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지금, 재창출인가
약을 처음부터 만든다는 것은 자연에 없던 분자를 설계하고, 그것이 인체에서 무해하면서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10년에서 15년이 걸리고 25억 달러가 넘게 든다. 그런데도 임상에 들어간 약의 88퍼센트 이상이 시장에 나오지 못한다. 실패의 이유는 대개 셋이다. 예상하지 못한 독성, 나쁜 약동학적 성질, 그리고 효능 없음. 셋 모두 후기 임상에서 드러난다. 즉 가장 비싼 단계에서 가장 나쁜 소식이 온다.
약물 재창출은 이 구조를 우회한다. 이미 사람에게 투여해 본 약, 안전성 프로파일이 축적된 약을 다른 적응증으로 옮긴다. 전임상은 짧아지고, 1상은 대개 건너뛴다. 남는 것은 2상과 3상, 곧 “이 병에 이 약이 듣는가”라는 질문 하나다. 병용요법은 다른 방향에서 같은 문제를 공격한다. 단일 약물의 효력이 부족하거나 고용량에서 독성이 나타날 때, 서로 다른 표적을 치는 약을 묶으면 각각의 용량을 낮추면서 효과는 키울 수 있다. 암, 감염질환, 항생제 내성균 치료에서 병용이 표준이 된 이유가 이것이다.
여기까지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새로운 것은 규모다. 전사체·단백체·대사체 데이터, 전자의무기록, 수천만 편의 논문, 수억 개의 화합물 정보가 축적되었다. 사람이 읽어서 연결할 수 있는 양을 이미 오래전에 넘어섰다. 기계학습과 딥러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쓸모가 있다. 복잡한 데이터에서 숨은 패턴을 찾아 약–질병 관계, 치료 반응, 상승작용을 더 높은 확신으로 예측한다.
기초 개념과 후보 발굴 워크플로 → 계산 모형의 현재 수준과 한계 → 설명가능성(SHAP·LIME·기울기 기반) → 바리시티닙 실제 사례 → 실세계 근거와 재현 가능한 지표 → 데이터 파편화를 넘는 표준·연합학습·자연어처리 → GNN·인과추론·양자컴퓨팅·적응형 AI → 윤리와 규제.
재창출과 병용요법의 기초
약물 재창출은 재배치(repositioning), 재과제화(retasking), 재프로파일링(reprofiling)으로도 불린다. 이미 다른 질환을 위해 만들어진 약에서 새 치료 용도를 찾는 일이다. 임상에서 승인된 약, 혹은 개발 중인 약의 정보와 안전성 자료를 그대로 활용하기 때문에 빠르고 싸며 실패 위험이 낮다. 1상을 통과한 약이라면 전임상 단계는 단축되고 임상 요구는 2상과 3상으로 줄어든다.
가장 오래된 성공: AZT
아지도티미딘(AZT), 곧 지도부딘은 1960년대에 레트로바이러스성 암 치료제로 개발되었다가 임상에 쓰이지 못하고 묻힌 약이다. 1980년대에 HIV가 에이즈의 원인으로 확정되자 미국 국립암연구소 연구진이 CD4+ T세포를 보호할 약을 대량 탐색했고, 그 과정에서 AZT가 시험관 내에서 HIV에 유효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몇 달 뒤 1상이 시작되었고, 2상과 3상을 거쳐 1985년 FDA가 에이즈 치료제로 승인했다. 실패한 항암제가 첫 항HIV 치료제가 된 것이다.
다만 최근 몇 년간 재창출 후보로 스크리닝되는 화합물 대다수는 역가가 낮다. 그것만으로는 새 치료제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작용기전이 서로 다른 약을 묶는다. 각각 다른 수용체나 신호전달 경로를 치면 낮은 용량에서도 상승효과가 난다. 신경퇴행성 질환이나 암처럼 두 개 이상의 유전자 변이에서 비롯되는 다요인 질환에서는 애초에 단일 약물이 통하지 않는다. 아스피린과 클로피도그렐(심근경색·뇌졸중 예방), 돌루테그라비르와 라미부딘(HIV 1차 치료)이 성공한 조합이다.
후보 발굴의 세 단계, 그리고 두 갈래 접근
- 화합물 선정 — 주어진 질환에 대한 후보 약물을 골라낸다.
- 기전 규명 — 전임상 모델에서 세포·분자·전신 수준의 작용 방식을 파악한다.
- 효능 평가 — 1상을 통과한 약이라면 곧바로 2상에서 환자군 효능을 검증한다.
첫 단계에서 길은 둘로 갈린다. 질환 지향 방식은 치료제가 거의 없는 질환을 대상으로, 계산 모형으로 그 질환과 유사한 다른 질환을 찾아 그쪽의 약을 가져온다. 표적 지향 방식은 그 질환의 새 표적을 먼저 찾고, 그 표적에 결합할 수 있는 기존 약을 스크리닝한다. 후자는 친화성 크로마토그래피나 질량분석 같은 결합 실험, 고속 대량 표현형 스크리닝으로도, 계산적 방법으로도 수행된다.
후보를 찾는 여섯 가지 방법
원문은 후보 발굴 전략을 여섯 갈래로 정리한다. 서로 배타적이지 않고, 실제로는 겹쳐 쓴다.
시그니처 기반
약과 질병 각각의 전사체·단백체·대사체 프로파일을 ‘서명’으로 삼아 대조한다. 질병에서 올라간 유전자가 약물 처리에서 내려가면(음의 상관) 그 약은 후보가 된다. 약–약 비교는 구조가 달라도 기전이 같은 약을 찾아낸다.
구조 기반
분자 도킹으로 표적의 리간드 결합부위를 탐색한다. 하나의 표적에 라이브러리 전체를 걸거나(정방향), 하나의 약을 여러 표적에 거는(역도킹) 두 방향이 있다.
유전적 연관
GWAS에서 나온 질환 관련 변이를 유전자에 매핑하고(위치·eQTL·염색질 상호작용), 베이지안 미세매핑으로 인과 변이를 좁힌 뒤 생물학적 네트워크에 얹어 표적 후보를 뽑는다.
경로·네트워크 기반
유전자 발현 패턴과 질병 기전으로 네트워크를 짜서 새 약이나 표적을 찾는다.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 모델의 네트워크 분석이 천식·알레르기비염 치료제 프란루카스트를 항바이러스 후보로 지목한 것이 사례다.
후향적 임상 분석
전자의무기록, 임상시험 자료, 시판 후 감시 자료를 그대로 쓴다. 새 연구를 하지 않고도 약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 본다. 비정형 EHR은 자연어처리로 캔다.
지식 기반
논문·리뷰·보고서를 자연어처리로 캐서 지식그래프를 만든다. 노드는 생물학적 개체, 엣지는 관계다. 무작위 보행이나 최단경로 같은 그래프 알고리즘으로 숨은 연결을 찾는다.
AUC가 높을수록 진짜 히트와 가짜를 잘 가른다. 그런데 많은 연구가 AUC를 일부러 낮게 잡는다. 거짓 히트를 검증하느라 자원을 태우느니, 진짜 히트 몇 개를 놓치는 편이 싸기 때문이다. 이진 문제에서는 AUC가 편하지만, 불균형 데이터에서는 정밀도–재현율 곡선이 더 정직하다.
AI와 기계학습이 재창출에서 하는 일
재창출에 쓰이는 AI·ML 방법은 철저히 데이터 주도적이다. 방대한 데이터에서 약과 질병 경로, 표적 분자 사이의 연결을 찾는다. 약–표적 관계를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딥러닝으로 기존 안전성 프로파일을 훑어 부작용을 예측하며, 효력이 낮거나 독성이 있을 때 새 조합을 제안하기도 한다.
데이터베이스 지형
화학 정보는 ChEMBL, chemDB, PubChem에, 질환 정보는 OMIM에, 표적 정보는 PDB나 BioLiP2에 있다. 재창출 전용 자원으로는 Drug Repurposing Hub, DrugRepo, RepurposeDB, repoDB가 있고, RepurposeDrugs는 단독요법과 병용요법 예측까지 함께 제공하는 기계학습 포털이다.
ChEMBL과 PubChem에 수백만 개의 화합물이 있다는 사실은 착시를 일으킨다. 실험적으로 검증된 생물활성을 갖춘 고품질 데이터는 그중 극히 일부다. 희귀질환과 신규 표적에는 정보가 비어 있다. 많은 약이 기존 약과 구조적으로 유사해 화학적 다양성도 부족하다. 약–약 상호작용 데이터는 대부분 암에 몰려 있고 일반 질환에는 없다. “데이터가 많다”는 말과 “쓸 만한 데이터가 많다”는 말은 전혀 다르다.
유사성 기반 접근과 그 도구들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이다. 유전자 발현 프로파일, 구조, 표적 분자, 상호작용, 경로, 부작용 프로파일 같은 특징이 비슷한 약을 비교해 새 표적을 찾는다.
- 지도학습 — 선형·로지스틱 회귀, 서포트 벡터 머신, 볼츠만 네트워크. SVM은 초평면을 세워 활성/비활성을 가르고, 볼츠만 알고리즘은 약물 특징과 잠재변수의 확률분포를 결합해 숨은 연관을 드러낸다. 정보가 충분하면 정확도가 높지만, 편향과 일반화 실패에 취약하다.
- 비지도학습 — K-평균 군집화, 주성분분석. 차원 축소와 미주석 데이터의 패턴 발견에 쓴다. 주석이 없는 데이터에서도 새로운 약–표적 상호작용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 자연어처리 — BERT, GPT, Word2Vec으로 논문과 임상 사례보고, EHR에서 의미·구문 관계를 포착한다.
- 합성곱 신경망 — 단백질 도메인 같은 공간적 특징을 추출해 리간드–수용체 상호작용을 분석한다.
- 자기지도학습(SSL) — 표지 데이터가 비싸고 부족하다는 문제에 대한 답이다. 표지 없는 화합물 데이터로 사전학습해 특징 임베딩을 만들고, 작은 데이터셋으로 미세조정한다. 잘 연구된 약물·질환의 과대표집, 잡음, 불일치를 완화한다.
병용요법: 상승작용을 계산으로 찾아내기
병용요법의 난점은 조합 공간의 크기다. 약이 n개면 쌍은 n(n−1)/2개이고, 3제 이상으로 가면 폭발한다. 게다가 상호작용은 예측이 어렵다. 여기서 딥러닝과 강화학습이 실질적 도구가 된다.
상승작용(synergy)은 두 약을 함께 썼을 때의 효과가 각각의 효과를 더한 것보다 큰 현상이다. 반대로 서로를 방해하면 길항(antagonism)이다. 어느 쪽인지 미리 알아야 조합을 설계할 수 있다.
DeepDDS — 분자를 그래프로 읽는다
SMILES 문자열을 RDKit으로 분자 그래프로 바꾼다. 원자가 노드이고 결합이 엣지다. 이 그래프를 그래프 합성곱망 또는 그래프 어텐션망으로 처리한다. 동시에 954개 랜드마크 유전자의 발현 프로파일을 다층 퍼셉트론으로 인코딩한다. 약물 임베딩과 세포주 임베딩을 결합해 완전연결층에 통과시켜 시너지 여부를 이진 분류한다. 요컨대 약의 원자–결합 지도와 유전자 활성 패턴을 겹쳐 놓고, 두 약이 서로를 북돋을지 판정한다. 어텐션 기법이 어떤 화학적 부분구조가 기여했는지 짚어 주므로 해석도 가능하다.
SANEpool — 중요한 것만 남기는 필터
DrugBank와 KEGG의 상호작용 데이터와 유전자 발현 수준을 노드·엣지 속성으로 삼아 유전자와 약물을 함께 담는 분자 네트워크를 만든다. 계층적 그래프 풀링과 어텐션 기반 점수화를 결합해 시너지 예측에 유의미한 하위 네트워크만 보존한다. 곧 ‘무엇이 시너지를 만드는가’에 집중하도록 강제하는 필터다. 그래서 어떤 경로와 상호작용이 결정적이었는지 드러난다.
DeepMDS — 2제를 넘어 다제로
심층신경망과 다중오믹스 데이터로 고차 시너지, 곧 세 개 이상의 조합까지 예측한다. 성능 벤치마킹에서 DeepSynergy를 포함한 딥러닝 모형과 GBM, SVM, 랜덤포레스트, k-최근접이웃을 모두 앞섰다.
전체의 20퍼센트를 독립 테스트셋으로 떼어 검증했고, 격자 탐색과 10겹 교차검증으로 최적화했다. 계산 평가에 그치지 않았다. 유방암 세포주 세 종(MCF-7, MDA-MB-468, MDA-MB-231)과 폐암 세포주(A549)에서 세포생존율 시험을 수행했으며, 상위 예측 조합은 임상에서 쓰이는 치료법보다 우수한 항암 효능과 강한 시너지를 시사하는 병용지수(CI) 값을 보였다.
Decagon — 부작용은 조합에서 새로 생긴다
서로 다른 경로를 치는 여러 약을 동시에 쓰는 것을 다약제 사용(polypharmacy)이라 한다. 복합질환 치료에는 자주 필요하지만 약물 상호작용 위험이 크게 오른다. Decagon은 약–단백질, 약–부작용 상호작용을 담은 다중모달 네트워크에서 그래프 합성곱망을 학습시킨다. 전체 상호작용의 심각도만 평가하는 기존 모형과 달리, 특정 약물 쌍에 특이적인 부작용, 곧 각각을 단독 복용할 때는 나타나지 않는 이상사례까지 짚어낸다.
MultiComb · MIER-MO-DQN — 환자에게 맞춘다
MultiComb는 멀티태스크 딥러닝 모형이다. 암세포의 전사체 데이터와 약물 화학구조의 SMILES 표현을 결합해 시너지와 민감도 점수를 동시에 예측한다. 특정 종양 유형이 그 조합에 반응할 가능성까지 평가하기 때문에, ‘잘 듣는 조합’과 ‘이 환자에게 잘 듣는 조합’을 구분한다. Huo 등이 제안한 MIER-MO-DQN(Multi-Indicator Experience Replay Multi-Objective Deep Q-Network)은 강화학습으로 개인별 용량 계획을 세운다. 종양 부담과 면역 반응 같은 환자별 생물학적 지표를 결합해 최적의 항암 치료 일정을 만든다. 여기에 3D 프린팅 다제 시스템이 더해지면 복잡한 다약제 요법의 시공간적 방출 제어까지 환자별로 맞출 수 있다.
설명가능성: 블랙박스라는 문제
고위험 영역에 AI를 쓸 때 늘 나오는 말이 블랙박스 문제다. 앙상블 모형은 정확한 예측을 내놓지만 그 예측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보여 주지 않는다. 다른 분야라면 참을 수 있다. 약물 재창출은 그렇지 않다. 생물학적 위험이 크고 사람의 건강이 걸려 있다. 틀렸거나 설명되지 않는 권고는 임상 실패, 신뢰 상실, 나아가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 그래서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는 모형의 예측을 신뢰할 수 있는가.
설명가능성은 규제 승인과 윤리적 배치의 요건이다. 규제 당국은 예측 뒤의 기전을 이해해야 안전성과 효능을 평가하고 재현성을 검증할 수 있다. 평가 기준은 둘이다. 충실도(fidelity)는 설명이 모형의 실제 의사결정 과정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잰다. 타당성(plausibility)은 그 설명이 인간의 이해, 특히 도메인 전문가의 이해와 얼마나 맞는지를 잰다.
어떤 모형이 학습 데이터에 편향된 문헌 상관관계만 보고 약과 질병을 연결한다고 하자. 설명가능한 프레임워크는 그 결함을 드러낸다. 연구자는 모형을 고치거나 그 예측에 표시를 달 수 있다. 특정 약이 특정 질환에 도움이 된다는 예측은, 모형이 뒷받침하는 경로와 유전자 발현 패턴과 알려진 단백질 상호작용을 함께 가리킬 때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다. 설명가능성은 AI와 생물학적 타당성을 잇는 다리다.
두 종류의 모형,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상충
내부 논리가 투명한 모형
결정트리 — 각 노드와 분기가 곧 추적 가능한 결정 논리다.
규칙 기반 — 사전 정의된 if-then 규칙. 설명력은 최고지만 유연성이 없다.
선형·로지스틱 회귀 — 각 입력 특징의 계수가 곧 기여도다.
성능이 높고 불투명한 모형
심층신경망과 앙상블(랜덤포레스트, 그래디언트 부스팅). 고차원 데이터에서 단순한 알고리즘이 놓치는 미묘하고 복잡한 패턴을 학습한다. 앙상블은 여러 모형의 결정을 집계해 견고성을 높이지만, 그 대가로 단일 예측의 추적 가능성을 잃는다.
정확도와 해석가능성 사이에는 끈질긴 상충이 있다. 고성능 블랙박스는 재창출 과제에서 더 나은 결과를 내지만 불투명하고, 단순한 모형은 명료하지만 복잡한 생의학적 현상을 과소적합할 위험이 있다. 이 긴장을 다루는 일이 신약개발 AI의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해석가능성을 높이는 세 갈래 기법
- SHAP (Shapley Additive exPlanations) — 각 특징이 예측에 기여한 몫을 계산한다.
- LIME (Local Interpretable Model-Agnostic Explanations) — 복잡한 모형의 개별 예측을 설명하기 위해 국소적으로 단순한 대리 모형을 세운다.
- 순열 중요도 — 특정 특징 값을 무작위로 섞었을 때 예측 오차가 얼마나 커지는지로 중요도를 잰다.
- 반사실적 설명 — 어떤 조건이 달랐다면 다른 예측이 나왔을지를 제시한다.
- 어텐션 기법 — 모형이 예측 과정에서 어떤 입력을 주목했는지 보여 준다. 생의학 문헌의 특정 단어이거나 분자의 특정 영역이다.
- 기울기 기반 — 현저성 지도(saliency map)와 적분 기울기(integrated gradients)를 생성한다. 기준 입력에서부터 기울기를 누적해 특징 중요도를 더 견고하게 결정한다.
- 특징 시각화 — 합성곱망에서 분자 구조나 영상 데이터의 어떤 패턴·모티프가 학습되었는지 드러내 생물학적 해석을 돕는다.
단백질–단백질 상호작용 네트워크 같은 복잡한 생물 시스템을 모형화하는 데 그래프 신경망이 쓰인다. 그러나 GNN은 구조가 독특해서 설명가능성 연구가 아직 초기 단계다. 이 장이 남겨 둔 공백이기도 하다.
사례 연구 — 바리시티닙은 어떻게 발견되었나
코로나19 유행 중, 사이토카인 폭풍과 면역 과활성을 동반한 중증 사례를 다룰 치료제가 급했다. BenevolentAI는 지식그래프와 자연어처리를 결합한 파이프라인으로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 바리시티닙을 지목했다. 일곱 단계였다.
- 데이터 집적 — 수백만 편의 논문, 약물 데이터베이스, 질병 경로, 단백질 상호작용 네트워크, 임상시험 자료를 NLP로 캤다.
- 지식그래프 구축 — 노드는 약물·단백질·경로·질환, 엣지는 관계(생물학적 기전, 단백질 상호작용, 약–표적 연관)다. 각 관계에는 문헌과 데이터베이스의 근거에 따라 신뢰도 점수를 부여했다. 시스템 수준의 지도가 만들어졌다.
- 그래프 임베딩과 표현학습 — 그래프 임베딩 알고리즘과 GNN으로 각 노드를 저차원 벡터로 변환했다. 변환 후에도 연결 방식과 관계 유형은 보존되므로, 서로 다른 약을 역할과 생물학적 연결로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 그래프 추론과 기전 필터링 — 코로나19 병인과 관련된 기전을 가진 화합물을 우선순위화했다. JAK-STAT 신호전달 경로, 그리고 바이러스 진입에 관여하는 AAK1과 GAK 단백질에 작용하는 약물로 초점을 좁혔다.
- 설명가능성 적용 — SHAP은 JAK1/JAK2 억제와 AAK1 단백질 간섭이 바리시티닙 고순위의 주된 이유임을 드러냈다. LIME은 특정 염증 유전자가 활성화된 환자에서 이 약이 가장 잘 듣는다는 국소 모형을 만들어, 수혜 환자군을 추정하게 했다. 기울기 기반 기법은 JAK-STAT 모티프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 후보 점수화와 인간 개입 반복 — 관련성과 승인 상태로 순위를 매겼고, 이미 승인된 약이었던 바리시티닙이 1위였다. 전문가가 결과를 재검토했고, 그래프 시각화로 알고리즘이 만든 연결을 확인해 생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후보를 걷어냈다.
- 검증과 영향 — 실험실과 환자에서 검증되었다. 렘데시비르와 병용했을 때 코로나19에 효과가 있음이 확인되었고, FDA는 염증 완화와 회복 촉진을 위한 긴급사용승인을 내렸다.
증명한 것: 지식그래프 기반 재창출은 실제로 규제 승인까지 도달할 수 있다. 설명가능성 도구는 장식이 아니라 임상 검토자를 설득하는 실질적 근거였다.
증명하지 못한 것: 이 성공은 팬데믹이라는 극단적 조건에서, 인간 전문가가 여섯 번째 단계에서 개입한 뒤에 나왔다. ‘인간 개입 반복’을 빼고 이 사례를 인용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
실세계 근거의 역할
계산적 방법은 실세계 데이터(RWD)와 결합할 때 힘을 얻는다. 환자 레지스트리, 보험 청구자료, 전자의무기록, 웨어러블·디지털 기기 데이터가 그것이다. 이를 분석해 만들어 낸 실세계 근거(RWE)는 약효와 환자 안전, 가능한 병용 조합을 실제 환자 경험에 근거해 이해하게 한다.
- Sirota 등(2011)은 유전자 발현 시그니처 매칭에서 실험 성공률 70퍼센트를 기록했다.
- Napolitano 등(2013)은 표현형 유사성 네트워크로 희귀질환 재창출 후보를 찾아, 검증된 임상 적응증 대비 정밀도 0.85를 얻었다.
- Choi 등은 26만 3천 명의 환자 데이터에 GRU를 적용해 심부전 위험을 예측했고 AUC 0.895를 기록했다. 기존 모형의 0.867보다 높다.
EHR에는 영상, 임상 기록, 검사 결과, 진단명, 처방이 정형·비정형으로 섞여 있다. 종단적 자료라서 질병 진행을 추적하고 동반질환을 발견하며 치료 요법을 개인화할 수 있다. 순차 데이터 모형화에는 RNN, LSTM, GRU가 쓰였고, 최근에는 BEHRT 같은 트랜스포머 기반 모형과 시간적 합성곱망(TCN)이 더 나은 정확도와 긴 병력 처리 효율을 제공한다. DeepSurv 같은 생존분석 도구와 강화학습 기반 의사결정 프레임워크에도 연결된다. 환자 반응에 따라 시간에 걸쳐 조정해야 하는 항암 요법 같은 복잡한 치료 계획에 특히 유용하다. 오토인코더와 어텐션 기법은 예측에 영향을 준 바이오마커나 임상 사건을 식별해 해석가능성을 높였다. 책임과 투명성이 필수적인 임상 환경에서 이 해석가능성은 선택이 아니다.
환자유래 오가노이드 — 예측과 임상 사이의 다리
AI가 만든 예측을 실제 치료로 옮기려면 그 사이에 검증 단계가 있어야 한다. 환자유래 오가노이드(PDO)가 그 자리를 채운다. 원래 환자 조직의 유전적·표현형적·미세환경적 특성을 재현하는 3차원 배양이므로, 기존의 2차원 세포주나 동물 모델보다 인체 생리에 훨씬 가깝다.
Vlachogiannis 등(2018)은 전이성 위장관 악성종양에서 PDO 예측 약물반응과 실제 환자 결과 사이에 88퍼센트의 일치를 보고했다. PDO는 원래 종양이나 조직의 이질성을 보존하기 때문에 맞춤 치료 계획 검증과 병용 약물 탐색에 유용하다. 예측 바이오마커 발굴과 환자 층화를 도와 적응형 임상시험 설계를 뒷받침하고, 결과적으로 임상시험 성공 확률을 높인다.
임상의사결정지원 시스템
AI는 예측과 검증을 넘어 EHR에 직접 통합된 임상의사결정지원 시스템(CDSS)으로 임상 판단 자체를 돕는다. McKinney 등(2020)은 AI가 유방암 검진의 위양성을 민감도 손실 없이 5.7퍼센트 낮췄음을 보였고, Rodriguez-Ruiz 등(2019)은 AI 보조 유방촬영 판독이 AUC 0.89를 기록해 판독의 단독의 0.84를 앞섰음을 보였다. 영상의학과 피부과에서 AI 모형은 사람 의사와 대등하거나 더 나은 진단 성능을 보였다. 특히 협업 도구로 쓰일 때 그렇다.
데이터 파편화를 넘어서
AI의 잠재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데이터 파편화다. 생물학적 데이터는 여러 플랫폼, 여러 기관, 여러 형식에서 생성된다. 그래서 통합과 분석이 어렵다. 연구자들이 상호운용성과 표준화를 강조하는 이유다.
오래된 데이터셋은 독점 형식으로 보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매핑과 품질 검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세부 정보가 소실된다. 표준의 존재와 표준의 작동은 다른 문제다.
연합학습 — 데이터를 옮기지 않고 배운다
데이터 사일로와 프라이버시 문제에 대한 답이다. 원자료는 각 기관에 그대로 두고, 여러 기관이 분산된 데이터 위에서 공유 모형을 만든다. 공유되고 집계되는 것은 모형 파라미터뿐이며 데이터 자체가 아니다. 그래서 HIPAA와 GDPR을 준수하면서 환자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다. 약물 반응 예측, 부작용 모형화, 지역 인구집단 맞춤 치료 같은 과제에서 모형의 형평성과 일반화 가능성을 개선한다.
생의학 자연어처리
생의학 정보의 상당 부분은 표준 데이터 처리로는 다루기 어려운 비정형 형식으로 보관되어 있다. BioBERT와 PubMedBERT 같은 모형은 대규모 데이터로 사전학습한 뒤 생의학 문헌으로 미세조정되어 도메인 특유의 언어를 포착한다. 유전자, 단백질, 질환, 약물, 임상 사건 같은 항목을 추출하고 약–표적 상호작용이나 이상사례 관계 같은 상관을 밝혀낸다. 이렇게 추출한 가설을 구조화된 다중오믹스 데이터의 지식그래프 임베딩과 결합하면 더 깊은 추론이 가능해진다.
부상하는 기술과 미래 방향
8.1 실세계 근거의 세 층위
실세계 근거는 무작위 대조시험(RCT)을 보완하며 현대 생의학 연구의 주춧돌이 되었다. 더 넓고 이질적인 인구집단에서 치료 성과를 포착하기 때문이다. 원문은 세 가지 원천을 대비시킨다.
전자의무기록 (EHR)
진단, 치료, 결과를 아우르는 대규모 종단 데이터. 인구 수준의 경향 연구에 값을 매길 수 없다. 그러나 파편화·불일치·비정형 형식 탓에 재현성이 제한된다.
환자 레지스트리
표준화된 프로토콜로 수집된 고도로 정형화된 질환 특이 데이터셋. 희귀질환과 치료 결과의 견고한 분석을 가능케 한다. 다만 범위가 좁아 일반화 가능성이 떨어진다.
실용적 임상시험 (PCT)
실제 임상 진료 안에 무작위 배정을 심어 내적 타당도와 외적 적용가능성의 균형을 맞춘다. 전통적 RCT보다 일반화 가능성이 높지만 자원이 많이 들고 순응도·실행 문제에 부딪힌다.
소셜미디어와 웨어러블·IoT 기기는 환자보고 결과와 연속 모니터링을 위해 탐색되고 있으나, 아직은 보조적이다. 전통적 RWE 원천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넓이에서 깊이로, 깊이에서 엄밀함으로 이어지는 이 연속체는 각기 다른 상충을 안고 있다. 임상적으로 실행 가능한 통찰은 이들의 강점을 섞을 때 나온다.
8.2 인과추론 — 상관을 넘어서
기존 기계학습은 단순한 상관과 진짜 인과관계를 구분하지 못한다. 치료 현장에서 이는 오도로 이어진다. 주디아 펄이 개척한 구조적 인과모형(SCM)은 인과 그래프와 구조방정식을 결합해 시스템의 기저 기전을 명시적으로 모형화한다. 처치와 결과 양쪽에 영향을 주는 교란변수를 식별하고 보정할 수 있으므로, 관찰 데이터에서 실제 치료 효과를 더 정확히 추정한다.
Schulam과 Saria는 인구·하위인구·개인이라는 다중해상도 구조의 계층적 잠재변수 모형을 만들어 질병 진행 예측을 개인화했다. 층위 간에 통계적 강도를 공유해, 환자 이질성을 고려하면서 치료 권고의 정확도를 높였다. 성장하는 최전선은 인과추론 프레임워크와 기계학습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형이다. 인과 그래프를 학습 알고리즘에 심어, 도메인 특유의 기전을 포착하면서 대규모 데이터의 패턴 발견 능력을 함께 쓴다. 성향점수 매칭, 도구변수, 반사실 추론, 인과 그래프 기반 추정방정식이 실무 도구다.
인과추론 방법은 관찰 데이터의 품질과 대표성에 크게 의존한다. 취약계층 데이터가 빠져 있으면 그 모형은 의도치 않게 의료 불평등을 강화한다.
또한 인과추론 프레임워크는 대개 ‘잘 정의된 개입’을 전제한다. 복잡한 다요인 질환에서 이 전제는 거의 성립하지 않는다. 펄의 구조적 모형은 형식적 엄밀성을, 최근의 ML 기반 인과 발견 방법은 확장성을 우선한다. 후자는 해석가능성을 대가로 치른다. 이 상충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8.3 양자컴퓨팅 — 분자를 있는 그대로 시뮬레이션한다
고전 컴퓨터는 복잡한 분자의 양자적 거동을 정확히 모형화하지 못한다. 계산량이 지수적으로 늘기 때문이다. 양자 컴퓨터는 중첩과 얽힘을 이용해 양자 상태를 직접 표현하고 조작하므로, 결합 친화도, 반응 속도론, 열역학적 특성 같은 분자 속성을 고정밀로 계산할 수 있다.
변분 양자 고유값 해법
양자–고전 하이브리드 알고리즘. 매개변수화된 양자 회로를 최적화해 분자계의 바닥상태 에너지를 추정한다. 하드웨어 효율적 설계라서 잡음이 있는 중간 규모 양자 소자(NISQ)에 적합하다.
양자 위상 추정
유니터리 연산자의 고유값을 고정밀로 결정한다. 분자 전자구조 시뮬레이션에 이상적이다. VQE보다 자원 소모가 크지만 점근적 정확도를 제공하며, 미래의 결함내성 양자 컴퓨터를 위한 핵심 방법으로 꼽힌다.
이 접근들은 약–수용체 결합, 형태 변화, 단백질–리간드 상호작용을 고전적 방법이 닿지 못하는 정밀도로 시뮬레이션한다. 정확한 도킹과 상호작용 에너지 계산이 실험적 스크리닝 비용을 크게 줄이는 초기 재배치 단계에서 특히 값지다. 로슈–케임브리지 퀀텀, 베링거인겔하임–구글 퀀텀 AI, 머크–IBM 퀀텀 같은 협력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현재 하드웨어의 한계는 분명하다. 하드웨어 잡음과 짧은 큐비트 결맞음 시간이 오차를 만든다. 큐비트 수가 제한적이라 모형화할 수 있는 분자계의 크기가 작다. 오류 정정은 여전히 자원 집약적이고 대규모로는 실용적이지 않다. 전문가들은 임상 신약개발에 유의미한 대규모 오류정정 양자 시뮬레이션에 5~10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 VQE 같은 하이브리드 방법의 실익은 그보다 이를 수 있다.
8.4 적응형 AI — 데이터가 적을 때
희귀질환과 희귀의약품 영역에서는 데이터 자체가 부족하다. 방대한 학습 데이터를 요구하는 관습적 AI 모형이 작동하지 않는다. 전이학습과 소수샷 학습이 이 문제를 우회한다. Finn 등이 설계한 MAML(Model-Agnostic Meta-Learning)은 제한된 데이터로 새 과제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모형을 훈련시켜 희귀질환 시나리오에 적합하다. 연합학습은 환자 기밀성을 지키면서 여러 질환과 여러 기관의 데이터를 함께 쓰게 한다. 이로써 기존 약을 표적화해 재사용하고, 질병 진행과 환자 반응에 따라 변하는 맞춤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양자컴퓨팅을 둘러싼 낙관은 대부분의 생의학 응용이 아직 이론에 머물러 있다는 현실과 대비된다. 반면 적응형 AI는 이미 의료 현장에 배치되고 있고, 그래서 투명성과 책임에 대한 더 즉각적인 우려를 낳는다.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모형은 불투명해지고 공정성·편향 감사가 어려워진다.
연합학습에도 그늘이 있다. 계산 자원이 많은 기관이 연합 네트워크를 지배하면, 프라이버시 보호 AI의 혜택을 누가 가져가는가에서 격차가 오히려 벌어질 수 있다. 많은 연합학습 연구가 임상 통합이 아니라 기술적 실현 가능성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짚어야 한다.
판단. 무엇에 투자하고 무엇을 먼저 규제할 것인가는 기술의 화려함이 아니라 성숙도가 정해야 한다.
윤리와 규제
앞의 절들에서 다룬 GNN, 인과추론, 연합학습, 적응형 AI 어디에서도 윤리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술적 전개와 깊이 얽혀 있었다. 이 절은 그 문제들을 모아 정리한다.
9.1 편향과 건강 형평성
신약개발에서 AI 시스템은 그것이 세워진 가정과 데이터만큼만 중립적이다. 불균형한 데이터셋, 소수 인구집단의 과소대표, 편향된 임상시험 설계에서 편향이 생기고 학습 과정에서 전파된다. 결과는 특정 집단에 유리하고 다른 집단을 배제하는 치료 권고다. AI 기반 재창출이 기존 건강 격차를 줄일지 키울지가 여기서 갈린다.
학습 단계의 편향 완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생의학 AI를 위한 편향 감사와 검증 프레임워크가 제안되어 왔다. 데이터셋과 모형 출력의 격차를 평가하는 구조화된 편향 감사, 건강 결과에 맞춘 공정성 지표 (균등기회 차이, 인구통계학적 동등성), 다양한 코호트에서 성능을 확인하는 다기관 검증이 그것이다. FDA의 우수 기계학습 실무 지침(GMLP)과 WHO의 ‘보건 분야 AI 윤리와 거버넌스’ 프레임워크가 이런 감사 절차를 신약개발 파이프라인에 통합할 것을 점점 더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9.2 국제 규제의 난제
현행 약물 승인 절차는 잘 정의된 이론 주도 기법을 전제한다. 그런데 AI는 방대하고 다양한 데이터에서 직관에 반하는 가설을, 때로는 뚜렷한 기전적 근거 없이 만들어 낸다. FDA, EMA를 비롯한 규제 당국은 이 가설의 투명성, 재현성, 책임성을 평가해야 한다. 국제적 협력과 수용을 진전시키려면 법제 조화와 AI 특화 평가 기준의 수립이 필요하다.
9.3 가설 생성의 윤리
AI가 임상시험을 위한 새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까다로운 도덕적 질문을 낳는다.
- 깊은 생물학적 이해가 결여된 AI 제안 가설을 사람 대상 시험에 포함해도 되는가.
- 사람에게 투여하기 전 무엇을 ‘충분한 검증’으로 볼 것인가.
- 동의의 문제 — 연구 설계가 AI 주도임을 참가자에게 알려야 하고, 요구되는 인간 감독의 정도가 명시되어야 한다.
이 질문들은 AI 매개 임상연구를 위한 새로운 윤리 프레임워크를 요구한다.
9.4 유전·후성유전 변이 맞춤화, 그리고 ‘정밀의료 격차’
정밀의료에서 AI의 가장 유망한 측면 하나는 유전·후성유전 정보를 통합해 고도로 맞춤화된 재창출 전략을 제안하는 능력이다. 개인의 유전체 프로파일을 반영한 치료는 효능을 높이고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대가가 따른다.
프라이버시. 유전체 데이터의 민감성은 수집·저장·공유·분석 전 과정의 완전한 투명성을 요구한다. 환자에게는 설명 가능한 동의(explainable consent)가 제공되어야 한다. 자기 데이터가 어디에 쓰이는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 명확하고 접근 가능한 설명과,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이 안전장치가 없으면 공적 신뢰가 무너지고 개인 유전정보의 오용이 가능해진다.
정의(justice). 유전체 시퀀싱과 해석 도구에 대한 접근은 지역과 의료체계에 따라 매우 불균등하다. 저자원 환경의 취약 공동체에는 포괄적 유전체 검사를 위한 기반과 재원이 없다. 이 격차는 ‘정밀의료 격차’를 만든다. 자원이 풍부한 맥락의 사람들만 AI 기반 맞춤 재창출의 혜택을 받고, 기존 건강 불평등은 더 벌어진다.
핵심 정리
AI는 방대한 생의학 데이터를 분석하고 전통적 방법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예측함으로써 약물 재창출을 가속한다. 진보한 모형은 약물 시너지를 정확히 예측하며, 최대 효능과 최소 독성을 향해 조합을 최적화한다.
DeepDDS와 SANEpool 같은 모형은 효과적 조합을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시너지를 만든 핵심 경로와 특징을 짚어낸다. 그 예측은 실험실 데이터와 임상 데이터에 대조해 실용성을 확인해야 한다.
AI 기반 병용은 더 나은 결과를 줄 수 있지만 유해한 상호작용 위험도 함께 들여온다. Decagon 같은 도구가 부작용 예측을 돕는다. 3D 프린팅 다제 시스템 같은 신기술은 전달 정밀도와 용량을 개선한다. 안전은 차세대 병용요법의 앞자리에 있어야 한다.
설명가능성은 신뢰, 규제 승인, 윤리적 사용의 전제 조건이다. 예측이 검증 가능하고 생물학적 타당성과 정렬되어야 한다. 이 장의 바리시티닙 사례가 그 예다.
모형 정확도와 해석가능성 사이에는 상충이 존재한다. 단순한 모형은 투명하나 복잡한 생물학적 패턴을 놓치고, 고성능 블랙박스는 SHAP, LIME, 기울기 기반 같은 진보된 설명 기법을 필요로 한다.
데이터 파편화는 이질적 출처와 형식 때문에 여전히 과제다. LOINC, OMOP CDM, HL7 FHIR 같은 상호운용성 표준을 FAIR 원칙과 함께 채택하면 기관 간 생의학 데이터 통합이 더 일관되게 이루어진다.
실세계 데이터와 AI의 결합은 예측·개인화·의사결정 지원을 개선하고 재창출을 강화한다. 환자유래 오가노이드는 AI가 예측한 치료를 검증할 현실적인 전임상 플랫폼이며, 실제 환자 반응과 강한 상관을 보인다.
이 장의 주장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재창출은 더 싸고 빠른 길이지만, 그 길을 열어 준 것은 AI가 아니라 데이터의 축적이다. AI는 축적된 것을 읽는 기술이다.
그래서 이 분야의 병목도 알고리즘이 아니다. 쓸 만한 데이터가 얼마나 있는지, 그것이 누구의 데이터인지, 누가 그 결과의 혜택을 받는지가 병목이다. 성능 지표는 이 질문들에 답하지 않는다. AUC 0.97은 훌륭한 숫자이지만, 그 모형이 어느 인구집단의 데이터로 학습되었는지를 말해 주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