅터 프랭클”

“9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전 세계를 세 바퀴나 돌면서 강의와 창작열을 불태울 만큼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빅터 프랭클”

빅토르 에밀 프랑클(Viktor Emil Frankl, 1905년 3월 26일 빈 – 1997년 9월 2일 빈)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태인으로 2차 세계대전 때 유태인 강제수용소인 아우슈비츠에 갇혔다가 살아남았다.

그는 삶의 의미는 미래의 목표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믿었기에 지옥 같은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3년이라는 세월을 꿋꿋이 견뎌낼 수 있었던 로고테라피(logotherapy), 즉 의미치료(의미요법)의 창시자입니다.

로고테라피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은 정신요법 제3학파라 불리는 로고테라피학파의 중심이론으로, 말 그대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독특한 치료기법입니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인간의 욕구를 다룬 이 이론은 한마디로 의미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다루는 심리치료 방법입니다.

의미있게 산다는 것: 그 존재만으로 빛났던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

늘 먹는 것이 문제다. 매끼 뭘 먹어야 하는지 궁리해야 하는 것도 귀찮지만, 초를 다툴 만큼 바쁘거나 전혀 식욕이 없을 때도 꼭 끼니를 챙겨야만 되는 것이 참 따분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먹는 즐거움을 빼놓는다면 삶이 또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싶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먹고 싶을 때만 먹을 수 있거나, 아니면 필요에 따라 알약이나 캡슐 하나 꿀꺽 삼키는 것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탈이 나거나, 다른 어떤 이유로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할 때를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 그만둬야지….하고 반성도 해본다.

그러고 보니 아주 하찮은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끌려와 10년 가까이 매일 강도높은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운좋게 다른 날보다 한 그릇 더 얻은 귀리죽을 마치 경건한 의식이라도 치르듯 먹는 모습을 세세하게 묘사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주인공 슈호프가 떠오른다.

이렇듯 누군가에게는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일 수 있는 한 끼니 한 끼니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절대적인 의미이자 조건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 그저 주어진 복을 감사하게 여길 일이다.

결국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어떤 자세로 삶을 맞느냐에 따라 남들이 보기엔 죽지 못해 사는 삶 같을지언정 당사자에게는 의미있는 삶이 될 수도 있고, 또 반대로 전혀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라 한들  본인은 죽지 못해 사는 무의미한 삶이 될 수도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더더욱 무의미한 삶이 아닌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 싶다. 

빅터 프랭클 로고테라피, 즉 의미치료(의미요법)의 창시자

1942년, 빅터 프랭클은 고향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동북부로 가는 기차 안에 있었다. 같은 기차를 탄 1,500명의 승객들은 아무도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프랭클이 탄 기차칸에는 80여명이 있었다. 기차 안은 몹시 붐볐고, 사람들은 짐꾸러미며 손에 들고 있던 소지품 위에서 잠을 청해야만 했다.

답답한 며칠이 지났다. 기차는 밤낮으로 달려 여러 개의 도시를 지났고, 광활한 들길이며 야트막한 산 옆을 스쳐갔다. 그렇게 멈추는 법 없이 마냥 어디론가 달려갈 것 같았던 기차는 어느 날 이른 아침 어떤 역에 닿았다. 잠에서 덜 깬 사람들은 눈을 부비며 일어나 창문 밖 풍경을 보았고, 그 순간 아무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곳은 바로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였던 것이다.

로고테라피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이 3년간 끔찍한 세월을 보냈던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 날이 밝자 점차 수용소의 가시철망과 감시탑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모습 자체부터 이곳이 도착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죽음만이 유일한 도피처인 것 같은 고문과 핍박, 굶주림과 잔혹함이 넘치는 이곳에서 그는 무려 3년을 살아야 했다.

37세 때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던 프랭클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공포감에 사로잡혔지만 그것은 차라이 나았다. 우리는 차차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공포에 익숙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기차문이 열렸다. 승객들은 남녀 두 줄로 서서 플랫폼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렬 앞에는 SS(나치 친위대)가 서 있었다. SS대원은 사람들을 보며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가라고 지정했다. 나중에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왼쪽에 서 있었다. 마침내 프랭클의 차례가 되었다. SS대원은 그를 한참 쳐다보더니 오른쪽을 가리켰다.

저녁이 되자 그는 함께 온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서 옆에 있던 포로에게 물었다. 그 사람이 가리킨 곳은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있는 굴뚝이었다. 프랭클과 함께 왔던 승객들 가운데 1,300명이 이미 처형을 당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평생 동안 연구한 결과를 출간하기 위해 썼던 초고를 압수당했다. 가슴아픈 일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목숨을 지켜나가는 것이 더 중요했다. 지옥 같은 하루하루. 사는 게 아니라 무조건 견뎌야 했던 시간들이 지났다.

마침내 전쟁이 끝난 것이다. 프랭클은 다시 비엔나로 돌아왔고, 폴리클리닉(Polyclinic) 병원의 신경정신과 과장이 되었으며, 비엔나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리고 그는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연구를 시작해서 로고테라피, 즉 의미치료(의미요법)라는 이론체계를 세웠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있다.

프랭클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이 아니라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을 포함한 고통과 모든 상황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고통이지만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야말로 곧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루하루 가슴을 죄는 수용소의 지독한 공포와 극한적인 고통 속에서 그는 살아야야 하는 의미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이 의미는 그대로 자신의 독자적인 학문으로 자리매김했다.

“미래를 보아야 살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다.”

지옥 같았던 죽음의 수용소 생활을 끝내고 세계가 인정한 신경과 권위자가 된 프랭클의 말이다.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가는 포로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미래가 있다는 것도, 어떤 목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모두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삶에 대한 신념이 없는 사람은 삶을 붙들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하루하루 시들어갔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가 ‘삶의 의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극심한 신체적 고통과 추위, 배고픔의 공포메 떨고 있을 때였다.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을 것 같던 바로 그 순간, 그는 억지로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따뜻하고 편안한 강의실에서 포로수용소에 대한 심리학 강의를 하는 상상이었다.

그는 삶의 의미로 미래를 보았고, 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그는 미래를 자신이 그렸던 이미지대로 생활할 수 있었다.

니체는

“왜 사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거의 모두 알 수 있다”

고 말했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누구도 뺏을 수 없으며, 스스로 이것을 포기했을 때 삶의 끈을 놓게 된다.

어떤 위대한 업적도 우연한 행운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단순히 운으로 성공한 사람의 끝은 결코 길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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