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대 에밀 피셔의 자물쇠와 열쇠에서 2050년의 완전 자율 발굴 시스템까지, 한 세기 반에 걸친 계산 약물설계의 지층을 한 장(章)의 폭으로 종단한다.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두 얼굴을 동시에 본다. 일자리를 앗아갈 것이라는 불안과, 세상을 크게 나아지게 하리라는 확신이 그것이다. 저자들은 인공지능을 두고 양날의 검(two-edged sword)이라 부르는데, 이 표현이야말로 이 장 전체의 정조(情調)를 미리 일러준다.
인공지능이란 인간 지능을 컴퓨터로 모사하는 일이다. 그 절차는 네 마디로 요약된다. 데이터를 모으고, 그 데이터를 다루는 규칙을 세우고, 잠정적이거나 확정적인 결론에 이르고, 스스로를 교정한다. 기계학습(ML)과 심층학습(DL)은 인공지능의 하위 범주다.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기계학습은 시스템이 데이터로부터 배우게 하는 일이고, 심층학습은 그보다 한층 정교한 구조로 모델을 세우는 기계학습의 부분집합이다.
저자들이 인용하는 비유가 흥미롭다. 전문가 시스템을 비롯한 전통적 인공지능 기법은 레지던트 1년차 의대생과 닮았다. 의학의 일반 원칙을 익혀 새로운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반면 기계학습은 레지던트 과정에서 의사가 겪는 바로 그 방식으로, 데이터 자체에서 규칙을 길어 올린다. 원칙이 먼저인가 사례가 먼저인가 — 이 오래된 인식론의 갈림길이 실은 알고리즘 설계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보건 데이터의 디지털화는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빠른 발전에 힘입어 근년 들어 한결 수월해졌다. 다중오믹스 데이터, 임상 데이터, 행동·환경·투약 데이터, 그리고 생의학 문헌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 도구가 다룰 수 있는 자료의 폭은 이미 인간의 통람 능력을 넘어섰다. 컴퓨터 비전, 음성 인식, 자연어 처리가 모두 같은 흐름의 수혜자다. 정밀의료를 겨냥한 의약화학에서 인공지능이 하는 일은 결국 세 가지로 모인다. 빅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자의 거동을 예측하고, 의사결정을 앞당기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이 신약 발굴 과정을 바꾸어놓은 자리는 여러 곳이지만, 저자들이 앞세워 정리한 것은 이 세 갈래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프로테옴·메타볼로믹·게놈 자료를 훑어 잠재적 치료 표적을 찾는다. 이 모두가 새로운 표적을 이해하고 특징짓는 데, 그리고 질환을 일으키는 경로를 드러내는 데 기여한다.
기계학습 모델은 화합물의 생물학적 활성을 예측해 유망한 히트를 가려내고 리드를 다듬는 일을 한결 수월하게 만든다.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과 변분 오토인코더(VAE)는 특정 성질을 갖춘 신규 분자를 만들어내는 데 쓰였고, 이렇게 얻은 분자는 강화학습으로 다듬어져 치료 효능은 높이고 표적 외 영향은 줄인다.
약물이 표적과 어떻게 상호작용할지를 예측하고, 결합의 정도와 이상반응을 추정함으로써 후보 치료제의 선별을 앞당긴다.
답사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지층을 읽는 법이다. 아래의 띠는 이 장이 제시한 계산적 신약설계의 층서(層序)를 하나의 크로마토그램으로 펼친 것이다. 경험과 시행착오에 기대던 방식이 어떻게 데이터에 근거한 예측 모형으로 옮아갔는지, 그 이행의 결이 한눈에 잡힌다.
1950년대에 시작된 계산화학은 오늘의 심층학습과 생성 모델 구조에 이르렀다. 연구자는 이제 값비싼 실험에 돈을 쓰기 훨씬 전에 분자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할지를 컴퓨터로 모사할 수 있다. 이 이행 하나로 신약 발굴은 더 빨라지고, 더 감당할 만해졌으며, 성공 확률이 높아졌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신약 설계에 결정적 영향을 준 두 시스템 가운데 하나는 질량분석 해석기였고(DENDRAL), 다른 하나는 아예 광물 탐사용이었다(PROSPECTOR). 분야의 진보가 언제나 그 분야 안에서만 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 계보는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저자들이 그린 그림 1.1은 왼편에 지나온 길을, 오른편에 갈 길을 나란히 세운 두 개의 화살표다. 2025년까지는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설계로, 2050년까지는 환자 개개인에 맞춘 신속한 설계로 나아간다는 전망이 그 아래 붙어 있다.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화학물질 하나가 착상에서 임상 적용까지 가는 길은 체계적이고 여러 단계를 밟는 절차다. 저자들은 이를 다섯 마디로 끊어 보인다. 귀납과 연역이 번갈아 작동하는 이 순환 속에서 히트와 리드가 비로소 다듬어진다.
HTS, 오믹스 데이터셋, 학술 문헌, 분자 데이터베이스로부터 화학·생물·약리 자료를 확보하고 정리한다.
QSAR, 분자 도킹, 인공지능 기반 알고리즘으로 계산 모형을 만든다. 약물유사성·안전성·작용을 예측하기 위한 것이다.
의약화학과 다목적 최적화를 적용해 리드 화합물의 효능·선택성·안정성을 높이고 독성은 낮춘다.
사람에게 시험하기 전, 시험관(in vitro)과 동물(in vivo)에서 작용 방식·안전성·유효성을 확인한다.
1상부터 3상까지(때로 4상) 단계적으로 투여하며 안전성·용량·유효성·장기 영향을 평가한다. 이로써 약이 대중과 규제기관 앞에 선다.
이 장에서 가장 무거운 문단은 서술이 아니라 숫자다. 저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여기 제시된 통계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지만, 연구개발 과정을 기본만 이해해도 왜 그토록 많은 화합물이 실패하는지, 왜 약 하나를 환자에게 보내는 데 그만한 시간과 노고가 드는지가 밝혀진다.
성공하려면 막대한 자금과, 가장 명민한 과학적 두뇌와, 고도로 발달한 실험실과 기술과, 여러 방식으로 과제를 운영할 역량이 필요하다. 여기에 인내가 필요하고, 또 행운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이 대목을 이렇게 맺는다 — 결국 신약 발굴의 과정은 전 세계 수십억 환자에게 희망과 믿음과 위안을 전하게 된다고.
이론은 사례 앞에서 검증된다. 이 장이 불러 세운 시스템들은 제조·평가·진단의 세 영역에 걸쳐 있으며, 성취와 함께 한계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미덥다.
의약화학과 신약 발굴이 그토록 진보했음에도, 새 약을 만드는 일은 여전히 비싸고 더디다. 이 장은 그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신약 발굴의 첫 국면은 대개 방대한 화합물의 계산적 스크리닝이다. 목표는 세포 수준 혹은 생화학적 과정에 원하는 효과를 내는 화합물을 찾는 것이다. 1차 스크리닝에서 생화학적 분석에 양성 반응을 보인 화합물이 히트로 식별되고, 이들은 물리화학적·약리학적 성질을 평가하는 추가 시험을 거쳐 통과한 것만이 리드가 된다. 리드는 여러 차례의 생물학적 스크리닝을 거치며 정제된 뒤에야 임상시험으로 나아간다. 성공한다면 승인 약물이 되기까지 보통 12~15년이 걸린다.
전통적 방식은 수백 종의 화합물을 합성하고 시험하는 일을 요구한다. 시간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상당량의 단백질 공급과 확립된 실험실 기법이 필요해 비용도 크다. 이에 비해 가상 스크리닝은 비용 효율적이면서도 상업적으로 접근 가능한 수백만 화합물을 훑어 추가 조사·합성·구매의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다. 가상 스크리닝은 구조 기반과 리간드 기반의 두 갈래로 분류된다.
인공지능은 조기 질환 탐지에서 시판 후 분석에 이르기까지 개발의 모든 단계에서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며 신약 설계를 빠르게 바꾸어놓았다. 그러나 이 장의 결론은 기술의 찬가가 아니라 역할의 규정으로 향한다.
개인 맞춤 의료, 용량 최적화, 치료 결과 예측을 뒷받침한다. 단백질 구조 예측과 소분자 상호작용 분석으로 표적을 찾아내고, 약물유사성과 표적 외 효과까지 미리 내다보아 값비싼 실험을 줄인다.
발굴 이후로도 쓰임이 이어진다. 더 똑똑한 환자 선별, 모니터링, 추적으로 임상시험을 개선하고 약물감시와 규제 승인을 돕는다. 종합하면 발굴을 앞당기고, 비용을 낮추고, 자원을 최적화하며, 임상시험 실패를 줄였다.
생체 내 생물검정의 필요를 줄여, 희생되는 동물의 수 또한 줄인다. 의료 행정, 외과 수술, mRNA 백신, 예방적 치료, 뉴트리지노믹스로 응용은 계속 넓어진다.
인공지능 모형이 인간 연구자와 대등하거나 그를 능가하는 예측력을 지녔더라도, 인간의 직관은 여전히 없다. 기계가 내놓은 예측은 사람이 검증해야 한다. 모형은 위양성과 위음성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것이 민감도와 특이도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처방은 구체적이다. 비용을 고려한 교차계층 협설계로 하드웨어·알고리즘·모형을 통합해 자원 지속가능한 구성을 탐색하고, 사물인터넷 기기와 엣지 서버를 묶는 합의 기반 분산 학습으로 프라이버시를 지키며 데이터를 공유한다. 의료 인공지능 전용의 안정적 인프라를 두되 변화하는 규제에 부합하게 한다. 도메인 전문성의 지속가능성 문제에는 해석 가능한 자기지도학습이 답으로 제시된다.
이것이 이 장의 마지막 문장이다. 한 세기 반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한 세기 앞을 내다본 답사가 끝내 도달한 곳은 기술의 정점이 아니라 하나의 상(像)이었다. 자물쇠와 열쇠에서 시작해 가상 인간에 이르는 이 긴 여정에서, 바뀐 것은 도구이고 바뀌지 않은 것은 질문이다. 이 분자는 저 표적과 어떻게 만나는가.
정독하는 사람의 예의는 감탄만이 아니라 대조에도 있다. 원문을 읽는 동안 눈에 걸린 지점을 숨기지 않고 적어둔다. 아래는 원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인용 시 유의할 대목의 목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