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cer Drug Discovery · Chapter Two · Jie Jack Li · CRC Press 2026

Chemotherapies: Pyrrhic Victory

피로스의 승리

암세포를 죽이는 데는 성공했다. 다만 그 길에 건강한 세포를 함께 파괴했다. 화학요법 80년의 역사는 결국 하나의 좁은 띠를 찾는 역사였다. 너무 적으면 듣지 않고, 너무 많으면 죽이는 그 사이의 띠.

원저 Jie Jack Li 제2장 48면 2.1 – 2.6 원주 71건 DOI 10.1201/9781003743637-2

저용량 고용량 듣지 않는다 치료창 죽인다 — 화학요법의 승리는 이 띠 안에서만 성립한다 —
이 띠의 너비가 이 장의 주제다. 원저자는 SAHA를 두고 이렇게 적었다. “적게 주면 효능이 없고, 많이 주면 독성이 있다. 용량이 딱 맞아야 한다.” 겨자가스에서 시작해 바닷속 멍게와 마다가스카르의 꽃과 태평양의 주목을 거쳐 항호르몬제에 이르는 이 장의 모든 이야기는, 이 좁은 띠를 넓히려는 시도의 목록이다.

00

유행하지 않으나
여전히 반석이다

Preamble

오늘날 표적치료와 면역종양학 같은 정밀의약이 크게 유행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낡고 덜 분별력 있는 화학요법보다 원하는 항암 효능을 내면서 부작용이 적으니까. 그러나 유행하지 않는다는 것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다.

화학요법은 지금도 암 치료의 반석이다. 모든 신세대 항암제의 조상일 뿐 아니라, 그중 일부는 여러 악성종양의 표준치료다. 테모졸로마이드는 뇌종양의 한 종류인 교종을 치료하는 화학요법의 금본위이며 2008년 이래 블록버스터의 지위에 올랐다. 사이클로포스파미드와 백금 함유 약물은 유방암, 고환암, 난소암, 그리고 흔히 폐암의 1차 화학요법제로 남아 있다.

원저자는 서두에서 못을 박는다. 효능 면에서 더 나은 대안이 없어 지금도 대체 불가한 세포독성 화학요법 다섯 계열이 있다. 백금계 약물, 독소루비신, 탁산, 젬시타빈, 메토트렉세이트. 이 다섯은 신약이 아무리 쏟아져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제2장의 제목은 「피로스의 승리」다.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는 로마군을 이기고도 병력을 너무 많이 잃어, 승리를 한 번 더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화학요법이 정확히 그 자리에 있다. 이 장은 그 승리의 목록이면서, 동시에 그 대가의 목록이다.

01

DNA를 겨누는 약

Old Is Gold — DNA-Targeting Anticancer Drugs

애초에 겨자가스에서 솟아난 DNA 알킬화 약물은 여전히 항신생물 화학요법의 초석이다. 물론 전신 독성과 약물 저항성이 그 임상 효능을 제한하는 주된 장애물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2.1.1나이트로젠 머스터드, 한 시대의 시작 전장

1940년대에 쓰일 수 있게 된 나이트로젠 머스터드는 최초의 유효한 항종양 화학요법제였다. 일곱 해의 열 배가 지난 지금도 그 목록은 계속 늘어난다. 이 계열의 기원은 1차 대전에서 투입된 치명적 화학무기 겨자가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겨자가스를 발명한 사람은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다. 질소와 수소로 암모니아를 만드는 하버법으로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그 하버다. 인류를 먹이는 법과 인류를 죽이는 법이 한 사람의 손에서 나왔다.

2차 대전 중, 겨자가스를 실은 미국 상선 존 하비호가 이탈리아 바리 항에 정박해 있다가 독일 공군의 폭격을 받았다. 사후 조사에서 미 육군 중령 스튜어트 알렉산더는 겨자가스가 죽거나 다친 수백 명의 희생자에서 백혈구를 고갈시키고 림프 조직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서 이 장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 통찰이 등장한다. 백혈구와 암세포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둘 다 정상 세포보다 빨리 증식한다. 이후 겨자가스가 항증식 효과를 지녀 정상 세포보다 빨리 자라는 암세포를 더 많이 파괴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논리 하나가 뒤에 나올 마다가스카르 일일초 이야기에서 한 번 더 똑같이 되풀이된다.

겨자가스는 투여가 불편하므로 더 편한 유사체인 나이트로젠 머스터드가 액체로 만들어졌다. 전쟁 중 예일의 앨프리드 길먼도 육군 화학전 부대 소령으로 복무했다. 동료 루이스 굿맨과 함께 그는 겨자가스와 나이트로젠 머스터드의 암 치료 가능성을 은밀히 조사했다. 병사들을 겨자가스에 노출시키기까지 했다. 두 사람은 나이트로젠 머스터드가 건강한 조직보다 암세포를 어느 정도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餘談 · 약리학의 성경

여담이지만, 길먼과 굿맨이 함께 쓴 교과서는 20세기 후반 약리학의 성경이 되었다. 화학전 부대에서 병사들에게 겨자가스를 쬐어 보던 두 사람이 남긴 것이, 이후 반세기 동안 전 세계 의대생이 붙들고 앉은 책이었다.

1946년 군사 기밀 제한이 풀리면서 두 사람은 결과를 세상에 공개했다. 곧 정맥 투여 나이트로젠 머스터드가 림프절의 암인 호지킨 림프종과 몇 종의 다른 종양을 치료하는 선택 약물로 채택되었다. 나이트로젠 머스터드의 성공은 세포독성 항암제로서 알킬화제를 조사하는 연구의 홍수를 자극했다. 접근법이 겉보기에 조악해 보이지만, 이 세포독성 약물들로 암을 통제하는 데 상당한 성공이 거두어졌다. 특히 어린이에게서.

인류를 파괴하기 위해 개발된 물질인 머스터드가, 인간의 악성질환을 치료하는 데 가장 크게 쓰였다는 것은 역설이다.

원서 제2장, §2.1.1

기전 — 왜 효능과 독성이 한 몸인가

나이트로젠 머스터드는 이중가닥 DNA와 상호작용한 뒤 그것을 알킬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알킬화제들은 강한 친전자체로서 구아닌 같은 DNA 염기의 친핵성 질소 원자와 반응해 공유결합을 만든다. DNA 한 가닥을 알킬화하면 그 가닥은 상보 가닥과 결합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DNA 복제가 저해되고 세포분열과 증식이 막힌다.

여기서 핵심은 다음 한 문장이다. DNA 알킬화 항암제는 세포주기의 모든 상(相)에 작용한다. 그것이 이 약의 효능을 설명하고, 동시에 독성도 설명한다. 효능과 독성이 같은 기전에서 나오면 그 둘을 분리할 방법이 원리적으로 없다. 이 장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약이 이 벽에 부딪힌다.

1세대 알킬화제는 선택성이 거의 없어 주로 골수 억제, 탈모, 설사를 비롯한 일련의 독성을 일으켰다. 심각한 부작용을 넘어서려는 노력으로, 기존 알킬화제에 생물학적 분자를 더 붙여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피리미딘, 펩타이드, 아미노산, 당 같은 조각을 담은 이중기능 알킬화제가 더 나은 선택성을 주고 종양 부위에 적절한 약물 농도를 전달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멜팔란melphalan1953년 아미노산 페닐알라닌을 나이트로젠 머스터드에 연결해 처음 합성했다. 아미노산을 넣은 것은 조직 선택성을 높이려는 설계였고 그 추론은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1954년 첫 생물학적 시험, 10년 뒤 다발골수종과 난소암 치료로 FDA 승인. 다발골수종은 미국인 약 5만 명, 대부분 60세 이상 고령자를 괴롭히며 골수 형질세포의 폭주 증식이 특징이다.1953 합성 · 1964 승인
사이클로포스파미드cyclophosphamide · Cytoxan1950년대 말 독일 아스트라-베르케의 노르베르트 브로크 팀이 프로드러그를 연구했다. 자체로는 덜 독성이지만 간의 CYP-450 산화효소로 세포독성 물질로 대사되는 설계다. 1956년 제조. 1958년 임상, 이듬해 FDA가 여덟 번째 세포독성 항암제로 승인했다. 오늘날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다. 경구 활성이며 간 CYP-450의 4-수산화로 활성화되어 종양 부위에서 포스포라마이드-머스터드가 DNA를 가교한다.1956 합성 · 1959 승인
트레오설판treosulfan · Trecondi 합성2025년, FDA는 메닥의 트레오설판을 소아 동종 조혈모세포이식 전 전처치 요법제로 승인했다. 가장 오래된 DNA 알킬화제 중 하나인 부설판의 직접 유사체다. 부설판보다 수산기가 둘 더 있어 원형보다 독성이 감소했다. 2025년이 다시 알킬화제를 불러내 이 계열이 얼마나 유용한지 상기시켰다.2025 승인

멜팔란은 광범위한 항종양 활성으로 암 치료제로 승인되었지만, 임상에서 골수를 제거하는 또 다른 능력을 드러내 강력한 면역억제 효과를 보였다. 삶이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면 된다. 의학에서 약의 부작용은 때로 우리 쪽 이점으로 돌려세울 수 있다. 그 결과 멜팔란은 수십 년간 조혈모세포이식에서 독자적인 역할을 찾았다.

사이클로포스파미드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 약은 종양세포를 곧바로 죽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번식하고 자라는 것을 막는 세포정지성(cytostatic) 약물이다. 게다가 그 면역억제 효과는 임상에서 멜팔란보다 더 유의하다. 면역조절제로서 여러 질병에 대한 면역계의 반응을 낮춘다. 고용량에서는 알킬화제로 작용해 세포 사멸을 일으키고, 저용량에서는 면역억제제로 작용한다. 이 이상성(biphasic) 덕에 사이클로포스파미드는 오늘날 골수이식, 류마티스관절염, 면역결핍 질환에 널리 쓰인다.

같은 분자가 용량에 따라 다른 얼굴을 갖는다는 이 대목은 이 장 여기저기에서 다시 나온다. 니코틴산, 아스피린, 메토트렉세이트, 6-MP가 모두 그렇다. 흩어진 것을 한자리에 모아 두었으니 부록 1을 보면 된다.

2.1.2테모졸로마이드, 그리고 실패한 마법의 탄환 합성

테모졸로마이드의 발견에는 우연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성공은 지성과 어림짐작, 완강한 인내, 그리고 상당한 몫의 운이 놀랍게 섞인 결과다.

1970년대에 맬컴 스티븐스가 영국 버밍엄 중심부 애스턴대학 약학과에 합류해 다학제 신약 연구실을 세웠다. 1978년 대학원생 로버트 스톤이 그의 그룹에 들어와 두 사람은 완전히 새로운 이환식 이미다조테트라지논 계열을 만들었다. 이 화합물들은 이환식 핵 구조와 클로로에틸기의 융합이었다. 클로로에틸기는 나이트로젠 머스터드에서 빌려온 '탄두(warhead)' 부분이다.

그중 하나, 1980년에 합성된 미토졸로마이드는 세포독성 효과가 압도적이어서 눈에 띄었다. 애초에 스티븐스가 좋아한 이름은 아졸라스톤(azolastone)이었다. 전임상에서 미토졸로마이드는 당시 거의 모든 마우스 암 모델에 단회 투여로 유효했다. 그토록 오래 찾던 '마법의 탄환'을 찾았다고 부당하게 기뻐한 스티븐스와 애스턴대학은 1983년 열심히 1상 임상을 시작했다.

아, 그런데 그 마법의 탄환은 그리 마법적이지 않았다. 미토졸로마이드는 암세포와 정상 세포를 똑같은 흉포함으로 죽였다. 쥐에서 그토록 안전하고 유효했던 분자가 사람에서는 극도로 독성이 강해 심각한 골수 독성을 냈다. 혈소판 수치가 낮아져 쉽게 출혈하고 멍드는 혈소판감소증이었다. 1985년 개발이 중단되고 과제는 소멸의 벼랑에 걸렸다. 어느 교활한 경쟁자는 이 망한 사업에 조롱하듯 이름을 붙였다. “아졸-라스트-원(azo-last-one)” — 마지막 아졸이라는 뜻이다.

원저자는 여기서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스의 1786년 시 「생쥐에게」를 인용한다. 쥐와 사람을 다루는 이 장의 어느 문장보다 적절하다.

그러나 생쥐야, 너만이 아니다,
앞을 내다보는 일이 헛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생쥐와 사람의 가장 잘 짜인 계획도
흔히 어긋나고,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약속된 기쁨 대신 슬픔과 고통뿐이니.

로버트 번스, 「To a Mouse」 1786

그러나 스티븐스가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항종양 활성을 보인 이미다조테트라진 화합물이 딱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그것이 테모졸로마이드였다.

이 분자는 미토졸로마이드의 클로로에틸기를 단순한 메틸기로 갈아 끼우고 핵 구조는 전임자와 같이 유지한 것이다. 프로드러그인 테모졸로마이드가 염기 조건에서 화학적으로 활성화되면 매우 활성이 큰 탄두 다이아조메탄이 만들어진다. 다이아조메탄은 유기화학 실험실에서 메틸화에 일상적으로 쓰이는, 잘 알려진 대단히 반응성 높은 시약이다.

놀랍지 않게도, 체내의 다이아조메탄은 자기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한다. 친전자체 일반, 특히 DNA의 구아닌 염기를 메틸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훨씬 정교하고 선택적이다. 마지막 순간에 방출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테모졸로마이드에서 나온 다이아조메탄은 구아닌 잔기의 6번 위치 산소 원자를 주로 메틸화하며 이중나선을 가교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테모졸로마이드가 미토졸로마이드보다 지수적으로 안전한 이유를 설명해 줄 것이다. 게다가 산성 조건에서 안정하므로 경구 투여가 가능하다.

1상 임상은 기분 좋은 놀라움이었다. 특히 다른 약으로는 깨기 어려운 단단한 껍질이었던 교종 환자에서 이례적으로 많은 양성 반응으로 끝났다. 게다가 경구 생체이용률 100%, 좋은 뇌 투과, 전반적으로 양호한 안전성을 보였다. 성공의 가장 큰 이유는 의심할 여지 없이 194 달톤이라는 작은 분자량이다. 세포막과 혈액-뇌 장벽을 쉽게 통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첫 임상시험에서 침상에 누워 있던 교종 환자 두 사람이 치료 뒤 일어나 일상생활을 하고 심지어 휴가를 다녀왔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라자로 현상이라고까지 외쳤다.

2상에서 유의한 항교종 활성이 확인되었다. 뉴저지의 미국 제약사 셰링플라우가 1993년 라이선스해 더 비싼 3상을 수행하고 1999년 FDA 승인을 얻었다. 테모졸로마이드(Temodar)는 2008년 셰링플라우에 10억 2천만 달러를 벌어 주었고, 2022년에는 21억 달러에 이르렀다.

큰 홈 · major groove ACTG 염기가 놓인 넓은 쪽 나이트로젠 머스터드 · 백금계 구아닌 N7에 결합, 가교 작은 홈 · minor groove 당이 놓인 좁은 쪽 테모졸로마이드 · 트라베크테딘 O6 메틸화 · N2 공유결합 DNA
도해 1 — 어느 홈을 겨누는가DNA 3차 구조에서 큰 홈은 ACTG 염기가 놓인 한쪽의 넓은 공간이고, 작은 홈은 반대쪽에서 당이 자리한 좁은 공간이다. 이 장에 등장하는 알킬화제는 이 두 진영으로 정확히 갈린다. 이 구분이 곧 독성 양상의 차이로 이어진다. 원서의 서술을 근거로 본 문서에서 새로 작도했다.

모든 DNA 알킬화 항암제가 똑같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어떤 약이 대단히 유효하다면 아주 적은 양으로 일을 해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부작용이 더 적고 덜 심각해진다. 트라베크테딘이 바로 그 대단히 유효한 항암제다. 우연히도 트라베크테딘 역시 DNA의 작은 홈에 결합하는 알킬화제다. 카리브해의 멍게에서 분리되었다.

2.1.3카리브해 멍게에서 나온 약 바다

트라베크테딘이 열매를 맺기까지 걸어온 길은 길고 굽고 험했다. 항종양제로서의 비범한 잠재력은 이미 1969년 미국 국립암연구소(NCI)가 관찰했다. 그런데 미국 시장에 출시된 것은 46년이 지난 2015년이었다.

2.1.3.1 · 분리와 규명

초기 항생제는 거의 모두 어머니 자연에서 왔다. 페니실린은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곰팡이가 만든 균사에서 발견했다. 스트렙토마이신은 1943년 셀먼 왁스먼과 앨버트 샤츠가 흙에서 분리했다. 처음 두 테트라사이클린도 그랬다. 항생제는 문자 그대로 헤아릴 수 없는 목숨을 구했다. 항생제 시대 이전에 우리 조상 다수는 암과 심혈관질환과 다른 만성질환이 흔해지기 전에 세균 감염으로 죽었다. 역사 전체를 통틀어 인간의 수명은 아주 조금씩 아주 느리게 늘었다. 항생제의 황금기가 오자 기대수명이 단번에 열 살쯤 뛰었다.

항생제의 놀라운 성공은 과학자들에게 자연에서 암 약을 찾도록 영감을 주었다. 우리가 오래 살게 되면서 암이 더 널리 퍼졌으니까. 20년 전만 해도 승인된 항암제의 절반 이상이 천연 유래였다. 식물 유래로는 탁솔과 빈카 알칼로이드, 미생물 유래로는 블레오마이신과 독소루비신이 그 예다.

1960년대 말 스쿠버 다이빙 기술이 개선되어 스노클링을 넘어 더 깊은 바다를 탐사할 수 있게 되었다. NCI는 잠재적 약물을 선별하기 위해 심해의 해양 무척추동물을 많이 수집했다. 그중 하나가 카리브해의 멍게 Ecteinascidia turbinata였다. 자루 모양의 반투명한 군체성 멍게로, 산호초의 맹그로브 뿌리, 거북풀 잎, 해송, 해면, 석회질 기질 위 바다 몇 미터 아래에 산다.

수확한 멍게를 건조해 함수 에탄올로 추출했다. 그 조추출물에서 NCI는 1969년 인상적인 세포정지 성질과 항종양 활성을 관찰했다. 특히 P388 마우스 백혈병 세포에 대해 비범한 수준의 치사 활성을 보였다.

餘談 · 추출물과 단일 분자

추출물만으로는 서양 의학에 충분하지 않다. 원저자는 이 대목에서 서양 의학과 한의학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약물의 순도로 짚는다. 전자는 전형적으로 단일 분자를 선호하고, 후자는 수백에서 수천 개 화합물을 담은 혼합물인 식물·동물의 부분을 쓴다.

1804년 프리드리히 제르튀르너가 모르핀을 분리했고 1890년 펠릭스 호프만이 아스피린을 합성했다. 멍게의 단순한 추출물로는 FDA도 EMA도 시판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기관의 규범을 통과하려면 활성 본체가 분리되고 시험되어야 한다.

말은 쉬웠으나 일은 그렇지 않았다. 1970년대의 기술은 이 과제에 미치지 못했다. 활성 본체를 분리하려는 모든 시도가 활성 성분의 분해로 끝났다. 좌절스러우면서 동시에 감질났다. 이 멍게 추출물은 NCI가 근 10년간 시험한 해양 산물 중 가장 강력했으니까. 15년이 넘은 헛된 노력은 1990년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학의 케네스 리네하트가 최신 분리·분석 장비를 활용해 약물을 분리하고 규명함으로써 자비롭게 끝났다.

1980년대에 서인도제도의 산호초에서 다이빙하며 리네하트는 연구할 만큼의 멍게를 채집했다. 크로마토그래피로 분리해, 건조 멍게 추출물의 항종양 활성을 담당하는 활성 본체를 찾는 데 성공했다. 분리한 십여 개 활성 화합물 중 여섯 개를 핵자기공명(NMR)과 질량분석(MS)으로 규명했다. 그중 하나인 엑테이나스시딘 743(ET-743)이 가장 강력하고 가장 풍부했으며(수율 0.0001%) 세포와 동물 모델 모두에서 세포독성이 가장 높았다. 2000년대에 임상시험을 진행하며 트라베크테딘이라는 일반명을 얻었다.

소량의 순수 트라베크테딘을 손에 넣고 보니, 아주 낮은 농도에서 다양한 종양 세포주에 대해 극히 강력한 세포독성을 보였다. 피코몰에서 낮은 나노몰 농도만으로 여러 암종의 세포와 동물 모델에서 세포 사멸을 개시할 정도였다. 트라베크테딘 11파운드, 곧 5킬로그램 정도면 전 세계의 1년 수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약을 평가할 때 진짜로 중요한 속성은 둘뿐이다. 효능과 독성. 어떤 약이 in vitro에서 매우 강력하다면 in vivo에서도 매우 유효할 가능성이 높다. 더 중요한 것은, 더 강력한 약은 일반적으로 더 적은 용량으로 투여되므로 부작용이 더 적다는 것이다. 앞의 게이지로 돌아가면, 강력함이란 곧 치료창을 왼쪽으로 옮겨 넓히는 일이다.

트라베크테딘의 놀라운 역가에 크게 힘입어, 마드리드의 스페인 제약사 파마마르가 1994년 일리노이대학으로부터 이 화합물을 라이선스했다. 파마마르의 마르(Mar)는 스페인어로 바다다. 이 회사는 해양 천연물에서 항암제를 발견하고 개발하는 데 특화되어 있으며, 오늘날 해양 유래 시료 7만 4천 점의 인상적인 라이브러리를 갖고 있다.

2.1.3.2 · 양(量)의 문제

전임상과 임상 시험을 수행하기 위해 파마마르는 처음에 자연에서 멍게를 대규모로 수확해 보았다. 이 수확 관행은 환경 훼손 때문에 현지국의 눈총을 받았을 뿐 아니라, 순수한 약물을 분리하기가 엄청나게 어려웠다. 멍게에서 나오는 수율이 어찌나 낮았던지 트라베크테딘 1그램을 분리하려면 무척추동물 약 1,000킬로그램이 필요했다. 그런데 1상 임상 하나에만 5그램쯤이 필요했다. 더 많은 시험과 훗날의 상업화를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약을 확보해야 했다. 자연에서 이 생물의 분포가 희소하고 서식지가 생태적으로 민감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연 채집이 해마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곧 분명해졌다.

이어 파마마르는 양식으로 눈을 돌렸다. 스페인과 푸에르토리코의 수중 농장에서 멍게를 길렀다. 자연 햇빛, 인공 해수, 여과기, 온도·통기·염도 제어를 갖춘 수조에서 군체를 키워 원료를 공급했다. 이 방식으로도 트라베크테딘 1킬로그램에 건조 바이오매스 1미터톤 이상이 필요했다.

인공 양식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해양 양식으로 동물 암 모델에서 많은 전임상 시험을 수행할 만큼의 약이 나왔다. 파마마르의 과학자들은 데이터가 마음에 쏙 들었고, 그것은 이 약의 비범한 효능을 견고하게 확인해 주었다. 엄청나게 강력한 화합물을 가졌다는 사실은 실로 흥분되는 일이었지만, 불에 기름을 더 부은 것은 트라베크테딘의 새로운 작용 기전이었다.

2.1.3.3 · 기전

트라베크테딘은 세포정지성 항암제다. DNA 알킬화제로서 DNA 작은 홈의 구아닌 잔기에 결합해 이중나선을 굽힌다. DNA 큰 홈에서 구아닌에 결합하는 전통적 알킬화제와 다른 점이다. 이 변형은 DNA 결합 단백질과 전사인자를 방해한다. 최신 연구는 이 약이 암세포에서 우선적으로 DNA 손상 복구 과정을 깨뜨린다고 시사한다. 이 놀라운 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배울 것이 많이 남아 있다.

화학적으로 알킬화 단계는 트라베크테딘 핵 구조에 있는 카비놀아민(헤미아미날) 기의 탈수에 의존한다. 카비놀아민기가 물을 잃는 만니히형 반응을 거쳐 친전자성 이미늄 중간체를 만들고, 그것이 친핵성 DNA 염기인 구아닌의 2번 질소 위치에 공유결합을 형성한다. DNA 작은 홈에 공유결합해 약물 유도 DNA 손상을 일으키면서 세포주기 교란과 아폽토시스 유도가 따라온다.

천연물에서 온 거의 모든 항암제처럼 트라베크테딘도 투과성 당단백질(P-gp)의 기질이다. 약물 처분과 다중약물저항성의 중요한 인자다. 또한 인간 혈청 알부민에 광범위하게 결합한다. 임상적으로 유의한 혈장 농도에서 혈장 내 비결합 트라베크테딘의 농도는 극히 미량, 피코몰 범위다. 이 점도 그 비범한 역가에 부분적으로 기여한다.

2.1.3.4 · 만드는 일

많은 해양 천연물처럼 트라베크테딘의 분리도 멍게 내 낮은 농도와 구조의 복잡성에 시달렸다. 수율은 100만 분의 10 정도(~10 ppm)다. 자연 채집도 양식도 실용적이지도 생태적으로 용납되지도 않았다.

천연 공급의 부재와 독특한 작용 기전의 조합은 트라베크테딘을 대단히 매력적인 합성 표적으로 만들었다. 리네하트는 이 도전을 다룰 자신이 아는 최고의 사람에게 연락했다. 하버드대학의 E. J. 코리였다. 리네하트는 이 옛 동료를 잘 알았다. 코리는 하버드로 옮기기 전 1951년부터 1959년까지 일리노이대학에 있었고, 리네하트는 1954년부터 같은 화학과에서 일했다. 자신의 그룹이 발견한 천연물을 실험실에서 만들 수 있겠는지 묻기에 자연스러운 상대였다.

餘談 · 여덟 개의 이름

1990년 노벨상 수상자 코리는 세계 최고의 유기화학자에 속했다. 그가 개발한 방법론이 어찌나 많아서, 그의 화학이 없다면 제약 산업은 심각한 장애를 겪었을 것이다. 원저자는 자신의 책 『Name Reactions』 2025년 제7판이 가장 유용한 유기 인명반응 약 300개를 모았다고 적으며 한마디 덧붙인다. 그중 여덟 개가 코리의 이름을 달고 있다. 기록이다.

박사후연구원 데이비드 진과 대학원생 로버트 카니아와 함께 코리는 1996년 트라베크테딘의 전합성을 완성했다. 이 성취는 진을 높은 궤도의 과학 경력으로 올려 보냈다. 그는 일리노이대학의 화학 교수가 되었다. 자기 그룹이 발견한 트라베크테딘을 합성한 동료를 리네하트가 반기지 않았을 리 없다. 일리노이에서 성공적인 10년을 보낸 뒤 진은 2006년 뉴욕의 명망 있는 슬론-케터링 연구소로 옮겼다. 슬프게도 이 총명하고 재능 있는 화학자는 2011년 때 이르게 세상을 떠났다. 유기화학의 세계는 온화하고 친절하며 유머 있는 지도자 하나를 잃었다.

코리의 첫 다단계 합성은 추가적인 in vitro·in vivo 연구를 위한 물질을 더 공급했다. 이후 2000년 코리 그룹은 트라베크테딘과 유사 활성을 갖는 더 단순한 유사체를 만드는 더 효율적인 합성 경로를 발표했다.

코리의 전합성은 실험실에서 트라베크테딘을 만드는 최고 수준을 대표했다. 그러나 약 50단계에 총수율 0.75%였다. 따라서 처음부터 짓는 전합성은 산업 규모 제조에 적합하지 않았다. 결국 2000년대 초 파마마르의 공정화학 팀이 카르멘 쿠에바스의 지휘로, 사이아노아프라신 B를 진행된 중간체로 삼는 대규모 반합성 공정으로 공급 문제를 해결했다. 그 뒤 코리의 방법으로 '겨우' 21단계에 트라베크테딘을 생산했다.

사이아노아프라신 B는 세균 Pseudomonas fluorescens의 발효로 손쉽게 얻는 항생물질이다. 발효 공정을 최적화해 이 물질을 수 킬로그램 규모로 생산할 수 있게 되어, 트라베크테딘 합성의 견고하고 정교하며 경제적인 출발물질이 확보되었다.

2.1.3.5 · 임상과 승인

1상은 안전성, 내성, 약동학과 항암 활성의 예비 증거를 확인했다. 270명이 참여한 2상은 유방암과 난소암 같은 종양형에서 세포독성 활성을 입증했다. 나아가 적절한 화학요법이 제한적인 종양형인 연부조직 육종에서도 활성이 관찰되었다. FDA와 EMA 모두 트라베크테딘을 연부조직 육종과 난소암에 대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했다.

2007년 EMA는 무작위 2상 시험을 근거로 트라베크테딘을 욘델리스(Yondelis)라는 상품명으로 시판 승인했다. 문서화된 반응과 관리 가능한 독성 양상을 가진 유효 약제로 판단한 것이다. 이어 안트라사이클린과 이포스파미드에 실패한 환자의 연부조직 육종 정맥 투여로도 승인했다. 이포스파미드는 DNA 알킬화제 사이클로포스파미드의 이성질체로, 당시 표준 1차 치료였다. EMA 승인으로 트라베크테딘은 시장에 도달한 최초의 해양 유래 항암제 중 하나가 되었다. 파마마르는 2011년 존슨앤드존슨의 제약 부문 얀센과 유럽 외 지역 판매 계약을 맺었다.

같은 2007년, FDA는 간독성을 이유로 승인을 거부했다. 2015년까지 80개국에 가까운 나라에서 약 5만 명의 환자가 이미 이 치료의 혜택을 받았다. 그 사이 3상에서 또 다른 DNA 알킬화제 다카바진에 대한 트라베크테딘의 임상적 우월성이 추가로 확립되었다. 다카바진 대비 질병 진행 위험 45% 감소, 사망 위험 13% 감소. 2015년 FDA는 마침내 진행성 연부조직 육종 치료로 트라베크테딘에 청신호를 켰다.

트라베크테딘의 46년에 걸친 오디세이는 1962년에 처음 발견되어 30년 뒤 1992년 FDA 승인을 받은 탁솔조차 견줄 수 없다. 파마마르는 트라베크테딘과 밀접히 관련된 루르비넥테딘(Zepzelca)의 FDA 승인도 얻었다.

2.1.3.6 · 마지막 반전

좋은 이야기가 더 많은 반전 없이 끝날 수 있겠는가.

놀랍게도 2015년, 트라베크테딘은 그 소중한 멍게가 만드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럽에서 출시된 지 8년 뒤, 앤아버 미시간대학의 과학자들은 트라베크테딘이 실제로는 멍게 안에 사는 세균이 생산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공생 세균 Candidatus Endoecteinascidia frumentensis는 멍게 안에 살며 그것과 떼어낼 수 없이 붙어 있다. 이 공생은 세균에게 영양을 주고, 취약한 멍게에게는 트라베크테딘과 다른 생물독소의 형태로 보호를 준다.

원저자는 여기서 생물다양성의 미덕을 설파할 만한 자리라고 말한다. 목숨을 구하는 항암제 하나가, 산호초를 포함한 서식지가 지구온난화로 꾸준히 쇠퇴하고 있는 멍게에 공생하는 세균에서 분리되었다. 지구의 빠르게 줄어드는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려면 해양 생태계 보전을 더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 세균이 사라진 뒤에 그것이 무엇을 만들 수 있었는지 알아내는 방법은 없다.

2.1.4고귀한 금속, 고귀한 명분 우연

백금계 약물은 여러 종양을 치료하는 데 가장 널리 처방되는 화학요법제 중 하나다. 작은 홈에 결합하는 트라베크테딘과 달리 백금 항암제는 큰 홈에 결합해 DNA를 손상시킨다. 주된 작용 방식은 DNA에 공유결합해 암세포의 아폽토시스를 유도하는 것이다.

종양학에서도 어떤 '유행'은 무엇이 멋져 보이는가에 따라 오고 간다. 그러나 백금 항암제는 상록수로 남아 있다. 일부는 심각한 독성에도 불구하고 그 놀라운 효능을 증언하는 셈이다. 결론은 간명하다. 백금 약물은 듣는다. 어떤 암은 낫게까지 한다.

2.1.4.1 · 시스플라틴, 로젠버그의 세렌딥

1974년, 젊은 영국 의사 힐러리 칼버트가 런던 로열마스든 병원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난소암 환자에게 지도의는 '백금' 약을 처방하라고 조언했다. 그대로 따랐더니 환자는 곧 신부전에 빠졌다. 다행히 칼버트의 이전 근무지가 신장내과였으므로 환자를 되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뒤 그는 경악하며 발견했다. 환자의 암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 '백금'은 시스플라틴이었고, 10년 전 미국 미시간주 이스트랜싱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시스플라틴은 1965년 미시간주립대학 물리학 교수 바넷(바니) 로젠버그가 우연히 발견했다. 그는 1955년 뉴욕대학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제자였던 교수의 지도로 박사를 받았다. 로젠버그는 자신을 궁극의 사색가로 여긴 아인슈타인의 학문적 손자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1961년 미시간주립대에 합류해 생물물리학과를 공동 창설한 뒤 그는 전류가 세균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실험 설계에 결정적 전제가 하나 있었다. 그는 백금이 세포분열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불활성' 금속이라고 인식했으므로 전극으로 백금 선 두 개를 골랐다. 전해질로는 염화암모늄 완충액을, 세균으로는 가장 흔한 대장균을 택했다.

그가 본 것은 극적이었다. 전류를 켜자마자 세균 세포는 분열을 멈추고 아주 길고 실 모양이 되었다. 보통 길이의 거의 300배까지 계속 자랐다. 길어진 세균은 원래의 소시지 모양 대신 스파게티를 닮았다. 전기를 끄면 세포는 다시 분열하기 시작했다.

로젠버그는 처음에 전류가 세포분열에 영향을 준다고 잘못 믿었다. 그러나 2년의 집중적인 정밀 조사 끝에 그의 팀은 마침내 진짜 범인을 찾아냈다. 세포 신장의 매개자는 전류가 아니었다. 백금 전극이 용출되어 전해질 염화암모늄과 반응해 만들어진 백금 착물, 곧 시스플라틴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시스 이성질체만 활성이 있었고 트랜스 이성질체는 훨씬 덜 활성이었다. 그래서 시스플라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실험을 성립시킨 전제 — 백금은 불활성이다 — 가 틀렸다는 것이 발견의 내용이었다. 이 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목 중 하나다.

시스플라틴은 이미 1845년 토리노의 젊은 이탈리아 화학자 미켈레 페이로네가 처음 합성해 페이로네의 염 또는 페이로네의 염화물이라 불렸다. 50년 뒤 알프레트 베르너가 그 사각평면 구조를 규명했다. 베르너는 배위화학을 창시한 공로로 1913년 노벨상을 받았다. 훗날 로젠버그는 시스플라틴이 고귀한 역사를 가졌다고 적었다. 백색의 금에서 나온 이 착물이 암 화학요법의 황금기 도래에 기여했다.

세포분열 차단은 흔히 항신생물제와 연관되므로, 로젠버그의 다음 논리적 단계는 시스플라틴의 항암 성질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1969년, 여러 세균에 대한 추가 실험을 거친 뒤 그는 동료들과 시스플라틴 및 다른 세 백금 화합물을 사르코마 180 종양 이식편을 가진 스위스 백색 마우스에서 시험했다. 당시 표준 이식 종양이었다. 시스플라틴은 큰 고형 종양을 축소시키는 강력한 활성을 보였다. 쥐들은 살아남아 건강했고, 6개월 뒤에도 암의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로젠버그의 마우스 결과가 어찌나 길조였던지 NCI는 추가 전임상 약리·독성 시험을 수행하고 1971년 1상 임상을 시작하도록 유인되었다. 효능은 인상적이었으나 투여 중 관찰된 높은 신독성이 개발을 거의 좌초시켰다. 다행히 정맥 생리식염수 사전 수액과 용량 조절이 신독성을 크게 완화했다. 브리스톨 연구소(훗날 BMS)가 라이선스하고 이후 시험을 인도했다. 시스플라틴은 1978년 FDA에서 전이성 고환암과 난소암 치료로 승인되었고 이듬해 여러 유럽 국가에서도 승인되었다.

승인은 암 화학요법 발전의 분기점이었다. 환자 생존율을 극적으로 개선하고 다른 화학요법제의 개발을 가속했다. 백금 약물의 도입으로 고환암 전체 생존율이 90% 이상으로 올랐다. 유명하기도 하고 불명예롭기도 한 사이클리스트 랜스 암스트롱도 그 수혜자에 속했다. 폐암, 대장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등 여러 암종에서도 설득력 있는 치료 성과를 냈다.

기전으로 보면 시스플라틴은 DNA 삽입제이며 가교제다. 핵 DNA의 큰 홈에 결합하는데, 프로드러그로 작용해 암세포 내에서 이탈성 리간드의 수화(물 분자 부가)를 거쳐야 구아닌과 아데노신 염기의 7번 질소 원자와 결합할 수 있다. 그 결합이 DNA 복제와 전사를 멈추고 프로그램된 세포 사멸을 개시한다.

2.1.4.2 · 더 새롭고 더 안전한 백금

놀랍기는 하지만 시스플라틴에는 상당한 부작용이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신장 손상이다. 독성을 넘어서기 위해, 1970년대 초중반 시스플라틴이 널리 임상에 도입된 직후부터 많은 실험실이 광범위한 의약화학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아마도 가장 성공적인 연구 프로그램은 영국의 두 파트너, 레딩의 존슨-매티 사와 서턴의 암연구소(ICR)의 협력이었다. 존슨-매티는 귀금속을 다루는 오랜 전통과 전문성을 갖고 있었으므로 300개가 넘는 백금 착물을 만들었고 그중 약 40개가 전임상에서 활성을 보였다. 40개가 여덟 개 후보로 좁혀지고 그중 둘이 임상에 들어갔다. 그중 하나가 카보플라틴이었다.

카보플라틴은 시스플라틴의 두 염소 리간드를 사이클로부탄다이카르복실산 리간드 하나로 대체한 것이다. 시스플라틴보다 덜 활성이지만 더 안전함이 입증되었다. 시스플라틴에 비해 카보플라틴은 신독성이 본질적으로 없고 신경독성도 유의하게 낮다.

여기에 우아한 설명이 붙는다. 시스플라틴과 카보플라틴이 DNA와 만드는 부가체는 동일하다. 그런데 카보플라틴 노출 중 부가체 형성 속도는 10배 느리다. 이것이 카보플라틴의 독성이 더 낮은 이유를 설명해 줄 것이다. 암세포에 대한 세포독성이 시스플라틴보다 한 자릿수 낮았지만, 그것은 감소한 독성으로 보상되었다. 같은 일을 천천히 하면 치료창이 넓어진다는 뜻이다.

카보플라틴의 1상은 런던 로열마스든 병원에서 수행되었는데, 바로 그 힐러리 칼버트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개발에 기여했다. 시스플라틴에 놀랐던 인턴이 다음 세대 백금 약을 만든 것이다. BMS가 1979년 라이선스해 난소암 여성의 재치료에서 개선된 치료지수를 확고히 확립했다. 카보플라틴은 1985년 영국과 캐나다에서 승인되었고, 미국에서는 1989년에야 파라플라틴이라는 상품명으로 FDA 승인을 받았다. 제네릭은 2004년부터 나왔다.

백금계 항암제 여섯 — 원서 §2.1.4.2의 서술을 본 문서에서 표로 재구성했다.
약물개발승인특징
시스플라틴로젠버그, 미시간주립대1978 · FDA원형. 전이성 고환암·난소암. 고환암 생존율을 90% 이상으로. 신독성이 최대 약점.
카보플라틴존슨-매티 × 암연구소(영국)1985 · UK
1989 · FDA
부가체는 동일하나 형성 속도 10배 느림. 신독성 사실상 없음, 신경독성 유의하게 낮음.
옥살리플라틴1978 일본 합성 → 사노피-아벤티스1996 · 유럽
2002 · FDA
시스플라틴 저항성 종양에 활성. 대장암에 활성을 보인 유일한 백금 화합물.
네다플라틴시오노기(오사카)1995 · 일본카보플라틴보다 항암 활성이 좋고 시스플라틴과 동등. 수용성 10배. 신독성·위장독성 낮음. NSCLC 등.
헵타플라틴선경 인더스트리 연구소(서울)1999 · 한국수용성이 높고 시스플라틴보다 항증식 활성이 크며 독성은 낮다. 위암 치료로 한국이 승인.
로바플라틴ASTA 파르마(독일), 1990년대2010 · 중국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로 중국 승인.

여섯 중 다섯 번째가 한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이 장에서 한국 독자가 눈여겨볼 유일한 대목이다. 선경 인더스트리 연구소가 서울에서 개발한 헵타플라틴은 시스플라틴보다 수용성이 높고 항증식 활성이 크며 독성이 낮았고, 1999년 위암 치료제로 승인되었다. 위암이 한국의 질병 부담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표적 선택 자체가 국내 임상의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임을 읽을 수 있다.

시스플라틴 이후의 다섯 백금 약물은 원형을 보완하고 보충하며 환자에게 큰 봉사를 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단독으로 처방되지 않는다. 대개 병용요법의 일부로 쓰인다. 다만 구조적으로 시스플라틴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시스플라틴에 따라붙는 불행한 독성 문제도 대체로 마찬가지다.

불가피한 독성과 오래전부터 나온 제네릭에도, 백금계 항암제의 세계 연매출은 현재 20억 달러 수준이다. 그들이 제공하는 압도적인 효능을 증언하는 숫자다. 백금 약물의 끝을 우리는 아직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리소좀 캡슐화, 나노입자 전달, Pt(IV) 기반 프로드러그, 항체-약물 접합체(ADC) 등 그 비할 데 없는 효능을 활용하면서 악명 높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2.1.5후성유전 항암제 합성

우리 몸에는 200종이 넘는 세포가 있다. 그런데 DNA의 구성단위는 네 개뿐이다. 아데닌, 시토신, 구아닌, 티민. 각 유전 코드는 세 글자로 이루어진다.

단 네 개의 구성단위에서 세포의 다양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후성유전이다.

후성유전은 비(非)멘델적이다. DNA 서열을, 따라서 유전 코드를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유전학 자체와 달리 후성유전 변형은 DNA 서열을 바꾸지 않으면서 유전자 발현의 수준과 기능을 바꾸어 다양한 표현형을 낳는다. 염색체를 더 가까이 보면 DNA는 핵 안에서 '벗은 채로' 자유롭게 흐르지 않는다. 이중나선은 히스톤 단백질을 감고 있다. 유전학이 주로 DNA 자체를 다루는 데 비해 후성유전학은 DNA와 히스톤 같은 연관 단백질에 일어나는 100가지가 넘는 화학적 변형을 연구한다. 유전체 밖에 앉은 세포 물질이 어떻게 유전자 활성에 영향을 주는지를 다루는 것이다.

후성유전은 유전자 조절과 세포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며,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는 그 조절 실패가 종양 발생에 기여할 수 있다. 대부분의 후성유전 항암제는 가장 널리 퍼진 두 후성유전 과정 중 하나를 이용한다. DNA 메틸화히스톤 단백질의 아세틸화다.

2.1.5.1 · 아자뉴클레오사이드 — 아자시티딘과 데시타빈

후성유전 치료는 사실 예순 살이다. 5-아자시티딘은 1960년대에 암 치료용 세포독성 약제로 조사되었다. DNA 메틸트랜스퍼라제 저해제라는 기전이 규명되기 훨씬 전이다.

1963년 체코슬로바키아 화학자 프란티셰크 쇼름과 동료들이 아자시티딘과 데시타빈을 합성했을 때, 그들은 작용 기전을 알지 못했다. 공정하게 말하면 그 문제로는 다른 누구도 몰랐다. 프라하 유기화학·생화학연구소에서 일한 쇼름의 동기는 기존 항암제 시타라빈을 개선할 필요였다.

1950년대에 플로리다키스 연안 카리브해의 해면 Cryptotethya crypta에서 뉴클레오사이드 하나가 분리되었다. 이 생물활성 C-뉴클레오사이드는 티민과 거의 같아 보였고, 과학자들에게 밀접한 유사체를 만들도록 영감을 주었다. 그중 하나인 시타라빈(ara-C)이 1959년 버클리에서 합성되어 세포독성을 보였다. 별일 없이 임상을 통과해 1969년 백혈병·림프종 환자 치료로 FDA 승인을 받았다. 임상에 쓰기 위해 개발된 최초의 해양 유래 항신생물제 중 하나였다.

시타라빈의 성공에 영감을 받아 쇼름과 동료들은 새 뉴클레오사이드 유사체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이 눈여겨본 것은 아자뉴클레오사이드였다. 이름이 말하듯 헤테로고리에 질소 원자를 넣은 뉴클레오사이드 유사체다. 아자뉴클레오사이드는 시토신의 완벽한 등입체 대체물이면서, RNA와 DNA의 구조를 흐트러뜨릴 만큼은 충분히 달랐다. 정당한 구성단위인 척 '속여' 단일 또는 이중나선에 편입되는 것이다.

1963년 아자뉴클레오사이드 한 무리 가운데 아자시티딘과 데시타빈이 합성되었다. 시토신과의 차이는 5번 위치의 질소 하나뿐이다. 우연히도 아자시티딘은 그 직후 1966년 그람 양성 세균 Streptoverticillium ladakanum의 발효액에서 자연으로부터도 분리되었다. 아자시티딘과 데시타빈의 차이는 RNA와 DNA의 차이와 정확히 같다. 전자에 산소 원자가 하나 더 있다. 둘 다 마우스에서 항백혈병 활성을 보였다.

최초 임상은 1967년 시작되었고 소아 백혈병 활성 데이터가 1971년 처음 공개되어 여러 나라에서 전임상·임상 연구를 촉발했다. 아자시티딘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평균적으로 대략 2년을 더 살았다. 기존 화학요법을 받은 환자의 15개월과 비교된다. 데시타빈은 1981년 캐나다 퀘벡에서 시타라빈의 경쟁자로 1상을 진행했다. 결국 데시타빈(Dacogen)이 2004년, 5-아자시티딘(Vidaza)이 그 2년 뒤 FDA 승인을 받았다.

처음에는 두 약의 작용 방식이 다른 통상의 뉴클레오사이드 약물과 같다고 당연시되었다. 천연 뉴클레오사이드 구성단위로 위장해 DNA 합성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점차 기전이 그보다 복잡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실제로 세포 DNA 서열에 편입되기는 했다. 그런데 데시타빈이 DNA에 5%만 편입되어도 DNA 메틸화가 85% 감소했다. 이 숫자의 불균형이 결정적 단서였다.

정상적으로는 DNA 메틸트랜스퍼라제의 영향으로 시토신 같은 염기가 C5′ 위치에서 메틸화되어 5′-메틸시토신(처음에는 에피시토신이라 불렸다)이 된다. 그런데 아자시티딘과 데시타빈은 5번 위치가 질소여서 메틸화될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대신 DNA 메틸트랜스퍼라제 저해제로 작용한다. 후성유전 효소를 불활성화해 이른바 '저메틸화 효과'를 낸다. 종양억제유전자에서 메틸화된 DNA가 제거되면 그 유전자 활성이 재활성화되어 항암 효과가 나타난다.

따라서 두 약은 이중의 작용 방식을 갖는다. 세포독성으로 세포 사멸을 일으킬 수도 있고, 후성유전 저해제로서 탈메틸화를 통해 세포 분화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 깨달음이 후성유전학이라는 분야를 낳았다. 약이 먼저 있고 학문이 나중에 생긴 순서다.

餘談 · 약을 지키는 약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데시타빈의 효능에도 정맥 투여는 매우 불편하다. 데시타빈은 장과 간에 발현 수준이 높은 효소 시티딘 데아미네이스로 대사된다. 탈아미노화되면 활성을 완전히 잃는다. 연구자들은 초회통과 대사로부터 데시타빈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투여할 시티딘 데아미네이스 저해제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세다주리딘을 발견해 경구 병용이 가능해졌다. 데시타빈과 세다주리딘의 고정용량 경구 조합 인코비(Inqovi)가 오츠카의 자회사 아스텍스 파마슈티컬스에서 개발되어 2020년 출시되었다.

원저자는 이 구도가 화이자의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와 비슷하다고 짚는다. 주요 프로테아제 저해제 니르마트렐비르는 간 효소 CYP450 3A4로 대사되어 경구 생체이용률이 낮다. 이를 끌어올리기 위해 화이자는 3A4 저해제 리토나비르를 더했다. 두 약의 혼합인 팍스로비드는 경구로 복용할 만큼의 생체이용률을 갖는다. 주역을 지키기 위해 조역을 붙인다는 발상은 종양학의 국지적 요령이 아니라 약학의 일반 문법이다.

2.1.5.2 · HDAC 저해제 — 분홍색으로 변한 세포

1966년, 마운트사이나이 의대 실험생물학센터장 샬럿 프렌드가 또 하나의 후성유전 약물 계열, 히스톤 탈아세틸화효소(HDAC) 저해제의 발견으로 이어질 흥미로운 관찰을 했다.

10년 앞선 1956년, 프렌드는 이미 최초의 발암 바이러스 중 하나를 발견해 이름을 얻었다. 대학원을 갓 나와 슬론-케터링 암연구소에서 일하던 그는 애틀랜틱시티의 미국암연구학회(AACR) 회의에서, 성체 마우스에 접종하면 치명적 백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분리를 보고했다. 예기치 않게 발표가 끝나자 격렬한 논쟁의 폭풍이 일었다. 바이러스는 감염병만 일으키고 암은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의 보편적 도그마였기 때문이다. 1910년 페이턴 라우스가 닭의 사르코마 바이러스 결과를 발표했을 때 받은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그의 그룹을 조롱했다. “머리에 구멍이 났거나, 아니면 필터에 구멍이 났겠지.”

그러나 그의 견실한 실험 데이터는 곧 다른 존경받는 그룹들에 의해 재현되고 확인되었다. 그들은 그 레트로바이러스에 적절한 이름을 붙였다. 프렌드 백혈병 바이러스.

1966년 프렌드가 관찰한 것은 매혹적이었다. 마우스 백혈병 세포를 연구하며, 형질도입을 위해 세포를 '부드럽게 만들려고' 농축 다이메틸설폭사이드(DMSO)를 넣은 수성 완충액에서 배양했다. 하룻밤 사이에 이 암세포의 약 3분의 2가 붉게 변했다. 헤모글로빈의 존재를 시사하는 색이었다. DMSO 처리 전에는 무색이던 마우스 백혈병 세포가 분홍과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건강한 적혈구의 색이었다.

프렌드는 어찌나 흥분했던지 분홍색 세포 펠릿이 담긴 시험관을 들고 복도를 오르내리며 모두에게 보여 주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함의는 감질났다. DMSO에 치명적 백혈병 세포를 정상적인 건강한 세포로 전환시킬 잠재력이 있다는 것. 세포 분화를 일으켜 암세포가 증식 능력을 잃게 만든다는 것.

1장에서 야마기와가 토끼 귀에 암을 만들고 하이쿠 한 수를 남겼다면, 여기서는 한 병리학자가 분홍 세포 튜브를 들고 복도를 뛰어다닌다. 발견의 순간에 사람이 하는 행동의 목록은 짧고, 그래서 오래 기억된다.

프렌드는 이 놀라운 결과를 헤모글로빈 형성 조절을 연구하던 컬럼비아대학 교수 폴 마크스와 공유했다. 매혹된 마크스는 DMSO의 이 기묘한 '치유' 효과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용매인 DMSO는 사람에게 쓰기에 너무 독성이 강했다. 마크스는 화학 배경이 조금 있는 동료와 함께 DMSO와 비슷한 극성 화학물질을 찾았다. 분자생물학에 잠긴 의사였던 마크스에게 화학물질 이름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두 사람은 공급업체에서 극성 화합물 열두 개를 주문했다. 마법처럼 그것들 모두가 마우스 백혈병 세포에 헤모글로빈을 만들게 하고 성장을 멈추게 했다.

크게 흥분한 마크스는 친구 로이 바겔로스에게 부탁했다. 머크의 연구 총괄이었던 그에게, 개발 파이프라인에 있는 극성 화합물의 소량 시료를 달라고 청한 것이다. 약물 같은 화합물이라면 부작용 없이 DNSO의 효과를 낼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깊은 실망 속에, 머크의 200개 약물 중 어느 것도 DMSO의 효과를 갖지 못했다.

마크스는 이 과제가 자기 역량을 넘는다는 것을 알아차릴 만큼 똑똑했다. 전문가를 부를 때였다. 그는 컬럼비아의 동료인 화학 교수 로널드 브레슬로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렇게 30년 동안 이어질 결실 있는 협업이 시작되었다.

브레슬로의 연구실은 DMSO의 극성을 모사하는 단순한 극성 화합물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중 하나인 단순한 아세트아마이드는 세포 분화에서 DMSO보다 다섯 배 유효했지만, 실용적인 약이 되기에는 여전히 한참 부족했다. 결합력을 높이기 위해 그들은 서로 다른 길이의 링커로 아세트아마이드의 이량체를 만들었다. 오늘날 PROTAC의 링커와 그리 다르지 않은 발상이다. 6탄소 링커가 최적으로 판명되었다.

6탄소로 이어진 헥사메틸렌 비스아세트아마이드는 DMSO처럼 NCI에서 확보한 60종 인간 암 세포주의 세포를 정지시킬 수 있었다. 컬럼비아 팀의 흥분은 짧았다. 이 화합물은 세포에서는 그토록 잘 들었으나 in vivo에서는 효능이 없었다. 실험적으로 백혈병을 유도한 마우스는 그것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모두 죽었다.

1980년 마크스는 통합된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의 초대 원장 겸 CEO 자리를 받아들였다. 헥사메틸렌 비스아세트아마이드의 효능 부재가 부분적으로 생체이용률 부족 때문임을 알고, 마크스는 환자에게 정맥으로 투여하는 임상시험을 수행했다. 시험은 실패했다. 약이 너무 약했고 혈소판 억제라는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렸다.

동물 모델에서 잡히지 않는 효능을 얻기 위해 브레슬로는 화합물의 킬레이트 능력을 더 높이기로 했다. 가장 강력한 킬레이트기 중 하나인 히드록사메이트를 두 아마이드기 중 하나를 대체해 설치했다. 오늘 우리는 HDAC 표적에 촉매 활성의 열쇠가 되는 아연 양이온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야기를 짧게 하면, 1996년까지 수베로일아닐리드히드록사믹산(SAHA)이 합성되어 골디락스임이 입증되었다. 더 강력한 화합물은 부작용에 문제가 있었고, 덜 강력한 화합물은 암세포를 건강한 세포로 전환시키기에 부족했다. 히어로의 게이지가 여기서 다시 나온다.

그런데 항증식 약물로서 SAHA의 기전은 무엇인가?

1996년 마크스 연구 그룹의 어느 회의에서 박사후연구원 빅토리아 리숀이 1990년 일본 연구자 세 사람이 발표한 논문을 소개했다. 트리코스타틴 A라는 천연물에 관한 것이었다. 이 물질은 마우스 백혈병 세포에 비슷한 효과를 냈다. 헤모글로빈 생산 과정을 켜고 암세포 성장을 멈추었다. 트리코스타틴 A는 크로마틴에 있는 히스톤 탈아세틸화효소(HDAC)의 저해제였다. 게다가 트리코스타틴 A는 화학 구조에서 SAHA와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유레카의 순간이었다. 어디를 봐야 할지 알면 찾기가 더 쉽다. 실험 데이터는 SAHA가 실제로 HDAC 저해제임을 즉각 확인해 주었다.

DNA는 히스톤 단백질을 감고 있으며, 히스톤은 염색체의 구조적 지지대 역할을 한다. 크로마틴은 DNA, 히스톤 단백질, 비히스톤 단백질로 이루어져 구조적으로 복잡하다. HDAC는 후성유전을 통해 세포의 아세틸화를 통제하는 특수한 가수분해효소 계열이다. SAHA의 히드록사메이트 탄두는 HDAC의 촉매 아연 양이온과 단단히 킬레이트해 효소 기능을 저해한다. 히스톤의 라이신 잔기에서 아세테이트가 제거되는 것을 막아 결국 세포 사멸을 유도한다. 크로마틴 히스톤의 이 번역 후 변형을 후성유전적 유전자 조절이라 부른다. HDAC 저해제가 후성유전 항암치료로도 알려지는 이유다.

브레슬로와 마크스는 처음에 SAHA를 제약사에 라이선스아웃하려 했다. 어차피 약을 개발하는 것은 그들의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받을 사람이 없었다. 대형 제약사의 화학자 일부는 상당히 독단적이었다. 히드록사메이트는 워낙 독성이 강한 작용기이므로 — 일반적으로는 사실이다 — SAHA도 독성일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중 하나는 데이터의 타당성 자체에 이의를 걸었다.

선택지가 없어진 두 사람은 2001년 자기들의 바이오텍 스타트업 아톤 파마를 세웠다. 전임상 시험과 1·2상 인체시험을 완료하기 위해 1억 달러 가까이를 조달한 뒤, 아톤은 2004년 머크에 매각되었다. 머크는 훨씬 더 비싼 3상을 수행해 약을 시장에 내놓았다. SAHA는 2006년 보리노스타트라는 일반명으로 FDA 승인을 얻어 졸린자(Zolinza)라는 상품명으로 피부 T세포 림프종(CTCL) 치료에 판매된다.

FDA 승인 3년 뒤, 또 하나의 HDAC 저해제 로미데프신(Istodax)에 청신호가 켜졌다. 2009년 역시 CTCL 치료로 시장에 나왔다. 완전히 인공 분자인 SAHA와 달리 로미데프신은 천연물이다.

트리코스타틴 Atrichostatin A 1970년대에 시오노기의 일본 과학자 쓰지 나오키가 항진균제로 분리했다. 1990년 도쿄대학 요시다 미노루가 HDAC 저해제임을 밝혔다. SAHA와 구조가 놀랍게 닮아 컬럼비아 팀이 기전을 못 박는 데 결정적이었으나, 낮은 생체이용률과 용납할 수 없는 독성 때문에 끝내 약이 되지 못했다. 길을 알려 준 물질이 그 길을 걷지는 못한 셈이다.1970s 분리 · 1990 기전
로미데프신romidepsin · Istodax 1990년 일본 후지사와(현 아스텔라스)가 ras 형질전환 암세포의 형태를 되돌리는 능력을 지표로 고속대량 스크리닝을 수행해 찾아냈다. 야마가타 현 토양 시료에서 분리한 그람 음성 막대균 Chromobacterium violaceum 배양물에서 나왔다. SAHA·트리코스타틴 A와 달리 히드록사메이트 탄두가 없어 혼란을 일으켰으나, 1998년 요시다가 다이설파이드 결합이 티올로 환원된 뒤 촉매 아연에 킬레이트한다는 것을 보였다.1990 발견 · 2009 승인
그 뒤의 목록the rest 합성벨리노스타트(2014), 파노비노스타트(2015), 치다마이드(2019). 2024년에는 이탈리아 이탈파르마코의 지비노스타트(Duvyzat)가 비스테로이드성 뒤셴 근육병 치료제로 허가되었다. 항암제로 출발한 계열이 근육병으로 건너간 것이다.2014 – 2024

NCI는 출처를 가리지 않고 늘 새 항암제를 살피는 곳이다. 일본에서 나온 로미데프신의 전임상 데이터가 NCI의 관심을 끌어, 1998년 협력연구개발협정(CRADA) 아래 추가 종양학 연구를 후원했다. 임상 도중 글로스터 파마슈티컬스가 후지사와/아스텔라스에서 라이선스했고 2009년 승인되었다. 다만 CTCL 환자군이 상대적으로 작아 이 약은 크게 수익을 내지 못했다.

HDAC 외에 또 다른 후성유전 표적 EZH2도 시판 약물로 열매를 맺었다. 히스톤-라이신 N-메틸트랜스퍼라제라고도 불리는 EZH2는 히스톤 메틸트랜스퍼라제 복합체의 일부로 히스톤 H3의 27번 라이신 삼중메틸화를 담당한다. EZH2는 많은 악성종양에서 과발현되어 암 진행에 결정적 역할을 하므로 이를 막으면 종양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 에피자임(2022년 입센이 인수)이 에자이와 협력해 개발한 EZH2 저해제 타제메토스타트(Tazverik)가 상피성 육종 치료로 FDA 승인을 받았다. 그때까지 승인 치료가 전무한 희귀질환이었다. 같은 해 뒤에 재발성·불응성 여포성 림프종으로 적응증이 확대되었다. 다이이치산쿄가 개발한 또 하나의 EZH2 저해제 발레메토스타트 토실산염(Ezharmia)은 2022년 일본에서 재발성·불응성 성인 T세포 백혈병/림프종 치료로 승인되었다.

현재 막대한 관심을 끄는 후성유전 표적이 둘 더 있다. 단백질 아르지닌 메틸트랜스퍼라제 5(PRMT5)와 브로모도메인 함유 단백질 4(BRD4)다.

그런데 원저자는 이 절을 낙관으로 닫지 않는다. 현재 후성유전 치료의 한계는 특이성의 부재다. DNA 메틸화나 히스톤 아세틸화 경로를 저해하면 모든 세포에서 유전체 전체가 바뀔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후성유전 표적을 겨눈 저분자는 초기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 소수의 적응증에서만 승인되었고, 효능은 제한적이며, 대체로 상당히 독성이 있다. 유전체 전체를 상대로 하는 약이 좁은 치료창을 갖기는 어렵다는 것이 이 계열의 구조적 문제다.

02

천연물 — 도쿄와
밀라노의 흙

Natural Products as Cancer Chemotherapeutics

어머니 자연은 태고부터 호모 사피엔스에게 약전(藥典)의 뿔피리를 넘겨주었다. 종양학에서 오래 쓰인 천연물 중 FDA 승인 약물로는 미토마이신 C(1974년 최초 승인), 독소루비신(1974), 다우노루비신(1979), 블레오마이신(1979)이 있다. 종양학에서 가장 유명한 천연물은 빈카 알칼로이드와 탁산이며, 둘 다 미세소관 조절자로 작동한다.

2.2.1일본에서 온 미토마이신 C

미토마이신 C는 최초의 항생제 계열 항암제 중 하나다. 1955년 기타사토연구소의 하타 도주 그룹이 도쿄에서 채취한 토양 시료에서 얻은 세균 Streptomyces caespitosus의 발효액에서 분리했다. 미토마이신 C는 항감염제로는 약하지만, 이식 가능한 여러 랫·마우스 종양에 강한 화학요법 활성을 보였다. 일본과 이어 미국의 임상이 1974년 승인으로 이어졌다. 브리스톨 연구소(현 BMS)의 후원으로 유방암, 췌장암, 비소세포폐암, 그리고 다른 화학요법제와의 병용으로 여러 암 치료에 승인되었다. 오늘날 암 치료에서 칵테일 요법은 통례다.

화학자에게 미토마이신 C의 작용 방식은 매혹적이다. 우선 이것은 프로드러그다. 퀴논기가 환원되어 약리 효과를 내려면 효소적 생체환원이 필요하다. 그 뒤 미토마이신 C의 카바메이트와 아지리딘 부분이 극도로 반응성 높은 중간체가 되어 DNA 염기를 포함한 친핵체를 알킬화할 수 있다. 그래서 미토마이신 C는 네 종의 단일부가체와 두 종의 가교를 만든다.

미토마이신 C가 항신생물제로 매우 효율적이지만 임상 적용은 골수와 다른 조직에 대한 독성으로 유의하게 제약되었다. 임상에 워낙 오래 쓰였으므로, 국소적으로 녹내장을 치료하는 데도, 다른 항생제에 저항하는 어떤 'persister' 세균 감염을 치료하는 데도 쓰임을 찾았다. 오래 쓰인 약은 스스로 새 적응증을 발견해 낸다.

2.2.2일본에서 온 블레오마이신

1944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니혼카야쿠의 우메자와 하마오는 과학자 그룹을 이끌어 2차 대전 말미에 페니실린을 분리했다. 성과는 미미했다. 1963년 우메자와와 동료들은 Streptomyces verticillus에서 항생물질 블레오마이신을 분리했다. 이 약은 1966년 여러 종양에 유의한 세포정지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었다. 1969년 니혼카야쿠가 일본에서 출시했고, BMS의 후원으로 1973년 편평세포암, 고환암, 악성 림프종 치료로 미국에서 쓸 수 있게 되었다.

블레오마이신의 구조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증언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정확한 구조는 1978년에야 규명되었다. 분리로부터 15년이다.

블레오마이신이 어떻게 세포독성을 내는지 알아내는 데는 더 오래 걸렸다. 결국 금속 의존성 산화를 통해 RNA와 DNA를 서열 특이적으로 절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예일 의대의 조앤 스터브가 1970년대 말 그 기전을 연구했다. 그는 블레오마이신이 철(II)과 산소의 존재에서 라디칼 화학으로 DNA 가닥 절단을 매개하며, 블레오마이신 분자 하나로 이중가닥 DNA 절단이 충분하다는 것을 확립했다. 1987년 MIT로 옮긴 스터브는 2020년 미국화학회에서 화학 분야 평생 업적에 주는 프리스틀리 메달을 받았다.

골수 억제는 거의 모든 화학요법에 공통된다. 다른 항암제보다 우월한 점으로, 블레오마이신은 골수억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병용 화학요법 요법에 넣어 쓸 수 있다. 이 계열에서 이만한 미덕은 흔하지 않다.

2.2.3이탈리아에서 온 독소루비신

1960년대 초는 이탈리아 경제와 산업의 번영과 발전의 시기였다. 이른바 '이탈리아 붐'이 과도한 과학적 혁신도 자극했다. 1957년 노벨상 수상자 다니엘 보베가 이탈리아로 가 그들의 신약 개발을 지휘했다. 밀라노의 줄리오 나타는 합성 고분자 화학으로 1963년 노벨상을 받았다. 그리고 두 개의 놀라운 항암제, 다우노루비신과 독소루비신이 밀라노에서 발견되었다.

2.2.3.1 · 야유회에서 가져온 흙

셀먼 왁스먼의 스트렙토마이신의 놀라운 성공에 영감을 받아, 1957년 여름 밀라노 파르미탈리아 연구소의 과학자들이 흙에서 항생제를 찾기 시작했다. 파르미탈리아 직원 약 100명을 위해 조직한 아풀리아 야유회에서, 한 과학자가 아드리아해 연안의 유명한 13세기 성 카스텔 델 몬테에서 채집한 토양 시료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 흙에서 그는 스트렙토마이신을 낳은 것과 같은 속(屬)인 Streptomyces의 새로운 균주를 분리했다. 1958년 말까지 그 균주 배양액의 조(粗)부탄올 추출물이 항균·항진균 활성을 조금 보였다. 게다가 마우스의 에를리히 암종과 사르코마 180, 복수형에 대해 유망한 항종양 활성도 보였다. 훗날 Streptomyces peucetius로 명명된 이 균주의 이름은 고대에 아풀리아 일대에 살았던 페우케티 부족에서 왔다. 주세페 카시넬리가 이끄는 그룹이 1959년 배양액에서 이 곰팡이의 표현형 일곱 개를 분리했다.

일곱 표현형 중 파르미탈리아는 1형에 집중했다. 안트라사이클린 아글리콘에서 오는 짙은 붉은색 대사물이 수율과 세포독성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이 페이지의 붉은색이 거기서 왔다. 1962년 초까지 최적화된 발효 공정으로 붉은 색소인 활성 본체를 순수하고 결정성 형태로 3그램 얻었고, 이로써 추가 in vitro·in vivo 연구와 구조 규명이 가능해졌다.

이윽고 파르미탈리아는 이 약에 다우노마이신이라는 일반명을 붙였다. 접두사 'daun-'은 수백 년 전 아풀리아 일대에 살았던 다우니 부족을 기념한다. 우연히도 프랑스 론-풀랑크가 같은 시기에 같은 천연물을 독립적으로 분리했다. 론-풀랑크는 루비도마이신이라는 일반명을 붙였다. 훗날 세계보건기구(WHO)가 다우노마이신과 루비도마이신을 합쳐 다우노루비신으로 개명해 그 이중의 기원을 반영했다. 약의 이름 안에 두 나라가 들어 있다.

餘談 · 전문가도 틀린다

다우노루비신의 신규성을 평가하기 위해 파르미탈리아는 괴팅겐대학의 한스 브로크만에게 시료를 보냈다. 브로크만은 다우노루비신이 속한 안트라사이클린의 개척자이자 세계적 전문가였다. 2주 뒤 브로크만이 답을 보내왔다. 다우노루비신은 이미 알려진 더 오래된 안트라사이클린과 같은 것이라는, 잘못된 결론이었다. 원저자는 여기에 괄호를 하나 달아 둔다. 전문가도 틀린다.

그러나 파르미탈리아 자신의 데이터가 신규성을 확립했고, 그들은 특허를 확보해 지식재산으로 삼았다. 세계 최고 전문가의 판정과 자기 데이터가 어긋날 때 자기 데이터를 믿는 일은, 1장 에이버리의 이야기에서 스웨덴의 함마르스텐이 반대로 실패한 바로 그 지점이다.

1963년 파르미탈리아 연구 책임자 아우렐리오 디 마르코가 뉴욕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연구소의 저명한 종양학자 데이비드 카르노프스키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우노루비신의 전임상·임상 연구에 관한 집중적이고 결실 있는 대서양 횡단 협업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이 약의 붉은색이 다시 한 번 결정적으로 쓰인다. 고유한 형광 발색 덕에 세포독성을 강한 염색체 이상과 핵 손상, 그리고 핵 크기 감소와 편리하게 상관지을 수 있었다. 이것이 모든 일을 쉽게 만들고 프로그램을 가속했다. 눈에 보이는 약은 연구가 빠르다. 1장에서 퍼킨의 염료가 염색체를 보이게 만들었듯, 여기서는 약 자체가 스스로 빛을 냈다. 이후 다우노루비신이 DNA에 강하게 결합해 그 기능을 방해하며, RNA 합성과 세포분열에서 프라이머로도 작용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론-풀랑크는 파리에서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를 위한 자체 임상시험을 수행했다. 효능은 있었으나 다우노루비신의 급성 및 만성 심장독성이 관찰되었다. 이 심장독성은 다우노루비신과 그 유사체를 쓰는 데 늘 따라붙는 골칫거리가 된다.

1964년 미국 임상 중 다우노루비신은 그 효능으로 센세이션이 되었다. 지역 신문들까지 이 약을 복용한 일부 소아 환자에서 급성 백혈병이 완전 또는 부분 완화되었다고 보도했다. 다우노루비신은 1968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승인되었다. 여러 요인이 겹쳐 FDA 승인은 1979년까지 오지 않았다. 그때쯤 초기 시험에 참여한 일부 아이들은 이미 10년 넘게 무암(無癌) 상태였다. 미국에서 승인이 늦어진 이유 하나는, 파르미탈리아가 다우노루비신보다 더 좋은 약을 찾았기 때문이다. 독소루비신이었다.

2.2.3.2 · 독소루비신

다우노루비신의 임상이 잘 진행되는 동안, 파르미탈리아 과학자들은 S. peucetius를 무작위로 돌연변이시킨 균주의 배양에서 또 하나의 항생물질 독소루비신을 분리했다. 다우노루비신의 14-수산화 유도체인 독소루비신은 다우노루비신과 매우 비슷하지만, 치료지수가 더 길조롭고 활성 스펙트럼이 더 넓다. 현재 독소루비신은 다우노루비신을 화학적으로 전환해 상업적으로 얻는다. 전자를 대량으로 손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소루비신의 임상은 1969년 시작되어 1971년 이탈리아, 1974년 미국에서 승인되었다. 미국 후원사 업존은 아드리아해 근처의 기원에 기대어 아드리아마이신(Adriamycin)이라는 상품명을 붙였다. 독소루비신은 불가피한 심장독성에도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성공한 항암제 중 하나가 되었다. 파르미탈리아는 독소루비신을 밀라노시에서 나온 최고의 약 중 하나로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독소루비신은 많은 연부조직 암종과 일부 소아 악성종양에 처방된다. 다만 탈모와 구내염을 피하기 위해 더 낮은 용량으로 써야 한다. 사용자의 2~7%에 영향을 주는 심근증이라는 치명적 독성 반응이 그 효용을 심각하게 제한했다. 개선책으로 리포솜에 캡슐화한 독소루비신(Doxil)이 1995년부터 에이즈 관련 카포시 육종과 백금 저항성 난소암 치료로 판매되었다. 독실의 반감기는 약 55시간으로 2~3주에 한 번만 투여하면 된다.

다우노루비신과 독소루비신은 공통의 안트라사이클린 아글리콘을 가지면서 당 부속물이 다르다. 몇몇 선행 물질과 함께 안트라사이클린계 항생제 항암제로 통칭된다. 유감스럽게도 이 계열의 약은 기전에 기반한 독성으로서 심장독성에 시달린다.

2.2.3.3 · 2,000개의 유도체, 살아남은 둘

다우노루비신과 독소루비신, 특히 후자의 성공 덕에 파르미탈리아는 2,000개가 넘는 새 유도체를 만들었다. 임상적으로 중요한 것은 몇 개뿐이었다. 미국의 파마시아앤드업존이 개발한 이다루비신(1990)과 에피루비신(1999)이 그것이다.

2.2.3.4 · 기전, 그리고 이긴 전투와 지고 있는 전쟁

안트라사이클린의 작용 기전은 여섯 개가 넘는 경로가 얽혀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두 주요 기전은 DNA 삽입토포아이소머레이스 II 독작용이다.

1950년대 말 괴팅겐의 브로크만은 이미 최초의 안트라사이클린 항생제 중 하나인 액티노마이신 C가 세포의 핵에 농축되는 것을 관찰했다. 1965년 디 마르코가 이끄는 파르미탈리아 과학자들은 다우노루비신의 송아지 흉선 DNA에 대한 결합 친화도를 검출했다. 항증식 약물 계열로서 안트라사이클린은 세포주기의 모든 상에 작용하며, DNA 나선에 직접 결합해 N-7-구아닌 잔기를 가교한다. 가교된 복합체가 DNA 가닥 절단을 일으켜 비정상 염기쌍을 낳고, 세포분열을 저해하며 궁극적으로 세포 사멸을 낳는다.

더 많은 실험 데이터는 곧 기전이 단순한 DNA 삽입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예컨대 안트라사이클린은 DNA와 DNA 복제에 필수적인 효소 토포아이소머레이스 II와 삼원 복합체를 만든다. 이 복합체가 효소의 재봉합 활성을 교란해, 빠르게 복제하는 암세포에서 DNA와 RNA 합성 저해로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이 계열의 비극이 나온다. 산화환원 매개 기전이 안트라사이클린의 세포독성과 심장독성 양쪽을 담당한다. 안트라사이클린이 철에 결합하면 그 착물이 라디칼 형성을 촉진해 심장 조직 손상을 일으킨다. 효능을 내는 기전이 곧 심장을 망치는 기전이다.

오늘날 안트라사이클린 항암제 연구는 거의 전적으로 기전 규명과 용량 제한적 심장독성의 최소화에 집중한다. 원저자는 어느 과학자들의 한탄을 그대로 옮겨 이 절을 닫는다.

우리는 전투에서는 이기고 있으나, 전쟁에서는 지고 있다.

안트라사이클린을 두고 어느 과학자들이 한 말 · 원서 §2.2.3.4

이 문장이야말로 이 장의 제목을 다른 말로 옮긴 것이다.

03

미세소관 억제제

Microtubule Inhibitors

암세포도 정상 세포와 마찬가지로 두 딸세포를 내놓기 위해 네 단계의 세포주기를 지난다. 첫째는 성장기(G1), 둘째는 DNA 합성기(S), 셋째는 또 하나의 성장기(G2), 넷째는 분열기(M)다. 마지막 분열기는 다섯 단계로 일어난다. 간기, 전기, 중기, 후기, 말기.

중기에서 후기로의 전환에는 미세소관 구성단위를 통한 염색체의 분리가 필요하다. 미세소관은 진핵세포 분열 중 염색체를 분리하는 방추체의 핵심 구성요소다. 따라서 미세소관 동역학을 조절하면 분열이 막혀 세포 사멸이 일어난다. 분열기에서 세포를 정지시키는 화합물을 항분열제라 한다.

미세소관 억제제는 네 계열이다. 빈카 알칼로이드, 할리콘드린 B 유사체, 탁산, 에포틸론. 빈카 알칼로이드와 할리콘드린 B 유사체는 미세소관을 탈안정화하고, 탁산과 에포틸론은 안정화로 미세소관 기능을 교란한다. 방향이 정반대인데 결과가 같다는 것이 이 절의 요점이다.

탈안정화 — 짓지 못하게 한다 빈카 알칼로이드 — 자유 튜불린 이량체에 결합 벽돌을 붙들어 굴뚝을 못 쌓게 한다 에리불린 · 할리콘드린 B — 플러스 말단에 결합 자라는 끝에만 뚜껑을 덮는다 안정화 — 허물지 못하게 한다 탁산 — 조립된 미세소관에 결합, 자유 튜불린이 아니다 거대한 다발이 생겨 세포골격의 성장이 정체된다 에포틸론 — β-튜불린에 결합해 탈중합을 막는다 방향은 정반대인데 결과는 같다. 어느 쪽이든 방추체가 제 일을 못 한다.
도해 2 — 어느 시점을 붙드는가같은 방추체를 겨누면서도 결합 시점이 다르다. 빈카는 조립 전의 벽돌을, 에리불린은 자라는 끝을, 탁산은 이미 지어진 관을 붙든다. 1979년 수전 호위츠가 탁솔의 결합 부위가 자유 튜불린이 아니라 조립된 미세소관임을 밝힌 것이 이 계열의 판을 갈랐다. 원서 §2.3의 서술을 근거로 본 문서에서 새로 작도했다.

2.3.1빈카 알칼로이드 — 캐나다가 의학에 준 것

암을 치료한 최초의 천연물은 일일초 잎에서 분리한 빈카 알칼로이드다.

일일초는 매력적인 분홍 또는 흰 꽃이 피는 다년생 관목이다. 처음에는 아열대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섬에 많이 자라 마다가스카르 일일초라 불렸다. 지금은 많은 공원과 정원에서 관상식물로 볼 수 있다. 원래 Vinca rosea라 불렸고 공식 학명은 Catharanthus roseus다.

자메이카 원주민은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해 일일초로 만든 약초차를 마셨다. 이 민간요법에 흥미를 느낀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학의 내분비학자 로버트 노블이 1952년 일일초 추출물이 동물의 혈당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처음에는 당뇨 토끼와 랫에게 일일초 잎을 경구로 먹였는데 혈당에 아무 영향이 없었다.

노블은 잎의 추출물로 바꾸었다. 1920년대 초 토론토대학에서 인슐린 발견에 참여해 유명해진 제임스 콜립과 함께 일일초 추출물을 얻었다. 멸균·농축한 추출물을 랫에게 복강 내로 주었더니 모든 동물이 5일 뒤 세균 감염으로 죽었다. 자세히 보니 랫의 백혈구와 골수 수치가 급락해 세균에 무방비 상태가 된 것이었다.

여기서 이 장의 첫 절과 똑같은 문장이 다시 나온다. 백혈구와 암세포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둘 다 정상적인 건강한 세포보다 빨리 자란다. 노블은 현명하게 연구 방향을 틀어, 일일초 추출물에서 항증식 물질을 찾는 쪽으로 옮겼다. 겨자가스에서 얻은 통찰이 자메이카의 당뇨차에서 한 번 더 작동했다.

1954년 유기화학자 찰스 비어가 콜립 그룹에 합류해, 백혈구를 죽이고 골수를 고갈시키는 활성 본체를 분리하는 일에 나섰다. 1957년까지 건조한 일일초 잎 22킬로그램에서 미지의 인돌 알칼로이드 100밀리그램을 순수 결정형으로 얻었다. 나중에 빈블라스틴이라 명명된다. 함량은 0.01%로 미량이다. 이어 비어는 또 하나의 활성 화합물 빈크리스틴을 분리했는데 이것은 더욱 희소했다. 0.0003%.

숫자를 옮기면 이렇다. 빈블라스틴 1그램에 건조 잎 500킬로그램, 빈크리스틴 1그램에 건조 잎 2톤. 일라이릴리에서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을 때, 마른 일일초 15톤에서 빈블라스틴 겨우 28그램을 뽑았다.

1958년 노블이 빈크리스틴에 관한 결과를 발표했을 때,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온 일라이릴리의 한 과학자가 자기들도 비슷한 관찰을 했다고 알려 왔다. 천연물에서 약을 찾는 과정에서 릴리의 화학자 고든 스보보다는 일일초 꽃의 조추출물 처리가 L1210 마우스 백혈병 세포주를 이식한 마우스의 생명을 연장시킨다는 것을 발견한 터였다. 웨스턴온타리오와 인디애나폴리스 두 그룹 사이에 우호적이고 결실 있는 협업이 이어졌다.

스보보다와 동료들은 빈블라스틴과 빈크리스틴의 구조를 규명하는 도전도 맡았다. 그 결과 두 빈카 알칼로이드의 화학 구조는 거의 동일함이 드러났다. 이 커다란 두 분자의 유일한 차이는, 어느 한 위치에서 빈크리스틴은 포밀기를 갖고 빈블라스틴은 메틸기를 갖는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화학적으로 그토록 비슷한 두 약이, 영향을 주는 종양의 종류와 독성 성질에서 뚜렷하게 달랐다.

성공적인 임상시험으로 1963년 빈크리스틴(Oncovin), 1965년 빈블라스틴(Velban)이 일라이릴리에 라이선스되었다. 주로 병용요법의 구성요소로 쓰이는 빈크리스틴은 호지킨병, 고환암, 난소암, 유방암 치료에 처방된다. 빈블라스틴은 역시 대개 병용 요법으로 소아 림프성 백혈병과 호지킨병 치료에 효능을 보였다. 다시 말하지만, 미세한 구조 차이에도 두 빈카 알칼로이드 약물은 서로 바꿔 쓸 수 없다.

마다가스카르 일일초의 예쁜 관상용 꽃이 부분적으로 수천 명의 목숨을 구했다. 빈크리스틴과 빈블라스틴의 발견은 캐나다가 의학에 남긴 가장 위대한 기여 중 하나다. 이에 견줄 만한 것은 물론 1921년 토론토대학에서 프레더릭 밴팅과 찰스 베스트가 인슐린을 발견한 일뿐이다.

원서 §2.3.1.1

2.3.1.2 · 새 빈카 알칼로이드, 그리고 초강산의 승리

원래의 두 빈카 알칼로이드 위에 두 개가 더 시장에 있다. 비노렐빈과 빈플루닌이며 둘 다 반합성 유래다. 합성된 수많은 빈블라스틴 유도체 중 빈데신(Eldisine)이 릴리에서 출시되었으나, 상당한 신경독성을 비롯한 유의한 부작용으로 시장에서 철수되었다.

비노렐빈은 1978년 피에르 포티에가 이끄는 프랑스 화학자 그룹이 반합성으로 만들었다. 포티에는 훗날 탁소텔의 반합성으로 잘 알려지는 그 사람이다. 화학적으로 비노렐빈은 천연의 9원환 카타란틴 부분을 8원환 카타란틴으로 치환한 점에서 빈블라스틴과 다르다. 이 구조 변형으로 다른 빈카 알칼로이드보다 친유성이 커졌다. 그 결과 더 넓은 스펙트럼의 특이적이고 강한 항분열 성질과 더 낮은 독성을 갖는다. 유럽 임상으로 1989년 프랑스에서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치료로 승인되었고, 1994년 글락소웰컴의 나벨빈(Navelbine)으로 미국에서도 비소세포폐암에 승인되었다. 최근의 진전 하나는 경구 투여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시장에 들어온 네 번째이자 마지막 빈카 알칼로이드는 빈플루닌이다. 그 발견은 유기화학 방법론의 승리, 곧 초강산 화학을 이용한 불소화의 승리다.

1988년 프랑스 툴루즈 피에르파브르 연구소의 화학자들은 빈카 알칼로이드를 불소화하려 했다. 그리고 예기치 않게 발견했다. 비노렐빈이 그 수많은 취약한 작용기에도 초강산 매질에서 안정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비노렐빈을 불화수소와 오불화안티모니 혼합물로 처리하기만 하면 단 한 단계로 빈플루닌이 얻어졌다. 빈플루닌(Javlor)은 2009년 EMA 승인을 받았고, 다른 빈카 알칼로이드에 비해 신경독성 발생률이 감소했다.

수십 개 관능기를 매단 거대 알칼로이드를 초강산에 던져 넣는다는 발상은 정상적인 화학자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통했고, 한 단계로 신약이 나왔다.

2.3.1.3 · 기전

빈카 알칼로이드 각각이 세부 기전에서 고유한 특성을 갖지만 공통의 주제를 공유한다.

빈카 알칼로이드는 방추체 독으로 알려져 있었다. 방추체는 세포주기의 분열에 필수적이다. 방추체를 독으로 망치고 미세소관을 탈안정화해, 빈카 알칼로이드는 분열기에서 세포분열을 멈추고(분열기 정지) 아폽토시스로 세포 사멸을 일으킨다.

그런데 현실에서 방추체를 망치는 것은 전체 과정의 '중간상'에 지나지 않는다. 미세소관 네트워크는 중합과 탈중합의 동역학적 평형으로 기능한다. 첫 단계에서 빈카 알칼로이드는 방추체 미세소관의 주된 구성단위인 단백질 튜불린의 이량체에 직접 결합한다. 원저자의 비유가 정확하다. 속이 빈 미세소관에 튜불린은 굴뚝에 벽돌과 같다. 벽돌을 붙들어 놓으면 굴뚝이 서지 않는다. 탈안정화된 미세소관은 방추체 장치의 붕괴를 낳는다. 끝에는 염색체가 중기에서 분열 중 서로 떨어지지 못해 세포가 아폽토시스에 이른다.

빈카 알칼로이드 → 튜불린 × 미세소관 × 방추체 × 세포분열 세포 사멸

빈카 알칼로이드에는 다른 부차적 기전도 여럿 입증되었다. 퓨린 합성 저해, DNA·RNA·단백질 합성 저해, 해당과정 저해 등이다.

모든 화학요법 중 가장 흔한 부작용은 골수억제이고 신경병증이 두 번째다. 그런데 마침 빈블라스틴의 주된 독성은 골수억제이고 빈크리스틴의 흔한 부작용은 말초신경병증이다. 화학요법의 대표적 독성 두 가지를 이 두 약이 나누어 가진 셈이다. 예상대로 전체 효능을 높이고 독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병용 요법이 더 흔하다.

2.3.2에리불린, 사람이 만든 가장 복잡한 약 바다

전이성 유방암과 지방육종 치료에 처방되는 에자이의 에리불린(Halaven)은 실험실에서 합성된 가장 복잡한 약이다.

이야기는 1986년, 시즈오카대학의 히라타 요시마사와 우에무라 다이스케가 일본 태평양 연안에서 흔히 발견되는 검은 해면 Halichondria okadai에서 매우 복잡한 분자 계열의 분리를 보고하면서 시작된다. 그중 가장 강력한 할리콘드린 B는 나노몰 이하의 세포 성장 저해 역가와 좋은 물성을 보였다.

NCI는 마우스 백혈병 세포에 대한 높은 세포독성에 마땅히 감명받았다. 할리콘드린 B를 더 얻기 위해 NCI는 뉴질랜드 과학자들과 계약해 해상 기법으로 해면을 양식하고 이 귀한 화합물을 분리하도록 했다. 1,000킬로그램의 채집물에서 할리콘드린 B 310밀리그램을 얻어 일부 전임상 실험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문제가 많이 남았다. 추출물은 구조적으로 관련된 여러 유사체의 혼합물이었다. 그런데 약물 원료는 잘 정의되고 재현 가능한 불순물 프로파일을 갖도록 통제되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되는 것이 선호된다. 출처가 무엇이든 모든 시판 약물에 필수적인 요건이다.

문제는 하버드대학의 기시 요시토가 풀었다. 기시는 일본에서 자라 나고야대학에서 박사를 받고 196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와 하버드에서 저 유명한 R. B. 우드워드 밑에서 박사후연구를 했다. 일본으로 돌아가 나고야대학에서 몇 해 가르친 뒤 1974년 화학 교수로 하버드에 초빙되었다. 그는 전합성의 세계적 스승이 되었으며, 당시 실험실에서 만든 가장 복잡한 천연물인 팔리톡신의 조립으로 가장 잘 알려졌다.

NCI 연구비를 받아 기시 그룹은 1987년경 할리콘드린 B 합성 프로그램을 시작해 1992년 최초의 전합성 성공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 사이 NCI는 할리콘드린 B의 작용 방식을 보고했다. 빈카 알칼로이드와 비슷하게 미세소관을 탈안정화하지만, 빈카와 달리 미세소관의 플러스 말단 부위에서 튜불린에 결합한다. 이 독특한 기전이 NCI, 하버드의 기시, 에자이 연구소의 3자 협업을 촉발했다.

기시는 전합성의 중간체를 다수 에자이로 보내 생물학적 시험을 하고 함께 구조-활성 관계를 탐색했다. 많은 사람의 놀라움 속에, 할리콘드린 B의 최소 파마코포어는 처음에 많은 이들이 짐작한 왼쪽 폴리에테르 측쇄가 아니라 오른쪽의 거대고리 락톤이었다. 이 락톤이 대사적으로 불안정하므로 에자이는 더 안정한 에테르나 락탐으로 바꾸려 했으나 락톤보다 역가가 유의하게 낮았다. 다행히 락톤을 케톤으로 치환한 화합물이 할리콘드린 B와 동등하게 활성이었다. 이후 생물학적 프로파일과 약동학 성질의 최적화가 거대고리 케톤인 에리불린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에리불린은 모화합물 할리콘드린 B보다 3배 높은 친화도로 미세소관에 결합한다. 포화된 sp3 탄소 원자가 많은 덕에 매우 잘 녹는다. 탁솔의 완강한 불용성과는 극명한 대조다. 할리콘드린 B보다 구조적으로 덜 복잡하지만, 에리불린도 19개의 키랄 중심이라는 가공할 복잡성을 지닌다.

기시 그룹과 마빈 유가 이끄는 에자이 화학자들이 함께 '겨우' 62단계의 고도로 수렴적인 에리불린 합성법을 개발했다. 이 공정은 17회의 결정화 단계와 단 1회의 크로마토그래피를 포함한다. 에자이 공정화학자들의 뛰어난 기량을 보여 주는 숫자다. 크로마토그래피를 한 번만 쓴다는 것은 산업 규모에서 결정적인 미덕이다.

결국 에자이 화학자들은 cGMP 품질의 물질 6그램 이상을 NCI에 공급해 1상 임상을 개시했다. 유망한 결과가 나오자 에자이가 바통을 이어받아 2·3상을 수행했다. 에리불린(Halaven)은 2010년 전이성 유방암, 2016년 지방육종 치료로 FDA 승인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1986년 할리콘드린 B에서 2010년 할라벤 승인까지 최소 24년이 걸렸다.

기전은 할리콘드린 B와 같다. 에리불린은 미세소관 탈안정화제로서 특이적인 플러스 말단 결합을 통해 미세소관 중합을 저해하고, 미세소관 동역학적 불안정성을 방해한다. 그 결과 분열이 억제되어 궁극적으로 G2–M 상에서 세포주기가 정지하고 아폽토시스가 따라온다.

2.3.3탁산 — 여덟 해의 침묵 껍질

탁솔은 1992년 이래 100만 명이 넘는 환자에게 쓰여, 가장 널리 처방되는 항암제 중 하나가 되었다. BMS가 1992년 탁솔을 상표로 등록했지만 탁솔은 1966년부터 쓰이고 있었다. 이 약의 일반명은 지금 파클리탁셀로 되돌아갔으나, 여기서는 편의와 친숙함을 위해 탁솔로 쓴다. 작용 방식에서 탁솔과 그 유사체 탁산은 미세소관 안정화제로, 탈안정화제인 빈카 알칼로이드와 에리불린의 정반대에 선다.

2.3.3.1 · 탁솔의 서사시

탁솔의 발견에는 정부기관, 학계, 제약업계의 수많은 과학자가 관여했다. 그 전체 사업에 결정적이었던 한 사람은 먼로 월이다. 1916년 뉴저지에서 태어난 월은 1935년 럿거스대학에 진학해 화학을 공부했다. 그는 식물의 화학, 곧 식물화학에 매료되었다. 1941년 박사를 받은 뒤 20년간 미국 농무부(USDA)에서 식물 천연물을 조사했다. 1960년 노스캐롤라이나의 리서치트라이앵글연구소로 옮겨 천연물 연구실 책임자가 되었다. 4년 뒤 새 화학 동료 만수크 와니가 합류했다. 두 사람은 30년을 함께 일하며 많은 천연물을 발견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둘이 캄프토테신탁솔이며 둘 다 항분열 항암제다.

1966년 월과 와니는 중국 희수(Camptotheca acuminata)에서 캄프토테신의 분리를 보고했다. 일은 1963년 희수의 목재와 껍질 20킬로그램이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추출물이 NCI에서 조직배양 중인 KB 세포에 세포독성을 보인다는 in vitro 시험 결과가 먼저 나왔기 때문이다.

리서치트라이앵글의 팀은 분리에 라이먼 크레이그의 향류 분배 장치를 쓴 다음, L1210 마우스 백혈병 생존 연장 분석이라는 in vivo 방법으로 각 분획의 생물학적 활성을 추적했다. 이 마우스 수명 분석은 일라이릴리가 빈카 알칼로이드를 발견할 때 쓴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 미칠 만큼 느렸다. 의미 있는 데이터를 얻는 데 3개월 이상 걸렸다.

캄프토테신이 분리되고 구조가 규명되었다. 불행히도 캄프토테신은 어찌나 녹지 않았던지 끝내 약이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후 수십 년간 용해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두 개의 시판 약물을 낳았다. 하나는 업존(현 화이자)의 토포테칸이고 다른 하나는 GSK의 이리노테칸이다. 이후 기전 연구로 캄프토테신·토포테칸·이리노테칸이 DNA 복제 중 감기와 풀림에 관여하는 효소 DNA 토포아이소머레이스 I의 저해제임이 밝혀졌다.

캄프토테신의 성공은 다음의 더 큰 발견 탁솔의 길을 놓았다. 캄프토테신 작업 중 월은 KB 세포 in vitro 세포독성과 L1210 in vivo 항암 효능 사이의 강한 상관을 알아차렸다. 그는 KB 세포주에서 활성인 식물 시료를 NCI에 요청해 많이 받았다. 동료 대다수가 in vitro 데이터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던 시절이다. 그 식물 시료 중 하나에 탁솔이 있었다.

1962년 USDA의 식물학자 아서 바클레이가 태평양 주목(Taxus brevifolia) 시료를 채집했다. 2년 뒤 NCI 조너선 하트웰의 연구실이 KB 세포 배양에서 그 추출물의 놀라운 세포독성 효과를 처음 관찰하고 나무껍질 한 무더기를 월에게 보냈다. 잘 벼려진 '생물활성 유도 분획법'으로 월의 팀은 1967년 활성 본체 탁솔을 흰 결정으로 분리했다.

그런데 구조 규명이 좀처럼 되지 않아 월은 더 생산적인 다른 과제로 넘어가기로 했다. 와니의 인내와 완강함과 화학 솜씨, 특히 그의 재결정 기술 덕에 결국 X선 결정학의 도움으로 탁솔의 구조가 풀렸다. 월과 와니는 1971년 결과를 발표하며 탁솔이 특정 이식 마우스 암 모델에서 in vivo 활성을 보인다고 적었다.

그리고 여덟 해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탁솔은 1979년, 그때까지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기전으로 작동한다는 것이 밝혀지기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79년 뉴욕 앨버트아인슈타인 의대의 조교수였던 생물학자 수전 호위츠가, 탁솔이 당시 알려진 어떤 약과도 다른 방식으로 암세포를 죽인다는 것을 밝혔다. 탁솔은 튜불린에 화학량론적으로, 비공유적으로 결합한다. 그런데 결합 부위는 자유 튜불린이 아니라 조립된 속 빈 미세소관이다. 탁솔로 처리한 세포는 미세소관을 재조직해, 현미경 아래에서 세포 안에 뚜렷한 커다란 미세소관 다발이 보였다. 그 다발이 세포골격의 성장을 정체시켜 세포분열을 막고 궁극적으로 아폽토시스를 촉발했다.

이 새로운 기전이 NCI의 관심을 자극했다. 그런데 충분한 탁솔을 구하는 일이 엄청난 난관이었다. 탁솔 1킬로그램을 분리하려면 마른 태평양 주목 껍질 약 20,000파운드가 필요했다. 환자 한 명을 치료할 만큼의 탁솔을 뽑으려면 귀한 100년 된 주목 두 그루를 베어야 한다고 계산되었다.

1984년까지 NCI는 충분한 양성 전임상 데이터와 충분한 탁솔을 모아 환자 30명으로 1상을 시작했다. 탁솔은 악명 높게 녹지 않으므로 에탄올과 피마자유로 만든 계면활성제 크레모포어 EL을 써서 문제를 넘겼다. 그런데 주입 중 크레모포어 EL이 아나필락시스를 포함한 심각한 알레르기를 일으켜 사업 전체가 거의 탈선했다. 알레르기를 넘어서기 위해 환자에게 탁솔 용액 정맥 투여 전 항히스타민제를 선제적으로 주어야 했다.

NCI는 1987년 2상으로 나아갔다. 2년 뒤 BMS와 계약을 맺어, BMS가 NCI를 위해 화합물을 생산하고 그 대가로 임상 결과에 접근권을 얻도록 했다. 1991년 NCI는 탁솔 시험을 BMS에 이관했다. FDA는 1992년 12월 불응성 난소암, 1994년 유방암, 1999년 비소세포폐암과 카포시 육종에 탁솔을 승인했다. 탁솔은 세계 최고 판매 항암제가 되어 2001년 연매출 20억 달러, 2024년 60억 달러에 이르렀다. 최초의 블록버스터 항암제 중 하나였다.

2.3.3.2 · 탁소텔과 제브타나 — 잎으로 옮긴 공급

처음에 탁솔 연구는 희소성에 막혀 있었다. 태평양 주목 껍질에서 0.014%. 수많은 길이 탐색되었고 결국 반합성 경로가 이겼다.

프랑스 지프쉬르이베트 국립과학연구센터의 화학자들이 피에르 포티에의 지휘로 탁솔을 만드는 재생 가능한 공급원을 찾아냈다. 재생 가능하고 풍부한 유럽 주목(Taxus baccata)의 잎에서 진행된 중간체 10-데아세틸바카틴을 분리한 것이다. 플로리다주립대학 로버트 홀턴이 개발한 방법으로 측쇄를 손쉽게 설치해 원팟으로 탁솔을 만들었다. 탁솔을 양적으로 생산하는 문제가 해결되었다. BMS는 광범위한 최적화를 거쳐 이 반합성 경로를 탁솔의 상업 생산에 채택했다.

나무를 베어야 하던 약을, 잎을 따서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서 트라베크테딘이 멍게를 건져 올리던 데서 세균 발효로 옮겨 간 것과 같은 구조의 해결이다. 이 장에서 공급의 문제는 언제나 더 상류의 재생 가능한 중간체를 찾는 일로 풀렸다.

포티에는 이 발견을 활용해 10-데아세틸바카틴을 진행된 중간체로 삼아 많은 탁솔 유도체를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탁솔보다 용해도와 생체이용률이 좋은 도세탁셀이었다. 프랑스 회사 론-풀랑크(현 사노피)가 라이선스해 도세탁셀(Taxotere)이 1995년 약물 저항성 또는 전이성 유방암 여성 치료로 판매되었다. 구조적으로 탁솔과 비슷하면서 미세소관 안정화에서는 탁솔보다 더 나은 효능을 보였다.

세 번째 탁소이드 약물 카바지탁셀은 론-풀랑크의 화학자들이 발견했다. 구조는 도세탁셀과 비슷하나 탁솔의 수산기 두 개가 에테르로 메틸화되어 있다. 그 결과 항증식 활성이 우월하고 화학요법 저항성 암에 더 나은 효능을 갖는다. 도세탁셀과 카바지탁셀은 모두 뇌 투과성이어서 교종 치료에 적합하다. FDA는 2010년 카바지탁셀(Jevtana)에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선암 남성 치료 허가를 냈다.

세 탁소이드 약물 모두 낮은 용해도와 P-gp 기질이라는 성질 때문에 경구 생체이용률이 낮아 정맥으로 투여해야 한다. 경구 탁소이드를 얻는 한 가지 전술은 엔세퀴다 같은 P-gp 저해제를 더하는 것이며 이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또 하나는 더 잘 녹고 P-gp에 결합하지 않는 탁소이드를 합성하는 것이다. 다이이치제약의 테세탁셀이 그 조건에 맞았다. 다이메틸아미노 모티프를 설치해 P-gp 결합을 최소화하고 수용성과 경구 생체이용률을 크게 높였다.

2013년 오도네이트 테라퓨틱스가 다이이치에서 테세탁셀을 라이선스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경구 투여가 가능하고 작용이 길다는 장점에도 오도네이트가 2021년 제출한 신약허가신청은 상당한 호중구감소증 같은 안전성 우려로 FDA에서 호의적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테세탁셀이 오도네이트의 유일한 가치 있는 자산이었으므로, 테세탁셀의 몰락과 함께 이 바이오텍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분자에 회사 하나가 얹혀 있으면 이런 일이 생긴다. 뒤에 나올 아라곤과 메디베이션도 같은 구조였는데, 그쪽은 반대의 결말을 맞는다.

2.3.4에포틸론, 잠베지강에서

탁산도 대부분의 암 화학요법제처럼 약물 저항성이 생겨, 탁산 저항성 종양 환자에서는 효능이 떨어진다. 탁솔의 성공에 이어 BMS는 1990년대에 미세소관을 겨누는 차세대 약물을 찾는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세 종의 미세소관 안정화제가 물망에 올랐고, BMS는 상대적인 구조적 단순성과 재공급의 용이성 때문에 에포틸론으로 좁혔다.

에포틸론은 1987년 독일 국립생명공학연구센터의 화학자 게르하르트 회플레와 미생물학자 한스 라이헨바흐가 분리한 세포독성 마크롤라이드다. 두 사람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잠베지강 강안에서 처음 채취한 셀룰로스 분해 믹소박테리움 Sorangium cellulosum에서 이들을 분리했다.

餘談 · 저자 자신의 10밀리그램

이 대목에서 원저자가 처음으로 1인칭으로 등장한다. 1990년대 초 인디애나대학에서 대학원 연구를 하며 그는 믹소비레신 A1을 다루었다고 적는다. 회플레가 또 다른 믹소박테리움에서 분리하고 규명한 28원 거대고리 락탐-락톤이다.

전합성을 완성했을 때 회플레 교수가 진품 확인을 위해 믹소비레신 A1 10밀리그램이 담긴 바이알 하나를 친절히 보내 주었다. 저자는 이렇게 적는다. 실험실에서 만든 것이 회플레의 진품 시료와 시험한 모든 항목에서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엄청나게 안도했다.

이 여담이 이 장에서 하는 일이 있다. 지금까지 나열된 수백 개의 화합물과 수십 년의 공정 개발이, 결국 어느 대학원생이 바이알 하나를 받아 들고 자기가 만든 것과 대조하며 안도하는 순간들의 총합이라는 것.

모든 에포틸론 중 세포독성 분석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에포틸론 B였다. 그런데 에포틸론 B는 락톤을 포함하는데 이것이 에스터레이스 절단으로 불활성화되기 쉽다. 이 약점을 넘어서기 위해 취약한 락톤을 대체하는 반합성 락탐 유사체가 제안되었다.

락탐 합성의 핵심 통찰은 로버트 보질레리의 깨달음에서 왔다. 에포틸론의 락톤이 알릴성이므로 츠지-트로스트 반응으로 질소 친핵체를 잡아넣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예리한 관찰로, 에포틸론 B에 붙은 수많은 작용기를 하나도 보호하지 않고 3단계 원팟으로 락톤을 락탐으로 변환할 수 있었다. 이 에포틸론 B의 락탐 유사체가 훗날 익사베필론이 된다.

예상대로 익사베필론의 대사는 에포틸론 B보다 100배 느렸고 마우스에서 혈장 단백질 결합이 극적으로 낮았다. 형식적인 전임상 데이터가 NCI와의 임상시험을 정당화할 만큼 만족스러웠다. 여러 불응성 종양에 활성이었고 많은 면에서 탁솔보다 우월했다. 익사베필론(Ixempra)은 2007년 전이성 유방암 치료의 계열 최초 약제로 FDA 승인을 받았다. 에포틸론 D(우티델론)는 2021년 전이성 유방암 치료로 중국에서 상업화되었다.

에포틸론은 β-튜불린에 결합해 미세소관을 안정화시켜 탈중합을 막는다. 익사베필론의 기전도 유사하게 튜불린 중합과 아폽토시스를 유도하는 탁솔의 기전과 같다. 다만 익사베필론은 탁솔에 비해 종양 저항성에 덜 취약하다.

04

항대사물질

Antimetabolites

항대사물질은 세포의 대사 일반, 특히 핵산의 대사를 방해한다. 구조적으로 많은 항대사물질이 핵산을 닮았다. 닮았으나 같지 않다는 것이 이 계열의 원리다.

2.4.1시금치에서 나비 날개까지 합성

2.4.1.1 · 파버와 수바로 — 실패에서 뒤집은 논리

비타민 엽산은 1937년 인도의 선교 의사 루시 윌스가 처음 밝혀냈다. 원래 '윌스 인자'라 불렸다. 엽산(folic acid)이라는 이름은 시금치 잎(foliage)에 풍부하기 때문에 붙었다. 뉴욕 펄리버의 레더리 연구소가 1943년 인간의 간에서 순수한 엽산을 처음 분리했다. 2년 뒤 레더리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엽산을 합성했다.

한편 '엽산 농축물'이 마우스에서 사르코마 성장을 저해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게다가 급성 백혈병 환자에게 엽산 결핍이 있다는 사실이 일부 연구자에게, 급성 백혈병이 이 비타민의 결핍 결과일지 모른다는 가설을 세우게 했다.

보스턴 아동병원의 병리학자 시드니 파버는 마우스 암 모델에서 엽산의 저해 효과에 고무되었다. 1947년 파버는 백혈병 아이들을 엽산으로 치료했다. 슬프게도, 기대와 반대로 엽산은 백혈병을 늦추지 않았고 오히려 일부 환자에서 암 성장에 연료를 부어 가속시켰다.

여기가 이 절의 심장이다. 고통스러운 실패에서 배운 파버는 다음을 직관할 만큼 계몽되어 있었다. 엽산이 성장을 촉진한다면, 항(抗)엽산은 암 성장을 저해해야 한다. 실패한 실험의 방향을 그대로 뒤집는 이 한 걸음이 현대 화학요법을 열었다.

그의 요청으로 레더리 연구소의 화학자들이 옐라프라가다 수바로의 지휘로 엽산 합성을 경쟁적으로 저해하는 화합물을 합성했다. 파버는 그중 하나인 아미노프테린을 급성 림프성 백혈병 아이 16명에게 시험했다. 당시 이 병은 걸린 아이를 예외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가장 흔한 악성종양이었다. 흡족하게도 그는 한 아이에서 완전한, 다만 일시적인 완화를, 그리고 열 명에서 일시적 완화를 보았다. 치료를 시작할 때 다수가 위중한 상태였다.

아미노프테린은 많은 급성 백혈병 아동의 목숨을 연장했을 뿐 아니라, 암 관리의 새 시대를 알렸다. 그렇게 파버는 신생물 질환에 대한 현대 화학요법 시대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보스턴의 데이나-파버 암연구소로 불멸이 되었다.

이후 아미노프테린은 1949년 메토트렉세이트(아메톱테린)로 대체되었다. 전자는 상대적으로 불안정하고, 후자는 독성이 낮아 치료창이 더 유리하며, 만들기도 더 쉬웠기 때문이다.

1951년 메토트렉세이트가 스테로이드가 아닌데도 소량에서 스테로이드 같은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류마티스관절염 치료로 승인된 것은 1988년이었고, 지금은 널리 쓰인다. 또 하나의 이상성 약물이다. 고용량(최대 1그램)에서 백혈병에 유효하고, 소량(주당 20밀리그램 정도)에서 류마티스관절염의 훌륭한 치료제다.

메토트렉세이트는 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한 최초의 항대사물질 중 하나로 꼽힌다. 주로 디하이드로폴레이트 리덕테이스의 저해제로 기능한다. 엽산 경로의 심장에 있는 효소이자 DNA 복제와 수복에 필요한 퓨린·피리미딘 뉴클레오타이드 생산의 필수 구성요소다. 테트라하이드로폴레이트 형성 저해가 항증식·항염 효과의 주된 경로지만, 작용 방식은 다른 많은 표적과 경로가 얽혀 매우 복잡하다.

2.4.1.2 · 나비의 날개에서

메토트렉세이트의, 그리고 대부분의 암 화학요법제의 근본적 결함은 암세포와 정상 세포에 대한 특이성의 부재다. 선택성이 더 높은 항엽산제라면 덜 독성일 것이다. 메토트렉세이트 이후 항엽산제 세 개가 암 치료에 쓸 수 있게 되었다. 랄티트렉세드(1985, 유럽과 캐나다에서만), 페메트렉세드(2004), 프랄라트렉세이트(2009).

여기서는 에드워드(테드) C. 테일러의 페메트렉세드에 집중한다.

테일러는 레더리가 엽산 연구를 발표했을 때 코넬대학의 대학원생이었다. 엽산은 프테린 구조를 담고 있다. 한편 브림스톤 나비의 날개에서 어느 독일 화학자가 아름다운 노란 색소를 분리했는데, 그 역시 프테린 조각을 갖고 있었다. 테일러는 흥미를 느껴 박사 연구 주제로 프테린을 조사하기로 했고, 그렇게 헤테로고리 화학과의 평생에 걸친 연애가 시작되었다.

1장에서 퍼킨의 보라 염료가, 2장 앞에서 파르미탈리아의 붉은 색소가 나왔다. 이제 나비 날개의 노란 색소가 항암제로 이어진다. 색은 이 두 장에서 계속 결정적이다.

테일러는 1954년부터 교수로 있던 프린스턴대학에서 1980년대 중반 암 화학요법 연구를 시작했다. 1985년부터는 릴리의 의약화학·공정화학 자문도 맡았다. 그의 그룹은 엽산과 메토트렉세이트 양쪽을 닮은 프테린 함유 화합물을 만지작거렸고, 그 화합물들을 일라이릴리로 보내 시험했다.

예기치 않게, 네 번째로 만든 분자인 '화합물 D'가 릴리가 인간 종양 이식편 마우스 모델에서 본 것 중 가장 활성이 높은 항종양제로 시험되었다. 더 좋은 것은, 메토트렉세이트에 저항성인 종양에도 완전히 활성이었다는 점이다. 완전히 다른 기전으로 종양 성장을 막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어 프린스턴의 테일러 팀과 인디애나폴리스의 일라이릴리 팀 사이에 수십 년에 걸친 긴밀한 협업이 이어졌다. 4년간 800개가 넘는 화합물을 합성한 뒤에도 화합물 D는 약리, 선택성, 약동학, 독성학 등에서 여전히 최고였다.

단 하나의 걸림돌은 화합물 D에 키랄 중심이 있어 두 부분입체이성질체의 혼합물이라는 점이었다. 둘 중 하나만 활성이었으므로 릴리의 화학자 촨 조 시가 분리에 나섰다. 그중 한 이성질체가 로메트렉솔로 명명되어 임상 후보로 지목되었다. 그런데 분리 수율이 15%에 불과해 릴리는 임상용 원료의약품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정을 더 나쁘게, 로메트렉솔은 이후 골수억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것이 관에 박는 마지막 못이었고 로메트렉솔은 좌초했다.

테일러는 키랄 중심 문제를 아예 우회하기로 하고 다른 분자를 설계했다. 완전히 포화된 6원환 피페리딘을 완전히 불포화된 5원환 피롤로 치환하니 훗날 페메트렉세드가 되는 분자가 나왔다. 페메트렉세드는 지수적으로 만들기 쉬웠을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훌륭한 성적으로 시험을 통과했다. 이후 훨씬 많은 화합물이 만들어졌으나 페메트렉세드보다 나은 것은 없었다.

페메트렉세드(Alimta)는 시스플라틴과의 병용으로 2004년 악성 흉막 중피종, 이어 비소세포폐암 치료로 FDA 승인을 받았다. 메토트렉세이트가 도입된 지 50년 뒤였다.

餘談 · 화학관 한 채

릴리의 알림타 판매에 따라 프린스턴대학이 받은 로열티는 1억 8천만 달러에 이르렀고, 대학은 그 돈으로 최신 화학관을 지었다. 브림스톤 나비 날개의 노란 색소에 흥미를 느낀 대학원생 하나가, 결국 자기 대학에 건물 한 채를 세웠다.

이 장에는 이런 숫자가 몇 번 더 나온다. UCLA가 엔잘루타마이드 권리로 받은 11억 4천만 달러, 화이자가 메디베이션을 사들인 140억 달러. 발견과 그 값의 관계는 1장 에임스가 특허를 포기한 대목과 나란히 놓고 읽을 만하다.

페메트렉세드의 기전은 최소 세 표적에 활성을 가져 복잡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티미딜산 합성효소다. 티미딘 생합성에 필요한 엽산 의존 효소다. 또한 (메토트렉세이트처럼) 디하이드로폴레이트 리덕테이스와 글리신아마이드 리보뉴클레오타이드 포밀트랜스퍼라제도 저해한다. 어떤 의미에서 페메트렉세드 자체가 항종양 칵테일이다. 세 개의 엽산 의존 효소를 한 번에 때린다.

2.4.2나쁜 약에서 좋은 약으로 — 5-FU에서 카페시타빈 합성

테일러의 페메트렉세드의 근본 기전 하나는 티미딜산 합성효소 저해다. 암 치료를 위해 시장에 나온 최초의 티미딜산 합성효소 저해제 중 하나가 5-플루오로우라실(5-FU)이다.

1957년 당시 불소화 헤테로고리의 합성은 여전히 도전이었다. 위스콘신대학의 찰스 하이델버거가 호프만-라로슈의 두 화학자와 협력해 다른 5-플루오로피리미딘들과 함께 5-FU를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논문 끝에 두 사람은 5-FU가 신생물 질환 치료를 위해 임상 조사 중이라고 언급했다.

이 하이델버거가 1장에 나온 그 사람이다. 와인버그가 인간 ras를 찾는 첫 '실험'으로 전화를 걸어 3-메틸콜란트렌 처리 세포를 얻어낸 위스콘신의 그 실험실이다.

임상은 1962년 여러 암 치료를 위한 5-FU 승인으로 이어졌다. 5-FU 발견으로부터 그 기전이 티미딜산 합성효소 저해로 결국 규명되기까지 약 50년이 흘렀다. 5-FU는 티미딜산 합성효소 저해제로 개발된 최초의 항신생물제 계열을 대표한다. 세월이 흐르며 5-FU는 병용 요법의 성분으로 암 치료에 점점 더 많이 쓰였다.

5-FU의 가장 유의한 결점은 선택성 부재와 그에 따른 심각한 독성이다. 일부 의사들은 정당하지 않다고만 할 수 없는 농담을 했다. 5-FU는 '5 Feet Under', 곧 땅속 다섯 자를 뜻한다는 것이다.

5-FU의 놀라운 효능을 활용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전술 하나는 5-FU의 프로드러그를 만드는 것이다.

1967년 소련에서 최초의 프로드러그인 경구 활성 테가푸르가 만들어졌다. 간 마이크로솜 효소 CYP 2A6의 작용으로 5-FU를 서서히 방출하는 가면 쓴 형태의 경구 항암제였다. 5-FU 자체가 지속 정맥주입으로 투여되던 것을 생각하면, 말하자면 삼키는 약이 더 안전하고 편리하다.

일본의 로슈 과학자들은 5-FU 유도체의 경구 약물을 한 걸음 더 밀고 나갔다. 독시플루리딘, 그리고 카페시타빈이다.

로슈는 먼저 프로드러그 독시플루리딘을 내놓았다. 종양에 우선적으로 위치한 효소 티미딘 인산화효소로 대사된다. 그러나 엄격하게 종양 선택적이지는 않아 용량 제한적 장 독성을 일으킬 수 있다. 지금까지 독시플루리딘은 몇몇 아시아 국가에서만 처방된다.

1986년 로슈 재팬의 이시쓰카 히데오와 심마 노부오가 이끄는 팀이 독시플루리딘을 개선하는 임무를 받았다. 팀은 대단히 창의적이었고, 프로드러그인 독시플루리딘의 프로드러그의 프로드러그인 약을 발명했다.

이 약을 경구로 주면 5-FU가 방출되기까지 최소 세 가지 서로 다른 효소가 필요하다. 5-FU가 드러날 때쯤이면 이미 종양 세포 깊숙한 곳이다. 프로드러그를 세 겹으로 쌓아 방출 지점을 종양 내부로 밀어 넣는다는 이 발상은, 테모졸로마이드가 다이아조메탄을 마지막 순간에 방출해 안전해진 것과 정확히 같은 논리다.

로슈 과학자들의 창의에서 나온 약이 카페시타빈이다. 더 높은 용량으로 안전하게 투여할 수 있어 5-FU나 독시플루리딘으로는 불가능한 높은 5-FU 종양 내 농도로 이어진다. 카페시타빈은 선행 약물들에 비해 개선된 약력학, 효능, 안전성 프로파일을 보였다. 요컨대 로슈는 나쁜 약 5-FU를 아주 좋은 약 카페시타빈으로 바꾸었다. 카페시타빈(Xeloda)은 1998년 미국에서 유방암과 대장암 치료로 승인되었다.

2.4.36-MP, 그리고 이인조라는 양식 합성

과학자라는 직업은 '외로운 늑대'로 시작했다. 과학자가 홀로 혼자서 일하던 시절이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두드러진 예다. 점차 양식은 유스투스 폰 리비히, 루이 파스퇴르, 파울 에를리히 같은 과학 그룹의 '사제(師弟)' 모형으로 옮겨 갔다. 2차 대전 이후 또 하나의 양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인조(dynamic duo)'다. 두 과학자가 한 팀으로 일하며 그 노력이 합산적이지 않고 시너지적이어서 곱셈의 효과를 낸다.

성공한 예가 여럿 떠오른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릭, 종양유전자를 발견한 마이클 비숍과 해럴드 바머스, LDL 콜레스테롤 수용체를 발견한 마이클 브라운과 조지프 골드스타인. 그중 초기 이인조 동반 관계 하나가 조지 히칭스와 거트루드 엘리온이었다. 목숨을 구한 많은 약을 발견했고 그중 하나가 6-머캅토퓨린(6-MP)이다.

2차 대전은 미국의 남성 과학자 공급을 줄여, 여성에게 이전에 열리지 않았던 취업 기회를 열었다. 1944년 엘리온은 버로스웰컴에서 히칭스에게 주당 50달러의 기술원으로 채용되었다. 그렇게 신약 개발사에서 가장 결실 있는 협업 하나가 시작되었다.

히칭스는 동료들에게 DNA 염기를 각각 할당했고, 엘리온은 세포 성장에서 퓨린의 역할을 연구하게 되었다. 1951년 두 사람은 퓨린(아데닌과 구아닌) 관련 화합물 100개에 대한 조사를 발표했다. 그중 하나가 6-MP였고 세균 성장 저해에서 강력하게 시험되었다.

빠르게 분열하는 세균 세포는 암세포처럼 DNA를 만들기 위해 특정 퓨린을 필요로 하므로, 6-MP는 사르코마 180 이식편을 가진 스위스 백색 마우스에서 추가 시험되어 종양 성장을 멈추었다. 1953년 슬론-케터링 메모리얼 연구소에서 진행성 암 환자 107명으로 임상이 시작되었다. 6-MP는 급성 백혈병 아동에서 완전 완화를 유도하는 데 대단히 효율적임이 입증되었다. 6-MP(Purinethol)는 1955년 소아 급성 림프성 백혈병 치료로 신속히 승인되었다. 완화만 유도하고 완치는 아니었지만, 선택된 다른 항암제와 병용하면 완치율이 80%에 이르렀다.

1958년 6-MP가 면역계를 간섭한다는 것이 발견되어, 크론병과 염증성 장질환을 포함한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 따라서 6-MP도 이상성 약물이다.

히칭스와 엘리온은 합리적 신약 설계 접근법의 개척자였다. 천연 뉴클레오사이드 유도체를 잠재적 치료제로 쓰는 방식으로 신약 개발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여섯 개 넘는 약을 시장에 냈다. 두 사람은 1988년 노벨상을 받았다. 고혈압 치료 베타차단제와 위궤양 치료 히스타민 H2 수용체 길항제 발견에 결정적이었던 영국 약리학자 제임스 W. 블랙과 함께였다.

주당 50달러의 기술원으로 시작한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데까지 44년이 걸렸다. 이 장에서 가장 좋은 이야기 중 하나다.

05

항호르몬제

Anti-Hormone Cancer Drugs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성과 밀접히 연관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돌팔이가 동물, 예컨대 원숭이의 고환을 이식해 남성을 회춘시킨다고 주장한 것도 이상하지 않다. 원저자는 여기에 한마디를 달아 둔다. 사람의 자가면역계가 동물 장기를 거부하는 문제를 그들이 어떻게 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927년 시카고의 두 과학자가 황소 고환 20킬로그램에서 20그램의 물질을 분리했다. “거세한 동물에 주사하면 그 수컷성을 회복시키는” 물질이었다. 아마도 테스토스테론이었을 것이다. 몇 해 뒤 독일의 아돌프 부테난트가 테스토스테론을 정제·결정화해 확인했다. 1935년 스위스 연방공과대학(ETH)의 크로아티아 화학자 레오폴트 루지치카가 실험실에서 테스토스테론을 합성했다. 대단한 성취여서 부테난트와 루지치카는 1939년 노벨상을 받았다. 앞선 1929년에는 부테난트와 미국의 에드워드 도이지가 독립적으로 임신부 소변에서 에스트론, 에스트리올, 에스트라디올 같은 에스트로겐을 분리했다.

그리고 찰스 허긴스가 전립선암과 유방암을, 각각 안드로겐과 에스트로겐의 상승과 인과적으로 처음 견고하게 확립했다.

2.5.1찰스 허긴스 — 그토록 많은 것을 그토록 적은 이에게 빚졌다

1901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찰스 B. 허긴스는 하버드 의대와 미시간대학에서 외과를 공부한 뒤, 1927년 시카고대학에 합류하며 신생 분야였던 비뇨기과로 전환했다. 곧 독일 오토 바르부르크와 영국 로버트 로빈슨의 실험실에서 추가 수련의 기회를 얻었다. 각각 1933년과 1947년의 미래 노벨상 수상자인 두 사람은 허긴스의 경력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시카고로 돌아온 허긴스는 수컷 개 모델로 테스토스테론과 전립선암의 상관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거세 또는 에스트로겐 주사가 개의 전립선 종양 퇴축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혈청 산성 인산분해효소 수치로 측정한 결과였다.

크게 고무된 허긴스는 전립선암 환자 21명을 경구 합성 에스트로겐 스틸베스테롤로 치료하는 데로 나아갔다. 런던의 찰스 도즈가 값싼 에스트로겐 형태로 처음 합성한 물질이다. 며칠, 심지어 몇 시간 안에 놀라운 효과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침상에 누워 죽어 가던 남자 몇이 활동적이고 유용한 삶으로 돌아왔고, 그중 넷은 치료 후 12년 넘게 살았다.

허긴스는 전립선암 치료의 효능을 처음 깨달은 순간을 훗날 회상했다. 어찌나 흥분되고 긴장되고 행복했던지, 연구실에서 집까지 1마일을 걸어 돌아가는 그 밤에 세 번을 주저앉아 앉아 있어야 했다.

1장에서 야마기와가 하이쿠 두 줄을 남기고, 프렌드가 분홍 세포 튜브를 들고 복도를 뛰어다녔다. 여기서는 한 외과의사가 1마일 귀갓길에 세 번 앉는다. 발견의 순간에 사람의 몸이 하는 일은 대개 이렇게 소박하다.

1941년 허긴스와 그의 학생 클래런스 호지스가 결과를 발표한 획기적 논문 이후, 허긴스의 안드로겐 차단 요법은 전립선암 치료로 보편적으로 채택되고 개선되어 수많은 남성의 목숨을 구했다.

1950년 허긴스는 초점을 유방암으로 옮겼다. 1959년까지 그는 알려진 발암물질 3-메틸콜란트렌을 주사해 암컷 랫에 유방암을 유도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1장에 나온 콜타르의 그 발암물질이다. 유방암 동물 모델은 새 치료와 예방 전략의 발견에 길을 놓았다. '허긴스의 종양'으로 알려진 이 동물 모델은 유방암과 그 치료 연구에 멀리 미치는 영향을 남겼다. 뒤에 나올 타목시펜의 검증도 이 모델에서 이루어진다.

바르부르크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추천으로 허긴스는 196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페이턴 라우스와 함께 받았다. 1926년 요하네스 피비게르에게 지금은 폐기된 암 기생충설로 상을 준 참사 이후, 암과 관련된 첫 노벨상이었다. 1장의 그 표에 이 항목이 들어간다.

“그토록 많은 것을 그토록 많은 이가 그토록 적은 이에게 빚진 적은 없었다.”

1940년 영국 본토 항공전 후 영국 공군 조종사들을 두고 한 윈스턴 처칠의 말 · 원저자가 허긴스에게 옮겨 붙였다

인류는 허긴스에게 큰 감사의 빚을 졌다.

2.5.2전립선암 약

전립선암은 남성에게 가장 흔한 암 중 하나로 일곱 명 중 한 명을 괴롭힌다. 전 세계 전립선암 인구는 약 150만 명으로 모든 암 사례의 7.5%를 차지한다.

2.5.2.1 · PSA — 선별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전립선특이항원(PSA) 이전, 전립선암을 검출하는 초기 방법은 허긴스가 했듯 혈액의 전립선 산성 인산분해효소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산분해효소 수치가 높을 때는 전립선암이 이미 뼈로 전이한 상태이므로 조기 진단에 좋지 않다. 어쩐 일인지 전립선암은 뼈로 우선 전이한다.

PSA 발견의 공로는 논쟁에 휘말렸다. 때로는 신랄하고 격했으며, 주장자들의 동기가 잠재적인 노벨상이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루빈 H. 플록스Rubin H. Flocks · 아이오와대학1960년, 전립선에 특이적이고 사람에 특이적인 항원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비뇨기과 의사.1960
리처드 J. 애블린Richard J. Ablin · 애리조나대학1970년, 인간 전립선에 특이적인 항원 두 개의 발견을 보고했다. 하나는 전립선 산성 인산분해효소와 분리되었고, 다른 하나가 아마도 PSA였다. 여러 그룹이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 혼란이 있었다.1970
조지 센서보George Sensabaugh · UC 버클리1978년, 전기영동으로 정액에서 단백질 두 개를 확인했다. 그중 분자량 30킬로달톤의 p30이 PSA였다. 이후 PSA의 존재는 강간 사건의 법의학적 검출에 쓰인다.1978
추 T. 밍 · 왕 밍창T. Ming Chu & Ming Chang Wang · 로즈웰파크많은 이가 PSA의 '진짜' 발견 공로를 이들에게 준다. 1979년 PSA를 정제·규명하고 양성과 악성 전립선 조직 모두에 존재함을 입증했으며 전립선암 바이오마커로서의 임상 응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1984년 PSA가 세린 프로테아제이며 유일한 기능이 정액 액화임을 보고했다. 같은 해 '정제된 인간 전립선 항원' 특허를 받았다.1979 – 1984

PSA 혈액 검사가 전립선암 1차 선별검사로 유용할 수 있다는 증거가 천천히 쌓여 1990년대 초 FDA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이 절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검사는 전립선암 사망률을 낮추었지만, 동시에 대규모 과잉진단과 과잉치료를 낳았다. 약물경제학적 평가에 따르면 이익보다 해가 컸다. 그 결과 2012년에는 PSA를 전립선암의 진단검사로 선별하지 않도록 권고되었다.

그런데 중단 후 전립선암 사망률이 다시 올랐다. 그래서 2018년 권고가 어느 정도 복원되어, 추가 위험 요인이 있는 남성에게는 일부 PSA 검사를 옹호하게 되었다.

선별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PSA에서는 오늘도 여전히 문제다. 글리슨 점수를 쓰는 전립선 생검 평가조차 완전하지 않다. 전립선암을 검출할 더 좋고 더 믿을 만한 바이오마커가 여전히 필요하다.

원저자는 시사적인 사례를 하나 붙인다. 2025년 5월 전 대통령 조 바이든이 4기 전립선암으로 진단받았고 뼈로 전이했다. 좋은 소식은 그의 전립선암이 호르몬 수치에 민감하다는 것이며, 이는 많은 항호르몬제로 치료할 수 있다. 안드로겐 수용체 길항제가 그에게 유효할 수 있다.

2.5.2.2 · 안드로겐 수용체 길항제 — 나이트로기와의 싸움

안드로겐 수용체는 1950년대 초, 1935년 테스토스테론의 분리와 전합성으로부터 15년 이상 지나 발견되었다. 방사표지 리간드로, 허긴스의 제자 시카고대학의 엘우드 젠슨이 표적 조직에서 특이한 스테로이드 호르몬 결합 실체, 곧 스테로이드 수용체를 검출했다. 수크로스 밀도구배법이 이 수용체의 단백질 성질을 추가로 확립했다. 결국 안드로겐 수용체의 분리와 규명은 1960년대 말 여러 그룹에서 이루어졌다. 그중 하나가 시카고에서 젠슨의 동료였던 랴오 슈충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스테로이드 수용체 cDNA의 클로닝도 달성되었다.

에스트라디올, 다이에틸스틸베스트롤, 사이프로테론 아세테이트 같은 에스트로겐은 모두 항안드로겐, 곧 안드로겐 수용체 길항제다. 그런데 이들은 스테로이드이므로 모든 스테로이드성 약물에 딸린 삼종의 결점을 갖는다. 골밀도가 낮아지는 골다공증, 다른 호르몬 활성에 대한 낮은 선택성, 그리고 체액 저류. 반면 비스테로이드성 안드로겐 수용체 길항제라면 이 세 부작용이 없을 것이다. 그 첫 번째가 플루타마이드였다.

플루타마이드는 1967년 몬산토에서 정균제로 합성되었고, 5년 뒤 쉐링이 그 항안드로겐 성질을 보고했다. 그러나 다른 항암제와 병용해 전이성 전립선암 치료로 FDA 승인을 받은 것은 1989년이었다. 흥미롭게도 플루타마이드 자체는 항안드로겐 활성이 약한 프로드러그이고, 주요 대사체인 하이드록시플루타마이드가 활성 본체다. 불행히도 플루타마이드를 평균 18개월 복용하면 안드로겐 수용체 단백질의 돌연변이 때문에 약물 저항성이 생긴다.

플루타마이드의 성공에 영감을 받아 루셀유클라프(현 사노피)가 '미투' 약물 닐루타마이드를 발명했다. 영리하게 히단토인으로 플루타마이드의 아닐라이드를 대체했다. 잠재적 아닐라이드 독성단을 더 무해한 히단토인기로 바꾸는 좋은 요령이다. 닐루타마이드는 1987년 수술적 거세 후 전이성 전립선암 치료로 프랑스 시장에 나왔다.

플루타마이드와 닐루타마이드 모두 스테로이드성 약물의 짐은 지지 않았지만, 간독성에 시달렸다. 특히 플루타마이드가 그랬다. 우리는 그 뒤 그 간독성이 분자에 기반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두 약 모두 나이트로기를 갖는데, 이것은 독성단 또는 구조 경보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나이트로 관능기를 가진 대부분의 약은 간 또는 다른 독성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예외는 있다. 가장 두드러진 예 하나는 애브비의 Bcl-2 길항제 베네토클락스다. 나이트로기를 가진 좋은 약이다. 원저자는 여기에 이 장 전체의 표어가 될 만한 한마디를 붙인다.

결국, 용량이 독을 만든다.

원서 §2.5.2.2

골칫거리 나이트로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임페리얼 케미컬 인더스트리스(ICI, 현 아스트라제네카)가 나이트로기를 더 무해한 나이트릴 관능기로 대체한 비칼루타마이드를 내놓았다. 비칼루타마이드(Casodex)는 1996년 시장에 나왔다.

2.5.2.3 · 2세대 — 길항제를 작용제로 바꾸는 돌연변이

엔잘루타마이드와 아팔루타마이드를 포함하는 2세대 항안드로겐의 이야기는 매혹적이다.

닐루타마이드와 비칼루타마이드 같은 1세대 항안드로겐은 부분 작용제 성질도 가지고 있어 종양 성장을 자극할 수 있었다. 찰스 L. 소이어스는 안드로겐 수용체의 순수 길항제라면 전립선암의 더 나은 치료가 될 것이라고 구상했다. 그는 그것을 '슈퍼 항안드로겐'이라 부르려 했다.

의사-과학자인 소이어스는 UCLA의 오언 N. 위테 밑에서 박사후연구를 마친 뒤 1993년 UCLA 암센터에 조교수로 합류했다. 위테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세포에서 Bcr-Abl 종양유전자가 전사하는 티로신 단백질 인산화효소를 확인해 유명한 사람이다. 소이어스는 이마티닙(글리벡)의 임상시험에 참여했고 에이블슨 인산화효소의 돌연변이로 인한 약물 저항성을 처음 보고했다. 3장에서 다시 나올 이야기다.

그러면서 그는 만성골수성백혈병보다 훨씬 흔한 전립선암에 끌렸다. 2004년까지 그의 그룹은 호르몬 약물 저항성의 원인을 발견했다. 중요한 저항성 기전 하나는 안드로겐 수용체의 리간드 결합 도메인에 생기는 점돌연변이로, 이것이 길항제를 작용제로 바꿀 수 있다. 브레이크를 밟는 약이 액셀을 밟는 약으로 변하는 것이다.

꿈꾸던 슈퍼 항안드로겐, 곧 순수 길항제를 발견하기 위해 소이어스는 2003년 UCLA의 동료 화학 교수 마이클 E. 융과 협업을 세웠다. 타이밍이 완벽했다. 쉰다섯의 융은 순수 합성 유기화학에서 신약 개발의 응용 화학으로 연구를 전환하기로 결정한 참이었다.

융과 그의 그룹은 루셀유클라프의 매우 강력하고 선택적인 안드로겐 수용체 작용제 RU-59063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티오히단토인 핵 구조를 가진 이 물질의 안드로겐 수용체 친화도는 비칼루타마이드의 100배였다. 그들은 합리적 약물 스크리닝과 반복 전략으로, 안드로겐 수용체를 과발현하는 전립선암 모델에서 활성인 화합물을 찾아 나갔다. 구조-활성 관계 조사로 만든 200개가 넘는 화합물 가운데 다른 스테로이드 수용체에 대한 친화도와 선택성이 가장 높은 엔잘루타마이드가 나왔다.

엔잘루타마이드는 비칼루타마이드보다 역가가 10배 크다. 실제로 안드로겐 수용체의 순수 길항제이며 1세대 항안드로겐보다 유의하게 선택적이다. 수용체의 리간드 결합 도메인에 결합을 늘리는 것만으로 안드로겐 수용체를 차단하는 게 아니라, 수용체의 구조 자체를 바꾸어 더는 DNA에 결합할 수 없게 만든다.

餘談 · 저자가 틀렸다고 적은 대목

여기서 원저자가 두 번째로 1인칭으로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오판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의약화학자로서 방관하던 그는 엔잘루타마이드의 구조가 공개되었을 때 그 안전성을 걱정했다고 적는다. 핵 구조가 간독성을 일으키는 알려진 구조 경보인 티오히단토인이었기 때문이다.

융이 티오히단토인을 고수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더 무해한' 히단토인이나 다른 핵 구조로 바꾸면 친화도와 역가가 떨어졌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또 하나의 심각한 고려는 새로운 지식재산이었을 것이다. 히단토인 조각은 그때쯤 항안드로겐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적는다. 분자에 기반한 간독성이 나타나 좁은 치료지수로 이어질 것을 반쯤 예상했다. 그러나 나는 틀렸음이 입증되었다. 엔잘루타마이드는 피로와 발진 같은 부작용조차 그리 심하지 않을 만큼 훌륭한 치료창을 갖는다.

구조 경보의 목록은 유용하지만 판결문이 아니다. 자기가 틀린 자리를 굳이 적어 두는 저자의 태도가 이 책을 교과서와 갈라놓는다.

2005년 UCLA는 엔잘루타마이드의 권리를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바이오텍 메디베이션에 라이선스했다. 대형 제약사는 전원이 이 물질을 그냥 지나쳤다. 데이비드 흥의 지휘 아래 메디베이션이 임상을 결실로 이끌어 2012년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선암 치료로 엔잘루타마이드(Xtandi)의 FDA 승인을 확보했다. UCLA와 연구자들은 엑스탄디 권리로 11억 4천만 달러가 넘는 횡재를 얻었다. 화이자는 2016년 메디베이션을 140억 달러에 사들였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엔잘루타마이드에 질소 하나와 탄소 하나를 더한 두 가지 사소한 변경으로 융의 또 다른 분자 아팔루타마이드가 나왔다. 엔잘루타마이드의 가까운 사촌이다. 그럼에도 융과 UCLA는 아팔루타마이드에 별도의 특허를 얻을 수 있었고, 그것이 아라곤 파마슈티컬스의 기반이 되었다. 아라곤은 2013년 존슨앤드존슨에 10억 달러에 인수되었다. 회사의 유일한 가치 있는 자산인 아팔루타마이드만을 노린 인수였다. 아팔루타마이드(Erleada)는 2018년 비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선암 치료로 FDA 승인을 받았다. 존슨앤드존슨은 이미 아비라테론 아세테이트(자이티가)를 갖고 있었으므로 병용요법으로 전립선암을 치료할 좋은 위치에 있었다.

비스테로이드성 안드로겐 수용체 길항제의 가장 최근 진입자는 다롤루타마이드(Nubeqa)다. 바이엘이 핀란드의 중견 바이오텍 오리온과 협력해 2019년 미국에서 출시했다.

2.5.2.4 · 아비라테론 — 표적 하나에 약 하나

앞서 언급했듯 존슨앤드존슨의 아비라테론 아세테이트(Zytiga)는 전립선암 치료용 CYP17 저해제다. CYP는 대사를 위해 대체로 간에 위치한 효소군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간은 전립선에서 '수 마일' 떨어져 있는데, CYP 저해제가 어떻게 전립선암 치료에 유용할 수 있는가?

답은 단순하고 우아하다. CYP17은 어떤 에스트로겐을 대응하는 안드로겐으로 산화한다. 따라서 CYP17의 기능을 막으면 전립선암 성장의 연료인 테스토스테론과 다이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 같은 안드로겐의 생산이 줄어든다.

그런데 이 깨우침은 사후적이었다. 아비라테론의 최초 발견은 오래된 항진균제 케토코나졸로 거슬러 올라간다.

케토코나졸은 1970년대 벨기에의 폴 얀센이 전신 진균증을 치료하는 경구 활성 광범위 항진균제로 발견했다. 항진균제로 충분히 좋았는데, 곧 그것이 테스토스테론을 낮추고 진행성 전립선암 남성에게 증상 완화를 준다는 것이 관찰되었다. 그때부터 케토코나졸은 전립선암 치료에 '오프라벨'로 처방되어 왔다.

기전을 더 깊이 파고든 결과, 케토코나졸의 항전립선암 활성은 대체로 고용량에서 CYP17과 몇몇 다른 CYP 효소를 저해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이 밝혀졌다. CYP17에 대한 케토코나졸의 낮은 친화도와 낮은 선택성을 고려하면, 더 강력하고 더 선택적인 CYP17 저해제가 용량과 안전성 면에서 우월할 것이다. 많은 화학자가 정확히 그 일을 했다.

강력하고 선택적이며 비가역적인 CYP17 저해제 아비라테론 아세테이트는 1995년 영국 서리 서턴의 암연구소에서 마이클 자먼이 이끄는 팀이 발견했다. 카보플라틴을 만든 그 서턴의 암연구소다. 이것은 프로드러그로, 경구 투여 후 생체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아세테이트를 만들었으며 체내에서 탈아세틸화되어 활성형이 되어야 한다. 아비라테론은 케토코나졸보다 CYP17을 30배 강하게 저해한다. 존슨앤드존슨의 사업부 센토코 오토 바이오텍이 2011년 미국에서, 도세탁셀을 포함한 선행 화학요법을 받은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선암 환자 치료용으로 아비라테론 아세테이트를 출시했다.

오늘까지 아비라테론 아세테이트는 시장에 있는 유일한 CYP17 저해제다. 표적 하나에 약 하나. 흔한 일이 아니다.

2.5.3유방암 약

유방암은 여성에게 여전히 가장 흔한 암으로, 전 세계 신규 사례의 약 25%와 암 사망의 16%를 차지한다. 2020년 전 세계에서 50만 명이 넘는 여성이 유방암으로 사망했고, 유방암은 여전히 여성 암 사망의 두 번째 원인이다.

1896년, 글래스고의 외과의사 조지 비트슨이 여성의 난소를 단순히 제거하는 것만으로 유방 종양의 성장을 통제할 수 있었다. 이 실험은 난소의 호르몬 활성과 유방암 세포의 증식 사이의 연결을 함축했다. 오늘 우리는 에스트로겐 수용체를 발현하는 유방 종양만이 에스트로겐 공급원의 수술적 제거에 잘 반응했다는 것을 이해한다. 기전을 모르고도 옳은 일을 할 수 있으나, 기전을 알면 누구에게 그 일을 해야 할지를 안다.

2.5.3.1 · 타목시펜 — 실패한 피임약

놀랍지 않게도 에스트로겐 수용체의 발견은 안드로겐 수용체와 얽혀 있었다. 둘 다 핵수용체다. 시카고의 엘우드 젠슨은 대사를 연구하기 위해 방사표지 에스트라디올을 암컷 랫에 투여했다. 놀랍게도 그 호르몬은 대사되지 않았고 방사능이 자궁과 질에 국재되어 머물렀다. 앞서 말했듯 수크로스 밀도구배법이 핵수용체의 단백질 성질을 확립했다. 젠슨은 1962년경 랫 자궁에서 에스트로겐 수용체를 확인하는 데 이르렀다. 젠슨의 수용체는 지금 에스트로겐 수용체 알파라 불린다. 어떤 이들이 젠슨을 핵수용체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정당하다.

베일러 의대의 버트 W. 오맬리가 이어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세포내 핵 전사인자임을 확립했다. 그는 또 하나의 수용체, 프로게스테론 수용체도 발견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얀오케 구스타프손의 실험실은 1996년 에스트로겐 수용체 베타를 발견했다.

연구들은 평생에 걸친 에스트로겐 노출이 유방암 위험을 높인다는 것을 일관되게 보여 왔다. 유방암 사례의 70% 이상이 에스트로겐 수용체 양성이다. 에스트로겐 수용체 조절을 이용한 첫 약물이 타목시펜이었고, 이것은 빠르게 유방암 치료의 금본위가 되었다.

그런데 타목시펜은 유방암 약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1960년대에 피임약과 사후피임약이 크게 유행하며 제약 산업에 큰 수익을 냈다. ICI 제약 부문도 아서 L. 월폴이 앨더리파크의 생식 프로그램을 이끌며 열심히 이 판에 뛰어들었다. 출발점으로 그들이 고른 것은 1958년 신시내티 메렐사의 레너드 러너가 우연히 발견한 최초의 비스테로이드성 항에스트로겐 에타목시트리페톨이었다.

타목시펜은 1962년 도라 리처드슨이 합성했고, 동물 모델에서 항생식 약물로 아주 잘 작동했다. 그러나 인체 임상에서 피임약으로는 완전히 실패했다. 실제로 랫에서와 정확히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배란과 착상의 기초 약리·생리에서 여성과 랫이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여기서 월폴이 알아차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임상에서 타목시펜이 이미 어느 정도 항종양 활성을 보였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때 ICI가 찾던 것은 아니었지만. ICI 초기 트리페닐클로르에틸렌의 유방암에서의 효능과 독성을 경험한 월폴은 은퇴 전에, 생화학 박사를 갓 받은 V. 크레이그 조던에게 타목시펜의 유방암 치료 잠재력을 살펴보도록 배정했다.

그것은 운 좋은 한 방이었다. 리즈대학에서 조던의 원래 박사 논문 목표는 에스트로겐 수용체 단백질을 재결정하는 것이었는데 그에게는 넘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졸업하기 위해 그는 잠재적 유방암 치료제로서 트리페닐에틸렌 연구로 주제를 바꾸었다. 따라서 타목시펜은 딱 그의 영역 안에 있었다. 실패한 박사 주제가 사람을 정확히 그 자리에 데려다 놓은 것이다.

허긴스가 개발한 랫 유방암 모델을 써서 조던은 1973년 타목시펜이 그 랫에서 호르몬 구동 유방 종양의 유도와 성장을 모두 저해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경우에는 여성의 유방암 생리와 완벽하게 상관되었다. 피임약에서는 랫과 사람이 정반대였는데 항종양에서는 일치했다. 점차 더 많은 양성 임상 데이터가 쌓여 1977년 고위험 폐경 후 여성의 화학예방제로 타목시펜의 FDA 승인으로 이어졌다.

ICI는 놀바덱스(Nolvadex)라는 상품명으로 팔았고, 이것은 수용체 양성 원발 종양을 가진 폐경 후 림프절 양성 여성의 선택적 보조요법이 되었다. 수십 년간 타목시펜은 유방암 치료의 금본위였다.

조던은 타목시펜의 성공에 계속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는 타목시펜이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조절자(SERM)로 작동한다는 것을 처음 규정한 사람이다. 2024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경력 전체를 타목시펜을 알리고 그 대사와 작용 기전을 연구하는 데 바쳤다. 그는 자기 연구 그룹을 부끄러움 없이 '타목시펜 팀'이라 불렀다.

타목시펜은 매우 유효하지만 완전하지 않다. 에스트로겐 수용체의 길항제이면서 부분 작용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타목시펜은 유방과 자궁내막에서 성장을 자극해 일부 사례에서 자궁내막암을 일으켰다. 소이어스의 순수 항안드로겐과 나란히, 작용제 활성이 없고 길항 역가가 개선된 '순수 항에스트로겐'이라면 타목시펜보다 안전할 것이다. 일라이릴리의 랄록시펜(Evista)이 그 답이다. 순수 길항제로서 1997년 폐경 후 여성의 골다공증 치료·예방과 침습성 유방암 위험 감소로 FDA 승인을 받았다. 리간드사의 라소폭시펜(Fablyn, 2009)과 바제독시펜(Duavee, 2013)은 폐경 후 골다공증 치료에 처방되었다.

오늘날 타목시펜은 생리 주기가 있는 폐경 전 여성에게만 쓴다. 생리 주기가 잠재적 자궁내막암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폐경 후 여성에게는 아로마타제 억제제가 선호된다.

2.5.3.2 · 아로마타제 억제제 — CYP17의 거울상

1980년대에 분리·정제된 아로마타제는 역사적으로 다른 이름들도 가졌다. 에스트로겐 합성효소, CYP19A1 같은 것이다. 이 효소는 내인성 테스토스테론을 에스트로겐으로 전환하는 것을 촉매한다. 에스트로겐이 대다수 유방암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지목되므로, 아로마타제 억제제의 사용은 논리적인 치료 전략이다. 이 점에서 아로마타제는 CYP17과 비슷하나 방향이 반대다. CYP17은 에스트로겐을 안드로겐으로, 아로마타제는 안드로겐을 에스트로겐으로 돌린다. 전립선암에서는 앞쪽을 막고 유방암에서는 뒤쪽을 막는다. 같은 논리의 거울상이다.

시바가이기(노바티스)가 이 분야를 지배해 여러 시판 아로마타제 억제제를 책임졌다. 1981년 최초의 아로마타제 억제제로 아미노글루테티미드를 출시했다. 오래된 약을 되살린 것인데, 다른 여러 스테로이드 호르몬과 CYP450 효소의 생합성도 저해하므로 선택적이지도 안전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 아닐린기는 간독성을 일으키는 독성단의 대표선수다. 이 약은 출시 직후 시장에서 다시 철수되었다.

시바가이기의 또 다른 선택적 아로마타제 억제제 포르메스탄(Lentaron)이 1996년 유방암 치료로 출시되었다. 이어 업존의 엑세메스탄(Aromasin)이 1999년에 나왔다. 포르메스탄과 엑세메스탄은 모두 스테로이드로, 스테로이드 기반 약물의 고유한 삼종 부작용을 함께 갖는다.

시장에 있는 더 강력하고 더 선택적인 두 비스테로이드성 아로마타제 억제제로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아나스트로졸(Arimidex, 1995)과 시바가이기의 레트로졸(Femara, 1997)이 있다. 진행성 및 초기 유방암에서 레트로졸이 타목시펜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일관되게 입증되었다. 금본위가 교체된 것이다.

2.5.3.3 · 분해제 — 막는 대신 없앤다

아스트라제네카의 풀베스트란트(Faslodex)는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분해제(SERD)로, 2002년 진행성 에스트로겐 수용체 양성 유방암 치료로 승인되었다.

풀베스트란트의 기원은 뜻밖의 자리에 있다. 1973년 프랑스 과학자 그룹이 친화성 크로마토그래피로 에스트로겐 수용체를 정제하려 한 데서 거슬러 올라간다. 아가로스 흡착제 컬럼에 에스트로겐 수용체 단백질에 친화도가 높은 물질을 채웠다. 그것은 수용체에 단단히 결합하는 스테로이드 핵과 긴 지방족 사슬로 이루어져 있었다. 단백질을 잡기 위해 만든 낚싯바늘이 약이 된 것이다.

이후 1988년 ICI(현 아스트라제네카)가 그런 화합물의 길항 효과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긴 지방족 측쇄를 부여한 스테로이드성 에스트로겐 수용체 리간드다. 이윽고 풀베스트란트가 '순수한' 완전 길항제로 발견되었다. 풀베스트란트-에스트로겐 수용체 복합체는 세포 안에서 불안정한데, 아마도 긴 측쇄가 노출된 소수성 표면을 늘리기 때문이다. 그 결과 풀베스트란트는 수용체를 유비퀴틴화의 표적으로 삼아 프로테아좀 분해를 촉발함으로써 에스트로겐 수용체 단백질을 분해한다.

길항제가 수용체의 자리를 차지하는 약이라면, 분해제는 수용체 자체를 없애는 약이다. 이 장의 다른 모든 약이 기능을 막는 쪽이었다면 여기서 처음으로 대상을 제거하는 쪽이 등장한다.

풀베스트란트는 1차 또는 2차 내분비 요법으로 안전하고 유효한 것으로 밝혀졌다. 임상에서 아로마타제 억제제 아나스트로졸보다 우월함이 입증되었다. 그런데 풀베스트란트는 용해도와 생체이용률이 좋지 않아 '약물 같지' 않으며, 월 1회 근육주사를 요구한다.

더 약물 같은 SERD를 얻기 위해 제약 산업은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다. 많은 SERD가 아직 임상 중이며 예외가 하나 있다. 경구 투여가 가능한 엘라세스트란트(Orserdu)가 2023년 폐경 후 여성 치료로 FDA에서 처음 승인되었다. 엘라세스트란트는 원래 일본 에자이가 개발했다. 세계를 몇 바퀴 돌아 결국 이탈리아의 대형 제약·진단 기업 메나리니 그룹의 손에 들어갔다.

2025년 9월에는 일라이릴리의 SERD 임루네스트란트(Inluriyo)가, 최소 한 차례의 내분비 요법 후 질병이 진행한 ER 양성·HER2 음성·ESR1 돌연변이 진행성 또는 전이성 유방암 성인 치료로 승인되었다.

풀베스트란트, 엘라세스트란트, 임루네스트란트 같은 SERD가 존재하는 유일한 단백질 분해제는 아니다. 지난 10년은 분자접착제와 PROTAC 형태의 단백질 분해제가 폭발한 시기였다. 이 주제는 원서 5장에서 확장된다.

06

맺음

Summary

화학요법 약물에 대한 저항성이 빠르게 발달하기 때문에, 새로운 약을 찾는 일은 여전히 암 치료의 우선 목표다.

이 장의 결론

결국 암 화학요법은 우리에게 피로스의 승리를 안겼다. 암세포를 죽이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길에 건강한 세포를 파괴했다.

같은 효능을 가지면서 정상적인 건강한 세포에 대한 손상을 최소화한 약이라면 우월할 것이다. 표적치료가 등장하는 지점이 여기다. 표적치료의 가장 훌륭한 계열 중 하나가 단백질 인산화효소 저해제이며, 그것이 원서 다음 장인 3장의 주제다.

이 장을 다 읽고 히어로의 게이지로 돌아가면, 여기 등장한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된다. 치료창을 넓히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었다.

그리고 이 세 방법으로도 창이 충분히 넓어지지 않는 계열들이 있다. 안트라사이클린의 심장독성은 효능과 같은 산화환원 기전에서 나오고, 후성유전 약물의 부작용은 유전체 전체를 상대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나온다. 효능과 독성이 같은 기전을 공유할 때 화학요법은 원리적 한계에 부딪힌다. 그 벽을 넘는 일이 표적치료의 몫으로 남았다.

부록 1

이상성 약물

Biphasic Medicines — the same molecule, two faces

이 장을 두 번 읽으면 부차적 서사 하나가 뚜렷해진다. 같은 분자가 용량에 따라 전혀 다른 약이 된다. 원저자는 이 계보를 장 전체에 흩어 놓았다. 흩어진 것을 한자리에 모으면 이런 표가 된다. 이것은 히어로의 게이지를 다르게 읽는 방법이기도 하다. 치료창이 하나가 아니라 둘 있는 약들이다.

원서 제2장에 언급된 이상성 약물을 본 문서에서 표로 재구성했다.
약물저용량에서고용량에서비고
사이클로포스파미드면역억제제. 골수이식·류마티스관절염·면역결핍 질환.알킬화제. 세포 사멸.“의학에서 약의 부작용은 때로 우리 쪽 이점으로 돌려세울 수 있다.”
멜팔란항종양 활성으로 승인되었으나 골수를 제거하는 강력한 면역억제 효과를 드러내, 수십 년간 조혈모세포이식에서 독자적 역할을 얻었다.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든 첫 사례.
메토트렉세이트주당 ~20 mg
류마티스관절염(1988 승인)
최대 1 g
백혈병
1951년에 이미 스테로이드 같은 효과가 관찰되었으나 류마티스 승인까지 37년이 걸렸다.
6-머캅토퓨린면역 간섭. 크론병·염증성 장질환.항백혈병. 병용 시 완치율 80%.1955년 항암 승인, 1958년 면역 작용 발견.
니코틴산밀리그램
비타민 B3
그램
LDL 강하 · HDL 상승(나이아신)
암과 무관하지만 원저자가 비교로 든 예.
아스피린81 mg
항혈소판 · 혈액 희석
1 g
항염 · 해열 · 진통
같은 분자가 다른 과(科)의 약이 되는 가장 익숙한 예.

표를 만들어 놓고 보면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상성은 설계된 것이 아니라 발견된 것이다. 여섯 항목 모두, 한 적응증으로 개발된 약을 임상에서 쓰다가 다른 얼굴이 드러났다. 약의 용량-반응 곡선 전체를 미리 아는 방법은 없고, 그것은 결국 사람에게 써 보면서 알게 된다.

부록 2

자연이 내주는 양

What Nature Gives — the price of one gram

이 장의 천연물 이야기는 예외 없이 같은 벽에 부딪힌다. 자연은 필요한 만큼을 주지 않는다. 흩어진 숫자를 모아 보면 왜 이 계열의 역사가 곧 공급 공정의 역사인지가 한눈에 보인다.

탁솔 마른 주목 껍질 20,000 lb → 1 kg 100년 된 주목 2그루 = 환자 1명 빈크리스틴 마른 일일초 잎 2 t → 1 g · 0.0003% 빈블라스틴 마른 일일초 잎 500 kg → 1 g · 0.01% 트라베크테딘 멍게 1,000 kg → 1 g · ~10 ppm 할리콘드린 B 해면 1,000 kg → 310 mg 막대의 채워진 부분이 실제 수율에 해당한다.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도해 3 — 1그램의 값막대 왼쪽 끝의 가느다란 선이 실제로 얻어지는 약이다. 원저자의 계산을 그대로 옮기면, 트라베크테딘 5킬로그램이면 전 세계 1년 수요를 채우는데 그것을 자연에서 얻으려면 멍게 5,000톤이 필요하다. 원서 §2.1.3, §2.3.1, §2.3.2, §2.3.3의 수치를 본 문서에서 모아 작도했다.
공급 문제는 언제나 더 상류의 재생 가능한 중간체를 찾는 일로 풀렸다.
약물막힌 곳풀린 방법
트라베크테딘전합성 약 50단계, 총수율 0.75%. 산업 규모에 부적합.발효로 얻는 사이아노아프라신 B를 진행된 중간체로 삼는 반합성 21단계. Pseudomonas fluorescens를 수 킬로그램 규모로 발효.
탁솔태평양 주목 껍질 0.014%. 나무를 베어야 한다.재생 가능한 유럽 주목의 잎에서 10-데아세틸바카틴을 분리, 홀턴법으로 측쇄를 원팟 설치.
에리불린해면 추출물은 유사체 혼합물. 통제 가능한 불순물 프로파일이 필요.기시 그룹 × 에자이의 수렴적 전합성 62단계. 결정화 17회, 크로마토그래피 단 1회. 키랄 중심 19개.
익사베필론에포틸론 B의 락톤이 에스터레이스로 절단되어 불활성화.락톤이 알릴성임을 간파해 츠지-트로스트 반응으로 3단계 원팟 락탐화. 작용기 보호 없음.
비노렐빈 → 빈플루닌불소화하려면 취약한 관능기가 다 깨질 것으로 예상.비노렐빈이 초강산 매질에서 안정함을 발견. HF/SbF₅ 처리로 단 1단계.

다섯 항목 모두 같은 구조다. 자연에서 완성품을 캐내려 하지 말고, 자연이 넉넉히 주는 중간체를 받아서 나머지를 사람이 만든다. 트라베크테딘은 세균 발효에서, 탁솔은 나무의 잎에서, 빈플루닌은 이미 있는 약에서 출발한다. 이 장에서 화학이 한 일은 대개 이것이다.

주기

원서 표기에 관하여

On the source text

이 문서는 인명·연도·수치를 원서 표기에 따랐다. 다만 원서 자체에 남아 있는 불일치나 오기로 보이는 대목이 몇 군데 있다. 임의로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옮긴 뒤 여기에 표시해 둔다. 판단은 읽는 사람의 몫이다.

루르비넥테딘의 승인 연도
원서는 파마마르가 “2000년” 루르비넥테딘(Zepzelca)의 FDA 승인을 얻었다고 적는다. 트라베크테딘 자체가 2015년에 승인된 서술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본문에서는 연도를 빼고 옮겼다.
타제메토스타트의 승인 연도
원서는 FDA가 “2000년” 타제메토스타트(Tazverik)를 승인했다고 적는다. 에피자임이 2022년 입센에 인수되었다는 같은 문장의 서술과 정합하지 않는다. 본문에서는 연도를 빼고 옮겼다.
토포테칸과 이리노테칸의 상품명
원서는 “토포테칸(Camptosar, 1996) by Upjohn”과 “이리노테칸(Hycamtin, 2007) by GSK”로 적는다. 두 상품명이 서로 맞바뀐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서는 상품명을 생략하고 일반명만 옮겼다.
블레오마이신 생산 균주의 분류
원서는 Streptomyces verticillus를 “fungus(진균)”라 적는다. Streptomyces는 세균 속이다. 본문에서는 분류 표현을 쓰지 않고 넘겼다.
빈데신의 출시 연도
원서는 빈데신(Eldisine)이 “1961년” 릴리에서 출시되었다고 적는다. 빈블라스틴 자체가 1965년 라이선스되었다는 앞의 서술과 순서가 맞지 않는다. 본문에서는 연도를 빼고 옮겼다.
미토마이신 C의 상품명
원서는 1974년 승인된 미토마이신 C에 “Jelmyto”라는 상품명을 붙인다. 젤마이토는 훨씬 뒤에 나온 특정 제형의 이름이다. 본문에서는 상품명을 생략했다.
NRAS의 유래
원서는 NRAS의 N을 “neuroblastoma”라 적는데, 같은 문장의 다른 곳에서는 이 이름을 신경교종으로 옮길 여지가 있는 표현이 섞여 있다. 본문에서는 원서 표기를 따랐다.
기타
미토마이신 C의 퀴논 환원 산물을 원서가 “bisphenol”로 적은 대목, 5-플루오로우라실의 철자, 파르미탈리아를 “Farmatalia”로 적은 표기 등 사소한 것들은 본문에서 통상 표기로 옮겼다.

참고

원주에 관하여

원서 제2장에는 71건의 원주가 달려 있으며, 1장과 달리 별도의 일반 독서목록(General Readings)은 없다. 원주는 1946년 굿맨과 윈트로브의 『JAMA』 나이트로젠 머스터드 논문에서 시작해 2024년 SERD 리뷰까지 이어진다. 주요 항목은 본문 서술 안에 발표 연도와 함께 녹여 두었다.

이 문서에서 인용한 문장·연도·수치는 모두 첨부된 원서 PDF의 제2장 본문에서 확인한 것이다. 다만 원주에 실린 개별 논문의 서지 사항은 원서를 직접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