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창출은 왜 다시 유효한 전략이 되었나
약물 재창출은 다른 질환을 위해 개발된 약에서 새 의학적 쓸모를 찾는 일이다. 이미 안전성과 유효성 기록이 쌓여 있으므로 새 약을 만들 때 드는 시간과 비용과 위험을 크게 줄인다. 승인된 약이라면 제조 공정을 새로 세울 필요조차 없다. 임상시험 진입의 주된 장벽이 사라진다.
이 장은 세 개의 고전적 사례로 시작한다. 셋 모두 우연의 산물이다.
- 탈리도마이드 — 임신부의 입덧 완화제로 판매되었다가 심각한 선천성 기형을 일으켜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그런데 이후 다발골수종과 나병에 효과가 있음이 밝혀져 임상에 복귀했다. 약의 원래 목적과 실제 효과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준 사례다.
- 실데나필 — 심혈관 질환 치료 후보로 연구되다가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로 재출시되었다.
- 미녹시딜 — 고혈압 치료제로 승인되었으나, 임상 관찰에서 발모 자극 성질이 발견되어 탈모 치료제가 되었다.
이 세 사례는 재창출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비체계적이었는지도 증명한다. 탈리도마이드의 두 번째 삶은 참사의 대가로 얻은 것이고, 실데나필과 미녹시딜은 임상시험 도중의 부작용 관찰에서 나왔다. 누군가 그것을 알아본 덕분이지, 찾으려 해서 찾은 것이 아니다.
이 장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우연을 설계로 바꿀 수 있는가. AI가 답하려는 질문이 그것이다.
1.1 처음 시작하는 사람을 위한 세 갈래 진입로
원저자들은 AI 기반 재창출에 처음 발을 들이는 연구자를 위해 접근 가능한 경로 셋을 제시한다. 실제 실험실에서 쓰이도록 설계된 것들이고, 벤치 과학자와 생물정보학자 양쪽 모두가 기여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PubChem + scikit-learn
50줄 미만의 파이썬 코드로 표적 예측이 가능하다. 프로그래밍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가장 빠른 출발점이다.
KNIME
시각적 인터페이스로 지식그래프를 구성한다. 코딩이 필요 없다. 데이터 흐름을 노드로 연결해 파이프라인을 만든다.
HuggingFace BioBERT
사용자 친화적인 스크립트로 문헌 마이닝을 시작한다. 사전학습된 생의학 언어모델을 그대로 불러 쓴다.
1.2 AI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고를 모방하고 확장하도록 설계된 컴퓨터과학의 한 분야다. 학습과 추론에서 문제 해결, 의사결정, 언어 이해까지를 포괄한다. 도구 상자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기계학습, 딥러닝, 자연어처리, 그리고 휴리스틱·결정론적 최적화 알고리즘 같은 서로 다른 계산적 접근을 조합해 특수 목적의 시스템을 만든다. 재창출에서 AI의 이점은 명확하다. 방대한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빠르게 스크리닝해 물리적 실험을 전부 하지 않고도 유망한 후보를 추린다. 초기 개발 단계가 극적으로 단축된다.
재창출을 위한 AI 기법
계산적 신약설계(CADD)와 AI는 둘 다 개발 속도를 높이려는 계산적 접근이지만 작동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CADD는 검증된 기법으로 분자를 설계하고 다듬는다. 기계학습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CADD가 다룰 수 없는 복잡성을 파고든다. CADD가 주로 분자 설계에 머무는 반면, AI는 표적 발굴과 임상시험 결과 예측 같은 새 영역으로 확장한다.
원저자들은 재창출 파이프라인을 위해 네 가지 방법론을 명시적으로 선택했다. 생물 시스템이 지나치게 복잡해서 단일 기법으로는 어느 면도 온전히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2.1 기계학습과 딥러닝
kNN, 랜덤포레스트, SVM 같은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복잡한 데이터 분석 능력 덕분에 널리 쓰인다. 딥러닝은 이 분야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CNN과 LSTM 같은 특화 구조의 신경망이 표적 발굴의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네트워크 안에서 약물과 단백질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분석하고, 새 결합 부위의 출현을 예측하며, 단백질 구조를 더 정확히 모형화한다. AlphaFold2가 그 전형이다.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해 구조 기반 신약 발굴의 문을 열었다.
기하학적 딥러닝(geometric deep learning)은 3차원 분자 그래프 같은 비유클리드 데이터를 다루는 신경망을 만드는 방법이다. 등변 그래프 신경망(EGNN)과 여러 생성 모형 — 확산, 흐름 기반, GAN, VAE, 자기회귀, 에너지 기반 — 을 동원해 3차원 구조 기반 신약설계(SBDD)에 진보된 응용을 제공한다.
2.2 지식그래프 기반 기법
그래프 구조로 약–표적 상호작용을 표현하고 분석한다. DeepDR은 약–질병 네트워크와 약–표적 네트워크를 통합해 무작위 보행 방식으로 고수준 약물 특징을 학습한다. NETTAG은 이 네트워크 안에 다중오믹스 데이터를 통합해 질병 연관 유전자를 식별하고 재창출 가능한 약을 예측한다.
2.3 생성 AI 모형
ChatGPT 같은 대규모 언어모델이 등장하면서 생의학 연구자들이 생성 도구에 접근하기 쉬워졌다. ChemSpaceAL, GraphGPT, PEtrans, DrugChat 같은 모형이 분자 생성, 맥락적 특징 선택, 단백질 내 표적 부위 결정 기능을 제공한다. 텍스트 생성에서는 CTRL과 T5가, 이미지 생성에서는 StyleGAN과 Pix2Pix가 복잡한 생물 구조의 이해를 돕는다. GitHub Copilot 같은 생성 AI는 신약연구용 계산 플랫폼 설계 자체를 쉽게 만든다.
원저자들은 이 모형들을 두고 “도구가 아니라 협업 파트너”라고 썼다. 수사로 읽어도 좋고 문자 그대로 읽어도 좋다. 다만 뒤에 나올 7.1절에서 저자들 스스로 LLM의 개체 인식 오류율이 약 15퍼센트라고 적었다는 점은 함께 기억해 둘 만하다.
2.4 강화학습
인공신경망과 심층 강화학습 구조를 결합한 반복 학습 알고리즘이 재창출 의사결정에 동적 방법론을 제공한다. 가상 에이전트가 분자를 재설계해 최적 성능을 찾아 나가며, 특정 생물학적 표적에 대해 예측된 활성을 갖는 유사체나 물질을 만들어 낸다. ReLeaSE(Reinforcement Learning for Structural Evolution)가 대표적이다. 심층신경망과 강화학습을 결합한 프레임워크로, 화합물 생성과 예측 양쪽에서 SMILES 표기 문자열만으로 작동한다.
자연어처리, 기계학습, 네트워크 약리학을 QSAR 모형에 적용하면 더 정확한 결과가 나오고, 대규모 임상 데이터를 분석해 개발 과정에서 관찰된 부작용의 근본 기전을 밝힐 수 있다. 이것이 곧 미처 발견하지 못한 치료 가능성을 드러낸다. 약의 작용 기전이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을 때에도 AI 알고리즘은 인실리코 스크리닝, 유사성 비교 분석, 약물 반응 관련 새 바이오마커 발굴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2.5–2.6 데이터베이스와 의료 데이터 자원
약의 치료 잠재력을 직접 가리키는 것은 결국 약화학 데이터다. PubChem은 생물학적 맥락에서 저분자 상호작용에 관한 포괄적 지식 기반을, ChEMBL은 생리활성 화합물과 표적 사이의 정량적 상호작용 정보를 제공한다. DrugBank는 표적 정보를 포함한 종합 약물 정보를 담아 분자 수준의 작용 이해에 필수적이다. OMIM, PDB, LINCS L1000 같은 자원까지 더해지면 다면적 접근이 가능해진다.
| 데이터베이스 | URL | 수록 규모 |
|---|---|---|
| ChEMBL | ebi.ac.uk/chembl | 2,496,335 |
| chemDB | cdb.ics.uci.edu | >5M 저분자 |
| PubChem | pubchem.ncbi.nlm.nih.gov | 119M 화합물 |
| BindingDB | bindingdb.org | 1.3M 화합물 |
| L1000 | L1000viewer.bio-complexity.com | >40,000 화합물 |
| DrugBank | drugbank.ca | 4,710 승인 약물 |
| DrugTargetCommons (DTC) | osf.io/qdjup | 4,276 |
| STITCH | stitch.embl.de | 390,000 |
| Therapeutic Target DB (TTD) | idrblab.org/ttd | 39,862 |
| CCLE | sites.broadinstitute.org/ccle | 항암제 25종 |
| Comparative Toxicogenomics DB | ctdbase.org | 15,100 화학물질 / 3,121,192 화학–유전자 상호작용 |
| ClinicalTrials.gov | clinicaltrials.gov | >1,400 승인 약물 |
| ZINC | zinc.docking.org | 4.59M 리드 유사 화합물 |
2.8 실행 규약 — 전처리 없이는 아무것도 없다
표 2.2의 데이터베이스를 실제로 쓰려면 세 단계의 전처리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 장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실용적인 부분이다.
PubChem CID/SID 상호 참조로 중복을 제거하고, 결측 필드가 20퍼센트를 넘는 항목을 버린다. 식별자는 DrugBank ID로 표준화한다.
엄격한 임계값을 적용한다. 결합 친화도 100nM 미만 또는 pIC50 7.0 이상. ChEMBL 신뢰도 점수가 8 미만인 저신뢰 분석은 제외한다.
R의 ComBat으로 배치 효과를 보정하고, 분석 데이터를 Z-score 변환한다. 구조는 RDKit으로 canonical SMILES로 바꾸고, 임상 데이터는 OMOP-CDM 표준에 매핑한다.
모형을 바꿔서 얻는 개선보다 데이터를 정리해서 얻는 개선이 클 때가 있다. 이 장이 제시한 숫자가 정확히 그 경우다. 잡음 60퍼센트 감소, 정확도 15에서 20퍼센트 개선. 이것은 알고리즘의 성취가 아니라 규율의 성취다.
모형과 알고리즘: 정밀 도구상자
재창출에서 AI 모형은 ‘정밀 도구상자’로 기능한다. 복잡한 생물학 데이터를 풀어 실행 가능한 통찰로 바꾼다. 다만 그 대가로 블랙박스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의료진과 규제 당국의 신뢰를 얻으려면 이해 가능한 모형과 의사결정 과정을 공개하는 프레임워크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원저자들은 Bornet 등(2025)의 비교 연구를 인용한다. fastText 임베딩은 생의학 용어 표현에서 가장 우수했고, word2vec과 GloVe는 결과 예측에서 더 나았다. 하위 단어(subword) 정보가 의학 개념 학습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 결과다.
3.1 유사성 기반 표적 발굴
Rodriguez 등(2021)은 다양한 유전자 발현 데이터셋으로 학습한 AI 모형으로 알츠하이머병 진행의 각 단계와 연관된 유전적 표지를 찾아냈다. 질병 악화의 양상을 보여 주는 동시에 치료 표적 후보를 함께 짚어 낸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Ghiam 등(2022)은 이중 모드 네트워크로 당뇨와 알츠하이머의 관계를 조사하면서 긴 비암호화 RNA(lncRNA)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질적 생물학 데이터의 종합이 새로운 치료 경로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보인 연구다.
원저자들 자신의 선행 연구도 인용된다. 네트워크 기반 miRNA·전사인자 탐색을 통해
델타-세크레테이스를 표적으로 하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후보를 찾았고,
뇌에서 고발현되는 hsa-miRNA-106a-5p와 hsa-miRNA-34a-5p를 새로 식별했으며,
LGMN을 네트워크의 핵심 허브로 지목했다. LGMN의 주요 전사인자와 oprea1 같은 리드도 함께 찾았다.
3.2 그래프 신경망으로 읽는 기전
그래프 신경망(GNN)은 복잡한 생물학적 상호작용을 규명하고 치료 전략을 개인화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알츠하이머 재창출 연구에서 특히 그렇다.
약–질병 관계 예측
생의학 네트워크에서 약물과 질병의 고수준 특징 표현을 학습해 약–질병 관계를 예측하는 GNN 모형이다.
AD 위험 유전자 예측
GWAS 결과와 다중오믹스 데이터를 결합해 알츠하이머 위험 유전자를 예측하고 치료 표적 후보를 짚어낸다.
약물 조합 예측
개별 약–표적 쌍의 표현을 학습해 알츠하이머용 약물 조합을 예측하는 GNN 모형이다.
상위 약물·시너지 조합 도출
알츠하이머 지식그래프에서 노드 표현을 도출해 상위 약물과 시너지 조합을 찾아냈다.
3.3 사례 — 전문가가 이끄는 AI, DeepDrug
DeepDrug는 AI와 전문가의 지도를 결합해 알츠하이머 치료용 승인 약물 조합을 찾는 프레임워크다. 핵심은 신경과학 전문가의 도메인 지식을 AI 기반 재창출에 통합했다는 점이다.
전문가 주도 생의학 그래프 구축
알츠하이머 환자의 혈액·뇌 시료에서 얻은 확장 유전자 서열, 면역·노화 경로, 체세포 변이 지표를 활용한다. 방향성 있는 이질 네트워크를 만들고 전문 지식으로 보강한다. 노드와 엣지에 가중치를 부여하며, 양방향 연결의 부호(양/음)까지 표현한다.
수확체감 기반 임계값
수확체감 임계값을 이용해 재창출 약물 조합을 최적화한다. 단일 후보를 먼저 세우고, 그 위에서 3제 이상의 리드 조합을 찾아 나간다.
이 방식으로 도출된 예시가 다섯 약물의 조합이다. 토파시티닙, 니라파립, 딜티아젬, 판토프라졸, 프라바스타틴. 신경염증, 미토콘드리아 기능 이상, 콜레스테롤 대사라는 알츠하이머의 주요 특징을 협동적으로 겨냥하기 위해 선택된 조합이다. 같은 절차는 다른 질환에도 적용할 수 있으며, 코로나19 이후 새로 등장한 건강 문제에 대응하는 재창출 기제로 쓰일 수 있다.
신경망과 자연어처리, 두 개의 기둥
4.1 신경망 — 도킹에서 공동접힘으로
AI 기반 수용체–리간드 도킹 모형이 가상 분석을 크게 개선했다. 등변 신경망(equivariant neural network)을 쓰는 모형들은 리간드의 위치 변화를 예측하고 정확한 원자 배치를 찾아낸다. AlphaFold2와 RosettaFold에서 영감을 받은 수용체–리간드 공동접힘(co-folding)은 서열 데이터에서 곧바로 복합체 구조를 도출할 수 있다는 전망을 연다.
현실적인 리간드 형태(conformation)를 만들어 내는 데는 여전히 난점이 있다. 딥러닝 기반 결합 자세 예측 모형은 일부 영역에서 아직 물리 기반 방법을 넘어서지 못했고, 성능이 리간드 자세의 정확도에 크게 의존한다.
표적 구조가 아직 규명되지 않았거나 부분적으로만 알려진 경우 서열 기반 예측이 대안이 되지만, 이 방법은 단백질–리간드 상호작용의 3차원 복잡성을 다루는 데 취약하다. 가설적이거나 특성이 규명되지 않은 구조에서는 경험적 데이터의 부재가 예측을 더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표적이 명확하지 않은 질환 — 일부 희귀질환과 노화 관련 질환 — 에서는 관찰 가능한 결과에 기반한 가상 스크리닝이 필수 전략이 되고 있다. 세포 형태학적 특성과 전사 시그니처를 함께 통합해 AI 기반 활성 예측 모형의 성능을 끌어올린 연구들이 나왔다.
알츠하이머 재창출 사례의 NLP 파이프라인 성능
표준적인 텍스트 마이닝 대비 재현율이 12에서 15퍼센트 올랐다는 것은 흔치 않은 약–질병 연결을 찾는 데 실질적 이득이 된다는 뜻이다. 재현율은 ‘놓치지 않는 능력’이고, 재창출에서 놓친 후보는 존재하지 않는 후보와 같기 때문이다.
4.2 자연어처리 — 실세계 근거를 캐낸다
자연어처리는 방대한 임상·과학 문헌 속에 묻힌 실세계 근거를 꺼낸다. 실제 환자 데이터를 쓰는 임상시험이 그러하듯, 이 데이터를 훑어 승인 약물의 새 기회를 찾는다. 약–유전자 상호작용을 예측하고 임상시험용 리드 조합을 찾아내는 딥러닝 프레임워크가 만들어졌다. 앞서 본 알츠하이머 5제 조합이 그 산물이다. 신경망과 자연어처리의 결합은 표적 발굴부터 조합 최적화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접근을 가능하게 하며, 데이터 희소성과 불균형 문제를 다루고 가상 스크리닝 모형의 전이 가능성을 높인다.
정밀의료가 재창출을 강화하는 방식
개인화 의료에서 AI 알고리즘은 환자 고유의 표현형 특성 — 유전자 발현 양상, 단백체 데이터, 임상 증상 — 에 맞춰 치료를 맞춤화한다. 종양의 유전적 구성과 환자의 전반적 건강 상태를 함께 살펴 가장 적합한 치료제와 전략을 짚어낸다. 효능은 올라가고 부작용은 줄어든다.
AI와 표현체학(phenomics) 데이터의 결합은 약리학적 표적의 발굴과 검증을 가속한다. 환자로부터 나온 대량의 표현형 데이터를 분석해 질병과 연관된 중요한 생물학적 표적을 찾는다. AI 모형은 유전체와 표현체 데이터를 결합·분석해 표현형과 유전자 사이의 복잡한 관계망을 규명하도록 설계된다. 유전자가 표현형 발현에 영향을 주는 조절 과정을 밝히고, 그것이 다시 건강과 질병 상태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드러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새 바이오마커의 발굴이다. 방대한 인간 표현체 데이터에 AI의 패턴 인식 능력을 적용하면 이전에 없던 바이오마커가 드러날 수 있다. 이 바이오마커들은 조기 진단, 정확한 예후 평가, 치료 반응의 정밀한 추적을 가능하게 해 의학 연구와 임상 진료를 바꿔 놓을 잠재력을 가진다.
정밀함이 작동하는 현장
겉보기에 이 세 질환은 전혀 다르다. 그런데 조절되지 않은 염증, 면역 회피, 세포 노화라는 기저의 분자 경로를 공유한다. AI가 잘하는 일이 바로 이 공유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먼저 방법론적 성과 하나. Ahmed 등(2022)은 기계학습으로 강화한 지속가능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바이러스 확산을 분석했다. 로지스틱 회귀와 SVM을 적용해 각각 97.66퍼센트와 98퍼센트의 정확도를 얻었다. 증상 정보만으로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예측·탐지하면서 장기적 확산 양상까지 내다보는 모형이다.
6.1 알츠하이머 — 염증을 가라앉힌다
알츠하이머는 오랫동안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원인이라고 여겨졌다. 지금은 지속적 신경염증과의 연관이 더 자주 거론된다. 그 염증은 흔히 과활성화된 JAK/STAT 신호전달에서 온다. BenevolentAI 같은 플랫폼이 수십 년치 알츠하이머 임상시험 데이터를 훑어 JAK 억제제 바리시티닙을 후보로 지목했다. SHAP 해석 분석은 JAK1 억제(특징 중요도 0.72)가 바리시티닙 재창출의 주된 기전임을 보였고, 이는 이 약의 알려진 항신경염증 성질과 일치했다. AI 모형이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경로 수준의 통찰을 끌어냈다는 것이 이 대목의 요지다. AI의 결정적 역할은 류마티스 관절염의 염증 시그니처를 알츠하이머 오믹스 데이터와 연결한 데 있었다.
6.2 암 — 적을 아군으로 바꾼다
암이 면역 파괴를 피하는 방식에도 JAK/STAT 경로의 조작이 개입한다. IBM Watson for Oncology 같은 모형이 종양 RNA-seq 데이터를 분석해 바리시티닙을 면역관문 억제제의 증강제 후보로 짚었다. 전이성 흑색종에서 항PD-1 요법과의 병용은 STAT3 변이를 가진 환자군의 무진행생존기간을 유의하게 늘렸다. AI는 어떤 종양이 JAK 억제에 반응할 가능성이 높은지 예측해 치료 계획의 개인화를 돕는다.
최근에는 NetSDR 기법이 등장했다. 네트워크 모듈화와 섭동 분석으로 암 아형을 정밀 표적화하는 재창출 방법이다. 치료 후보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암종의 복잡성을 분해해 각각의 고유한 취약점을 드러낸다. 이 네트워크 모듈들을 살펴 기존 약을 특정 암종에 전략적으로 재배치한다.
6.3 코로나19 — 사이토카인 폭풍에서 롱코비드까지
팬데믹 동안 DeepMind의 AlphaFold, Deargen의 기계학습 기반 표적 스크리닝 같은 도구가 바리시티닙을 바이러스 진입과 사이토카인 폭풍 매개자의 차단 후보로 빠르게 찾아냈다. WHO는 2021년 바리시티닙을 코로나19 치료 지침에 포함시키면서 중증 사례에서 사망률을 38퍼센트 낮췄다고 밝혔다. 오늘날 AI는 이 약을 롱코비드 — 환자에게 남은 잔여 염증 — 로 다시 재창출하고 있다.
앞으로 무엇이 오는가
설명가능한 AI(XAI)가 블랙박스의 신비를 걷어내 신뢰와 투명성을 세울 것이다. 바이오마커 발굴과 통합 오믹스 데이터의 해석에도 기여한다. GAN이나 신경 튜링 기계 같은 진보된 딥러닝 구조는 복잡한 생물 시스템을 전례 없는 정밀도로 모형화할 준비를 마쳤다. 연합학습은 환자 프라이버시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기관 간 안전한 협업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AI와 기계론적 모형화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형은 질병 경로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RAG와 대규모 언어모델
검색 증강 생성(RAG)과 LLM의 결합이 다음 국면을 연다. 방대한 과학 문헌을 탐색하고 임상 데이터를 자율적으로 분석해 지식을 종합하고 새 가설을 만든다. 약리학적 표적을 짚고 창의적인 약물 조합을 제안한다. BioGPT 같은 LLM은 이미 3천만 편이 넘는 PubMed 초록에서 약–질병 상관을 빠르게 식별하는 방식으로 문헌 마이닝을 바꿔 놓았다.
원저자들의 표현 그대로다. LLM은 환각의 위험 때문에 임상 환경에서 아직 쓸 수 없다. 개체 인식에서 약 15퍼센트의 오류율이 보고되어 있다.
연합학습은 다기관 임상시험(예: NIH의 AIM-AHEAD 파트너십)에 유망하지만, 현재로서는 EHR 시스템 간 데이터 조화에서 규제상의 난관에 부딪혀 있다.
원저자들이 제시하는 근미래 시나리오는 이렇다. LLM이 발표된 연구에 기반해 재창출 가설을 만들고 (후향적 검증에서 92퍼센트 정확도), 연합 시스템이 원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채 병원 네트워크 전반에서 그 발견을 안전하게 검증한다. 향후 3~5년 안에 보편화될 것으로 본다.
7.1 한계 — 이 장이 스스로 적어 둔 것
이 절은 짧지만 이 장에서 가장 정직한 대목이다.
- 편향된 학습 데이터 — 예컨대 희귀질환 사례의 부족 — 와 부실한 모형화 기법은 신뢰할 수 없는 예측을 낳는다. 제약 산업에는 매우 값비싼 결과다.
- SHAP과 LIME 같은 설명 도구는 블랙박스 딜레마를 부분적으로만 완화한다.
- 계산 이론의 오해, 문헌에 반복적으로 실리는 잘못된 결과, 부적절한 평가 설계 — 이 셋은 엄격한 임상 검증이 왜 필수인지를 보여 준다.
후향적 검증 정확도 92퍼센트와 중개 단계 실패율 30~50퍼센트는 모순이 아니다. 후향적 검증은 이미 답이 알려진 문제를 다시 푸는 일이고, 중개 단계는 아직 아무도 답을 모르는 문제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원저자들이 마지막에 쓴 문장이 이 장 전체의 결론에 가깝다. AI 출력을 검증하는 인간 전문성의 역할은 타협 대상이 아니다.
이 장이 남기는 것
재창출의 역사는 우연의 역사였다. 탈리도마이드, 실데나필, 미녹시딜 모두 누군가 알아본 덕분에 두 번째 삶을 얻었다. AI가 바꾸는 것은 그 우연을 탐색 가능한 공간으로 만든 일이다.
단일 기법으로는 부족하다. 지식그래프가 후보를 찾고, 기계학습이 평가하고, 생성 모형이 최적화하고, 강화학습이 조율한다. 넷은 서로의 약점을 상쇄하는 선순환을 이룬다.
2.8절의 전처리 규약이 이 장에서 가장 실용적인 부분이다. 잡음 60퍼센트 감소, 모형 정확도 15~20퍼센트 개선. 알고리즘을 바꾸지 않고 얻은 개선이다.
바리시티닙은 알츠하이머(2상), 흑색종(3상), 코로나19(3상)에서 임상적으로 검증되었다. 이 교차 질환 유효성은 AI가 공유된 JAK/STAT 경로 억제를 통해 예측한 것이다. 기전적 통찰이 전통적 진단 경계를 넘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AI 도출 후보의 30~50퍼센트가 중개 단계에서 실패한다. LLM은 환각 때문에 아직 임상에 쓸 수 없다. 연합학습은 규제 장벽에 막혀 있다. 이 세 문장은 원저자들이 직접 쓴 것이다.
이 장은 문체가 낙관적이다. “게임 체인저”, “희망의 등대” 같은 표현이 자주 나온다. 그런 표현을 덜어내고 남는 것을 보면 논지는 견고하다. AI가 한 일은 새 약을 만든 것이 아니라, 질병을 분류하는 기준을 바꾼 것이다. 이름표에서 경로로. 그것이 바리시티닙이 세 진료과를 가로지른 이유다.
다만 인과의 방향은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AI가 JAK/STAT 경로를 ‘발견’한 것은 아니다. 그 경로는 이미 알려져 있었다. AI가 한 일은 그 경로가 세 질환 모두에 걸쳐 있다는 사실을 문헌과 오믹스 데이터 위에서 계산 가능한 형태로 만든 것이다. 작은 차이 같지만 중요한 차이다. 전자는 발견이고, 후자는 규모의 문제다. 이 장이 실제로 증명한 것은 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