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 Preamble
막지 말고
없애라
1971년 닉슨이 '암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래 미국은 암의 예방과 치료를 발견하고 개발하는 데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왔다. 통상의 항암제 외에도 암 치료를 위한 새로운 양식이 여럿 등장했다. 이 장은 그중 가장 중요한 것들을 다룬다.
그리고 §5.1의 첫 문장이 이 장 전체의 문법을 한 줄로 세운다.
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을, 없앨 수 있다면 굳이 막을 이유가 있는가?
원서 §5.1 첫 문장
이 물음이 왜 5장에 와서야 가능해졌는지를 알려면 앞의 네 장을 돌아봐야 한다. 2장의 화학요법은 스스로 DNA를 알킬화했다. 3장의 인산화효소 억제제는 스스로 ATP 주머니를 차지했다. 4장의 항체는 스스로 수용체에 달라붙었다. 모두 약이 표적에 붙어 있는 동안만 일이 되었고, 약이 떨어지면 표적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5장의 약은 다르다. 표적에 붙어 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미 세포 안에 있는 기계에게 표적을 넘겨주는 것이 목적이다. 분자접착제와 PROTAC은 세포의 폐기물 처리장인 프로테아좀에게 넘긴다. 면역관문 억제제는 T세포의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 준다. CAR T는 T세포의 수용체를 갈아 끼운다. 유전자치료는 세포에게 정상 유전자를 주고 스스로 만들게 한다.
이 위임에는 두 가지 큰 이득이 따라온다. 첫째, 촉매처럼 작동한다. 한 분자가 여러 표적을 차례로 처리장에 보낼 수 있으므로 약이 계속 붙어 있을 필요가 없다. 둘째, 효소가 아닌 단백질도 겨눌 수 있다. 3장의 억제제는 활성 부위가 있어야 막을 수 있었지만, 없애는 데는 표면에 붙을 자리 하나면 족하다. 1장에서 40년간 '약을 만들 수 없다'고 여겨진 RAS 같은 단백질에 손이 닿는 길이 여기서 열린다.
다만 대가도 따른다. 이 장의 뒤로 갈수록 약은 살아 있는 것에 가까워지고, 값은 한 사람당 수십만 달러에서 400만 달러를 넘어간다. 그리고 두 아이의 이야기가 그 양극단을 보여 준다.
§ 5.1 · Molecular Glue Degraders
분자접착제
Inducing proximity
표적 단백질 분해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여기서는 가장 중요한 두 계열, 분자접착제 분해제와 단백질분해 표적 키메라(PROTAC)만 다룬다. 전자는 링커가 없는 작은 '단일기능' 분자이고, 후자는 두 리간드를 링커로 이은 더 큰 '이중기능' 분자다.
분자접착제 분해제는 이름 그대로 접착제처럼 행동한다. 두 단백질을 그 표면에서 붙인다. 근접을 유도함으로써 표적 단백질과 유비퀴틴 리가아제 사이의 협동적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그 결과 표적 단백질이 유비퀴틴화되어 프로테아좀에 의해 분해된다. 분자접착제 분해제는 작고 약물 같은 화합물이어서 리핀스키의 5의 법칙을 충족한다.
5.1.1슈라이버와 리우 — 접착제의 발견
분자접착제 현상은 약 35년 전인 1991년, 하버드대학 스튜어트 슈라이버 그룹의 박사후연구원이던 준 리우가 처음 발견했다.
친화성 크로마토그래피 기법으로 리우는 면역억제제이자 흔한 항생제인 사이클로스포린 A가 분자접착제로 기능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두 단백질에 동시에 결합해 있었다. 사이클로필린과, 단백질 탈인산화효소인 칼시뉴린이었다. 3장 §3.1.2에서 인산화효소의 짝으로 나온 그 탈인산화효소다. 한편 또 다른 면역억제제 FK506도 분자접착제처럼 기능하며, FK506 결합 단백질(FKBP)과 칼시뉴린에 동시에 결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슈라이버는 1994년 배리 워스의 책 『10억 달러짜리 분자』에 유명하게 묘사되었다. 리우는 지금 존스홉킨스대학의 저명한 교수다.
단백질 분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려면 우선 아주 작은 단백질 하나를 봐야 한다. 유비퀴틴이다.
5.1.2끓인 상등액 — 유비퀴틴이라는 노벨 단백질
세포 단백질은 한때 오래도록 믿어진 것처럼 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동적 상태'에 있다. 세포 내 단백질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동시에 파괴된다.
단백질 분해의 한 경로는 리소좀을 통한다. 1955년 벨기에 생화학자 크리스티앙 드 뒤브가 발견한 이 세포소기관은 그리스어로 '소화하는 몸'을 뜻한다. 드 뒤브는 또 다른 중요한 소기관 퍼옥시좀도 발견했으며, 1974년 알베르 클로드, 조지 팔라데와 함께 “세포의 구조적·기능적 조직에 관한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세 사람은 사실상 세포와 그 수많은 소기관의 기능 지도를 제공했고, 이 소기관들이 서로 소통하는 경로, 이른바 분자 수송을 도식화했다.
리소좀은 분해 효소들의 모음을 담은 그릇이며, 그리스어로 '자기를 먹는 것'을 뜻하는 자가포식을 통해 세포질 안의 단백질을 가수분해한다. 202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스탠퍼드대학의 캐럴린 버토지가 리소좀 표적 키메라(LYTAC)를 발명했는데, 이것은 막결합 단백질과 세포외 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다.
하이파의 아브람 헤르슈코
처음에는 단백질 분해가 대체로 리소좀의 자가포식으로, 특이성 없이 이루어진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리소좀은 세포외 단백질의 회전에만 관여한다. 세포 내 단백질 분해의 대부분은 리소좀 단백질분해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그것들이 대부분 리소좀이 아닌 다른 기구, 곧 유비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UPS)을 거친다는 것을 안다. 이 깨달음은 아브람 헤르슈코와 동료들이 30년에 걸친 오디세이 끝에 얻어 냈다.
1937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헤르슈코는 1947년, 이스라엘 건국 1년 전에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1969년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의학박사·박사 학위를 받은 뒤, UCSF에서 박사후연구를 하며 세포 안에서 단백질이 어떻게 분해되는지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시대가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동시대 사람들, 특히 UCSF의 같은 실험실 동료들은 단백질 분해 연구에 관심이 없었다. 분자생물학의 중심 도그마는, 말하자면 도그마였다. RNA에서 단백질로 가는 번역 연구가 대유행이었다. 단백질 연구조차 관심은 합성에 고정되어 있었지 분해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단백질 분해는 단백질 합성만큼이나 중요하다. 세포가 살아남으려면 단백질 항상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UCSF에서 헤르슈코는 티로신 아미노기전이효소의 회전이 세포 ATP 생산 저해제인 플루오린화칼륨에 의해 완전히 억제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단백질 분해가 에너지 의존적임을 확인한 것이다.
197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온 헤르슈코는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 하이파에 새로 문을 연 테크니온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대학은 아주 작았고 연구 시설도 변변치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세포 내 비리소좀 단백질분해와 그 기전에 대한 조사를 밀고 나갔다. 처음에는 좌절스럽고 결실이 없었다. 고전적 생화학 방법으로 세포 내 분해를 연구할 무세포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1975년 NIH 포가티 센터의 한 학회에서 헤르슈코는 필라델피아 폭스체이스 암연구소의 유명한 효소학자 어윈(어니) 로즈를 만났다. 이 운 좋은 우연한 만남이 하이파와 필라델피아 두 그룹 사이의 22년에 걸친 협업으로 이어졌고, 노벨상으로 이어졌다. 헤르슈코는 폭스체이스의 현대적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그곳에서 안식년 연구를 수행했고, 로즈는 하이파의 연구를 지원할 NIH 연구비에 지원하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헤르슈코의 연구를 고속으로 올려놓은 진전이 하나 있었다. 1977년 하버드 의대의 앨프리드 골드버그가 획기적인 발견을 했다. 토끼의 미성숙 적혈구(망상적혈구)에서 비정상 헤모글로빈을 분해할 수 있는 무세포 추출물을 만든 것이다. 망상적혈구에는 리소좀이 없는데도 세포 내 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었다. 가용성 ATP 의존 단백질분해계로서 토끼 망상적혈구는 세포 내 단백질 분해에 관여하는 효소를 정제하고 규명하는 데 중요하고 풍부한 원천이 되었다.
그런데 원저자는 여기에 한 줄을 붙인다. 골드버그는 그것을 후속 연구로 이어 가지 않았고, 훗날 노벨상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반면 헤르슈코는 골드버그의 무세포 망상적혈구의 값어치를 즉시 알아보았다. 방사표지 망상적혈구 용해물을 준비한 뒤 전체 세포 단백질의 85%를 차지하는 헤모글로빈을 제거했다. 조추출물을 음이온 교환수지 컬럼에 통과시켜 두 분획을 얻었다. 분획 I과 분획 II였다.
그리고 여기서 이 장의 첫 수수께끼가 나온다. 각각의 분획은 기질 단백질을 분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원래의 두 분획을 다시 합치자 ATP 의존 단백질분해가 기적처럼 되살아났다. 이 관찰이 훗날 복잡한 단백질 분해 기전을 밝히는 데 심대한 중요성을 갖게 되는데, 그것을 풀어내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아주 작은 단백질
하이파의 대학원생 아론 치에하노베르가 1977년 헤르슈코의 갓 만들어진 그룹에 합류했다. 그는 분획 I을 더 정제하고 규명하는 임무를 맡았고, 그것이 중요한 일로 판명되었다.
붉은 추출물인 분획 I에는 잔류 헤모글로빈이라는 주된 오염물 외에 '활성' 단백질이 딱 하나 들어 있었다. 치에하노베르가 그 활성 단백질을 정제하느라 애를 먹던 중, 분획 I의 분해 활성이 가열한 뒤에도 유지된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활성 단백질이 열에 안정하다고 판단한 그는 '미친' 생각 하나를 떠올렸고 실행에 옮겼다. 원저자는 그 이유를 숨기지 않는다. 지도교수가 미국 폭스체이스에서 안식년을 보내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치에하노베르는 분획 I을 끓는 물에서 10분간 가열했다. 헤모글로빈 대부분이 진흙처럼 침전했다. 그리고 노란 상등액에 단백질 분해 활성이 전부 들어 있었다. 그 뒤로 정제가 훨씬 쉬워졌고, 분리라는 까다로운 기술적 장벽이 해결되었다.
두 차례의 컬럼 크로마토그래피를 더 거쳐 마침내 균질한 단백질이 나왔고, 치에하노베르는 그것을 ATP 의존 단백질분해 인자-1(APF-1)이라 이름 붙였다. APF-1은 상당히 특이한 성질을 보였다. 열에 안정한데 단백질로 보였다. 분자량은 8.5킬로달톤. 아주 작은 단백질이었다.
헤르슈코와 치에하노베르가 결과를 권위 있는 『Journal of Biological Chemistry』에 투고했을 때, 실험이 민망할 만큼 단순하다는 이유로 거절되었다. 두 사람은 결국 작은 학술지에 발표했다. 그 논문이 고전적 이정표가 될 줄은 그들도 몰랐다.
원서 §5.1.2.2
1장에서 재닛 롤리의 상호전좌 논문이 『NEJM』에서 거절되었고, 오즈월드 에이버리의 DNA 발견이 40회 넘는 지명에도 상을 받지 못했다. 이 책에서 권위 있는 학술지의 거절은 네 번째로 나오는 형식이며, 네 번 다 틀렸다.
그런데 APF-1은 정확히 무엇이었나
1980년 치에하노베르와 폭스체이스 로즈 연구실의 박사후연구원 하나가, 방사표지된 APF-1이 놀랍게도 또 다른 더 큰 단백질에 공유결합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APF-1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로즈의 또 다른 박사후연구원 키스 윌킨슨이 투입되었다.
윌킨슨은 마침 옆 실험실의 박사후연구원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가 선례가 최소한 하나 있다고 알려 주었다. 히스톤 단백질 A24가 유비퀴틴이라는 작은 단백질의 부착으로 아마이드 결합을 통해 공유결합적으로 변형된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 함께 작업한 끝에 윌킨슨과 폭스체이스의 두 동료 박사후연구원은 APF-1이 다름 아닌 유비퀴틴, 그 이미 알려진 작은 단백질임을 확인했다.
4장 §4.1.1.2에서 로드니 포터가 싱크대에 버린 결정을 옆 실험실 결정학자가 알아본 대목이 있었다. 원저자는 거기에 "전문가의 말을 듣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다"라고 적었다. 여기서 같은 일이 한 번 더 일어난다. 이 책에서 옆 실험실은 자주 결정적이다.
죽음의 입맞춤 — 세 효소의 연쇄
1980년대 초 유비퀴틴과 프로테아좀이 단백질 분해에 함께 관여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큰 성취였다. 그러나 UPS가 단백질을 분해하는 상세한 기전을 그려 내는 데는 다시 10년이 걸렸다.
1981년부터 1983년까지 헤르슈코와 동료들은 UPS에 관여하는 세 효소의 집합을 확인했다. 유비퀴틴이 표적 단백질의 라이신 잔기에 아마이드 결합을 통해 공유결합적으로 부착될 수 있음을 발견했고, 이 과정을 유비퀴틴화 또는 유비퀴틴 결합이라 한다.
- E1 — 유비퀴틴 활성화 효소. 유비퀴틴을 활성화한다.
- E2 — 유비퀴틴 결합 단백질. 활성화된 유비퀴틴을 넘겨받는다.
- E3 — 유비퀴틴-단백질 리가아제. 사람에게 700개가 넘는 E3 리가아제가 있으며, 이것이 단백질 분해가 왜 그토록 고도로 특이적인 과정인지를 설명해 준다.
연쇄는 이렇게 진행된다. 먼저 유비퀴틴이 E1에 의해 활성화되어 E2로 옮겨진다. 이어 세포 단백질에 하나, 그리고 여러 개의 유비퀴틴 분자가 공유결합으로 '꼬리표'가 붙는다. 일단 꼬리표가 붙으면 그것은 '죽음의 입맞춤'이 되어, 26S 프로테아좀에 파괴 신호를 보낸다. 이 과정을 촉매하는 것이 E3 리가아제다.
1980년대 후반에는 MIT 알렉산더 바르샤프스키 그룹이 유비퀴틴계의 첫 생물학적 기능을 발견하고 그 특이성의 원천을 해독했다. 헤르슈코와 치에하노베르가 연구한 무세포계와 달리, 살아 있는 세포에서 단백질 분해의 대부분에 유비퀴틴계가 필수적임을 밝힌 것이다.
중요한 기여 때문에 한동안 바르샤프스키는 헤르슈코, 치에하노베르와 함께 '조절된 세포 내 단백질분해 분야의 아버지들'로 묶였다. 세 사람은 래스커상을 비롯한 여러 권위 있는 상을 함께 받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바르샤프스키는 2004년 노벨상을 헤르슈코·치에하노베르와 나누지 못했다. 노벨위원회는 그 무한한 지혜로 세 번째 수상자로 로즈를 골랐다. 1장의 「노벨상 원장」에 한 줄을 더 얹을 만한 대목이다.
원저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적는다. 자원이 제한된 그토록 작은 나라에서 헤르슈코와 치에하노베르가 이토록 독창적이고 뛰어난 실험적 연구를 해냈다는 것은 참으로 주목할 만하다.
프로테아좀이라는 폐기물 처리장
포유류의 26S 프로테아좀은 유비퀴틴 꼬리표가 붙은 단백질을 분해하는 거대한 에너지 의존 세포질 단백질분해효소다. 잘못 접힌 단백질, 손상된 단백질, 필요 없는 단백질을 분해해 세포의 단백질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세포 신호전달(NFkB를 활성화하기 위한 IkB 분해)이나 세포 증식(세포주기 진행을 위한 사이클린과 CDK 억제제의 분해) 같은 과정에도 능동적 역할을 한다. 3장 §3.1.3에서 사이클린이 각 세포주기마다 유비퀴틴-프로테아좀계로 생성되고 분해된다고 한 그 대목이 여기서 설명된다.
26S 프로테아좀을 저해하면 세포 아폽토시스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시장에 세 개의 프로테아좀 억제제가 있으며 모두 다발골수종 치료용이다.
| 약물 | 개발 | 승인 | 비고 |
|---|---|---|---|
| 보르테조밉 Velcade | 밀레니엄(현 다케다) | 2003 | 계열 최초. 그리고 사람에게 승인된 최초의 붕소 함유 의약품이었다. 보르테조밉 이전에는 약에 붕소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도그마였다. |
| 익사조밉 | 밀레니엄/다케다 | 2015 | 보르테조밉의 특허 만료가 다가오자 그것을 대체하기 위한 후속 약물. |
| 카필조밉 | 암젠 · 예일대 크레이그 크루스 | 원서 표기 2021 | 천연물에서 유래한 공유결합 억제제. 이 사람이 다음 절 PROTAC의 개척자다. 승인 연도 표기는 주기 참조. |
3장의 「도그마의 목록」에 한 항목을 더 얹을 수 있다. “약에 붕소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인산화효소는 선택적으로 못 막는다, 공유결합 약물은 반드시 독성이다, 요오드와 히드록사메이트는 구조 경보다 — 그 목록의 일곱 번째다.
5.1.3옛 약, 새 접착제 — 탈리도마이드
유비퀴틴이 촉진하는 단백질 분해의 기전에 대한 새 지식은 몇몇 옛 약의 기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대표적인 것이 탈리도마이드다.
1956년 유럽에서 승인된 탈리도마이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약 중 하나다. 70년 전 40개가 넘는 나라에서 임신부의 입덧을 치료하는 진정제로 널리 처방되었다. 그런데 탈리도마이드는 곧 극심한 최기형성이 있어 대부분 사지 기형인 끔찍한 선천성 결손을 일으킨다는 것이 밝혀졌다.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여성에게서 약 1만 명의 영향받은 아이가 태어났다.
이후 뉴저지의 셀진이 탈리도마이드를 한센병과 다발골수종의 유효한 치료제로 개발해 각각 1998년과 2006년 FDA 승인을 받았다. 물론 가임기 여성 환자는 복용 중 임신을 피해야 한다.
그럼에도 탈리도마이드가 어떻게 아기의 사지 기형과 다른 발달 결손을 일으켰는지의 기전은 2010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해에 그것이 분자접착제 분해제임이 밝혀졌다.
제브라피시와 닭을 동물 모델로 삼아, 도쿄공업대학의 이토 다쿠미와 안도 히데키가 이끄는 일본 과학자 그룹이 2010년 E3 리가아제인 세레블론(CRBN)을 탈리도마이드 결합 단백질로 확인했다. 질량분석 기반 프로테오믹스로, 탈리도마이드가 두 개의 아연 손가락 전사인자를 고도로 특이적으로 분해한다는 것을 밝혔다.
기전은 이렇다. 탈리도마이드는 내인성 CRBN의 고도로 보존된 얕은 트라이-트립토판 주머니에 결합해 삼원 복합체를 형성한다. 이어 새 기질이 된 두 아연 손가락 전사인자가 프로테아좀에 의해 분해된다. 이 기전은 탈리도마이드의 최기형성뿐 아니라 면역조절 활성과 항증식 활성까지 흡족하게 설명한다.
1장에서 피비게르의 벌레가 26년 뒤 폐기되었고, 2장에서 5-FU의 기전이 50년 뒤에 규명되었다. 여기서는 1만 명의 아이를 다치게 한 약의 작동 원리가 54년 만에 밝혀진다. 그리고 그 원리가 밝혀지자 그것은 하나의 신약 양식이 되었다.
셀진은 탈리도마이드를 한센병과 다발골수종 치료제로 개발한 것 외에도 레날리도마이드(레블리미드, 2006 승인)와 포말리도마이드(포말리스트, 2012)를 탈리도마이드의 '미투' 약으로 발견했다. 이 세 약은 지금 면역조절 이미드 약물(IMiD)로 통칭된다. 2012년 셀진은 놀랍지 않게도 인간 CRBN이 레날리도마이드와 포말리도마이드의 면역조절·항증식 활성을 담당하는 직접 표적이기도 함을 발견했다.
BMS는 2019년 셀진을 740억 달러에 사들였고, 지금 종양학 프로그램을 분자접착제 분해제에 집중하고 있다. 돈은 잘 쓰였다. 2023년 레날리도마이드 매출은 110억 달러, 포말리도마이드는 34억 달러였다.
이미 알고 있던 약들이 접착제였다
이 절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앞선 장들의 약이 소급해서 재해석된다는 것이다.
촉매적 작용 기전과 비효소 단백질을 겨눌 수 있는 능력 덕에, 분자접착제가 매개하는 근접 유도 분해는 이제 전에는 약을 만들 수 없다고 여겨진 단백질을 유례없이 치료 표적으로 삼을 수 있게 해 준다. 1장 §1.4.6에서 RAS가 40년간 데스스타 표면에 비유되며 'undruggable'로 불린 그 문제에 대한 또 하나의 답이다. 2025년 현재 17개의 분자접착제가 임상시험 중이다.
§ 5.2 · PROTACs
아령 모양의
분자
Proteolysis targeting chimeras
예일대학의 크레이그 크루스가 PROTAC의 개척자다. PROTAC은 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을 분해하도록 합리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반면 원래의 분자접착제 분해제는 거의 모두 우연으로 발견되었고, 논리적으로 설계하기가 더 어렵다.
크루스는 프로테아좀과 오랜 인연이 있다. 1990년대 말 그의 그룹이 공유결합 프로테아좀 억제제 카필조밉을 발견했다. 카필조밉은 작은 바이오텍 프로테오릭스의 기반이 되었고, 이 회사는 2009년 오닉스에, 오닉스는 다시 2013년 암젠에 인수되었다.
2000년대 초 크루스는 인간 세포의 유비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을 통해 자연적인 단백질 분해 기구를 '납치'하기 위해 PROTAC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PROTAC은 표적 단백질과 E3 리가아제를 서로의 근접으로 끌어와 삼원 복합체를 만든다. 그러면 리가아제가 표적 단백질에 유비퀴틴 분자로 꼬리표를 달고, 그 단백질이 파괴되어야 한다는 신호를 세포의 프로테아좀에 보낸다. 결과는 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의 분해다. 물론 몇 가지 단서가 붙지만, 그저 단백질을 저해하는 것보다 우월할 것으로 여겨진다.
5.2.1골드러시, 그리고 3월의 소식
크루스는 PROTAC을 신약 개발의 새 양식으로 활용하기 위해 2013년 바이오텍 아비나스를 창업했다. 곧 PROTAC이 점점 더 인기를 얻어 '골드러시'로 이어졌다. 노바티스 같은 대형 제약사 외에도 키메라, C4 테라퓨틱스, 뉴릭스 테라퓨틱스, 암피스타 테라퓨틱스를 포함해 십여 개의 바이오텍이 표적 단백질 분해 양식을 다루기 위해 설립되었다. 크루스 자신도 2019년 또 하나의 바이오텍 할다 테라퓨틱스를 세워, 암 치료를 위한 조절 유도 근접 표적 키메라(RIPTAC)를 전문으로 한다.
아비나스의 대표 약물 둘은 벱데제스트란트(ARV-471)와 ARV-110이다. ARV-471은 유방암 치료를 겨눈 에스트로겐 수용체 PROTAC이고, ARV-110은 전립선암을 겨눈 안드로겐 수용체 PROTAC이다. 2장 §2.5.3의 SERD와 §2.5.2의 항안드로겐이 여기서 각각 PROTAC 판본으로 다시 나온다. 둘 다 전임상 동물 모델에서 인상적인 성적을 냈다.
아비나스의 PROTAC은 대형 제약사를 폭풍처럼 휩쓸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머크, 제넨텍, 노바티스, 화이자를 포함한 회사들이 아비나스와 각각 항암제 계약을 맺었는데, 모든 것이 잘 풀리면 4억에서 10억 달러의 가치가 될 계약이었다. 2019년까지 ARV-471과 ARV-110 모두 임상에 들어가 빠르게 진전하며 첫 안전성·약동학 분석을 훌륭한 성적으로 통과했다. 2년 뒤 화이자와 아비나스는 ARV-471을 개발·상업화하기 위해 24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화이자는 이것을 자사의 블록버스터 CDK4/6 억제제 팔보시클립(입랜스)과 결합해 유방암을 치료하기를 바랐다. 3장 §3.1.3에서 승인이 15년 늦어진 그 약이다.
여기 10억 달러, 저기 10억 달러. 그러다 보면 곧 우리는 진짜 돈 이야기를 하게 된다.
원서 §5.2
화이자의 대박 이후 아비나스의 주가는 20달러에서 사상 최고가 108달러로 뛰어올랐고, 직원 450명의 중견 바이오텍 아비나스는 2021년 시가총액 40억 달러가 되었다.
그리고 2025년 3월, 화이자가 ARV-471의 3상 결과 요약을 발표했다. 일반명은 이제 벱데제스트란트다.
2025년 6월 아비나스와 화이자는 ESR1 돌연변이 환자를 적응증으로 벱데제스트란트의 신약허가신청을 FDA에 제출했다. PROTAC으로는 최초의 신약허가신청이다. 이 집단만으로도 세계 최대 매출 29억 달러의 잠재력을 가진 상당한 기회다. 게다가 벱데제스트란트는 경구로 복용할 수 있는 반면 풀베스트란트는 주사로 투여해야 하므로 전자에 이점이 있다. 2장 §2.5.3.3에서 풀베스트란트가 '약물 같지 않아' 월 1회 근육주사를 요구한다고 한 그 문제다.
PROTAC이라는 양식의 운명에 관한 한 그것은 10억 달러짜리 질문이다. 답은 몇 개의 PROTAC이 더 3상을 마친 뒤에야 나올 수 있다. 원저자는 이 절을 닐스 보어의 말로 닫는다.
“예측은 매우 어렵다. 특히 그것이 미래에 관한 것이라면.”
닐스 보어
§ 5.3 · Immunotherapy for Cancer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다
Releasing the brake
전통적인 암 치료는 수술, 방사선, 화학요법으로 요약할 수 있다. 흔히 불경스럽게도 자르고, 태우고, 독을 쓴다고 비유된다. 이에 비해 현대의 암 면역치료는 이 세 가지 옛 접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면역치료는 5억 년에 걸쳐 진화해 온 우리 자신의 면역계를 납치해 풀어놓아 암세포를 죽이게 한다. 다만 면역계 혼자서는 그 일을 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타고난 면역계가 일을 마치도록 약간의 힘을, 말하자면 살짝 등을 떠밀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5.3.1성 안토니오의 불 — 콜리의 독소
원시 의학에서는 열이 이따금 정신적으로 '미친' 사람에게 짧은 유예를 준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래서 지난 세기 초 일부 정신과 의사가 환자에게 인위적으로 말라리아를 유발해 조현병을 치료하는 실험을 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같은 맥락에서, 아주 가끔 암 환자가 한바탕 열을 앓고 나서 종양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는 일화적 기록이 있었다. 아무도 그 일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다가 1880년대 무렵 뉴욕의 외과의사 윌리엄 B. 콜리가 열을 인위적으로 유발해 암을 치료한다는 발상의 타당성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암에 실행 가능한 치료가 없다는 사실에 환멸을 느낀 콜리는 의무기록을 파고들다가, 한 암 환자가 단독(丹毒)이라는 세균성 피부 감염에 걸린 뒤 종양이 퇴축한 것을 발견했다. 단독은 '성 안토니오의 불'이라 불린다.
콜리는 처음에 암 환자를 성 안토니오의 불에 의도적으로 감염시키려 했다. 몇몇 환자에게는 효과가 있었지만 열이 안정적으로 유발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세균을 열로 죽여 섞은 콜리의 독소를 발명하기에 이르렀다. 1893년까지 10명의 환자를 치료해 고무적인 결과를 얻었고, 1916년까지 80건을 더 기록했으며 15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미국 최대의 제약사였던 파크 데이비스가 1899년부터 콜리의 독소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30년간, 주로 수술이 불가능한 뼈와 연부조직 육종에 쓰였다. 콜리의 사멸 세균 백신은 최초의 암 백신 중 하나로 여겨진다. 3장 §3.4.1에서 CI-1040과 PD-0325901을 만든 그 파크데이비스가 이 책에 세 번째로 등장한다.
콜리는 면역계에 대한 현대적 이해가 있기 전의 면역치료 개척자로 여겨진다.
5.3.2버넷과 밀러 — 흉선이라는 무용지물
이론상 우리는 몸의 타고난 면역계를 이용해, 바이러스와 세균을 죽이듯 암세포를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원래의 면역계는 그만큼 강력하지 않다. 현실에서 암이 대부분의 싸움에서 이겨 왔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기존 면역계를 납치하고 강화해 암세포를 죽이도록 압도할 수 있다. 여기서 면역종양학이 등장한다.
프랭크 맥팔레인 버넷
항체 생산과 그 작용 기전에 관한 이론은 길고 풍부한 역사를 갖는다. 4장에 나온 에를리히의 곁사슬/수용체 이론이 그 많은 것 중 첫 전조였다. 1940년대에는 라이너스 폴링이 획기적인 헤모글로빈 연구에서 출발해 항체가 어떻게 특이성을 얻는지에 대한 추측을 내놓았으나, 그의 이가(二價) 항체 이론은 훗날 다루기 어려운 것으로 판명되었다. 1955년 덴마크 면역학자 닐스 예르네가 항체 형성의 자연선택 이론을 제시했다. 4장 §4.1.6에서 하이브리도마의 세 번째 노벨상 수상자로 나온 그 예르네다. 예르네의 이론은 버넷에게 클론 선택 이론이라는 패러다임을 제안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맥' 버넷은 1899년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에서 태어났다. 멜버른대학에서 1924년 의학박사를 받고 월터앤드일라이자홀 연구소에서 과학 경력을 시작해, 영국과 미국에 잠시 머문 것을 빼면 대부분의 경력을 그곳에서 보냈다. 대체로 영국에서 일한 동시대의 위대한 오스트레일리아인 하워드 플로리나 존 콘포스와 달리, 버넷의 성취는 고국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이루어졌다. 2장 §2.5.1의 그 플로리다.
버넷은 바이러스학자로 출발했다. 병아리 배아의 융모요막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키우는 기법을 개발했는데, 오늘날에도 독감 백신은 버넷의 발명을 이용해 유정란의 요막강에서 생산된다. 바이러스학만으로도 그의 명성은 노벨상 후보 지명을 여럿 얻어 냈다.
버넷의 아내 린다는 아이들이 저녁 식사 뒤 이런 꾸지람을 자주 들었다고 회고했다.
“아버지를 방해하지 마라. 아버지는 노벨상을 위해 일하고 계신다!”
그리고 버넷은 여러 해 동안 매년 최종 후보에 오른 끝에 1960년 실제로 노벨상을 받았다.
1940년대에 버넷은 관심을 바이러스학에서 면역학으로 돌려, 항체 생산에 대한 생물학적으로 그럴듯한 설명을 찾았다. 그렇게 제안한 것이 획득 면역관용 이론이며 이것으로 1960년 노벨상을 받았다.
주목할 만하게도 버넷은 이 이론에 대체로 다른 사람들의 실험 관찰을 빌려 도달했다. 예컨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수혈하면 특이적이고 흔히 심각한 수혈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반대로 쌍둥이는 상대 쌍둥이에게서 대량의 부적합 세포를 수혈받고도 살아남고 심지어 번성했다. 이 실험들은 관용이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된 것이 아니라 획득되는 것임을 보여 주었다.
1949년 프랭크 페너와 함께 낸 『항체의 생산』 제2판에서 그는 우리 면역계가 자기관용이라 불리는 초기 선택 과정을 통해 어떻게 숙주와 반응하지 않는지에 대한 개념을 제시했다. 이 이론은 면역학 분야를 혁명적으로 바꾼 지적 틀을 제공했다. 인위적으로 획득된 관용의 가능성은 몇 해 뒤 피터 메더워와 동료들이 확인했다. 1960년 노벨상은 획득 면역관용 이론으로 버넷에게, 그 실험적 증명으로 메더워에게 주어졌다.
1970년 버넷은 종양세포가 면역반응을 유도할 수 있음을 보이면서, 종양이 이 면역 압력에서 탈출할 수도 있음을 함께 보였다. 인간의 면역반응에 관한 한 흉선에서 나온 T세포가 핵심 선수다. 다만 흉선의 역할을 '주(主)선(gland)'으로서 면역반응을 조절한다고 궁극적으로 이해하기까지는 또 다른 오스트레일리아 면역학자 자크 밀러의 1961년 작업이 필요했다.
인간 장기의 기능을 밝힌 마지막 사람
자크 밀러는 1931년 프랑스 니스에서 프랑스인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밀러는 원래 프랑스 성 뫼니에(Meunier)를 영어식으로 옮긴 것이다. 2차 대전이 시작될 무렵 그와 가족은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 살았다. 아버지가 20년간 프랑스-중국 은행의 지배인이었기 때문이다. 1941년 일본군이 도착하기 직전 상하이를 떠나 오스트레일리아로 갔다. 3장의 에드먼드 피셔가 1920년 상하이 영사관 구역에서 태어난 대목과 나란히 읽을 만하다.
밀러는 예수회 학교를 거쳐 시드니 의대에 진학해 1957년 의학 학위를 받았다.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최근 발견된 백혈병 바이러스를 연구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밀러 이전에 생후 한 달 된 마우스에서 흉선을 제거하면 마우스 백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져 있었다. 통상 마우스 백혈병은 화학적으로 유도하거나 X선 방사선으로 일으킬 수 있었지만, 밀러는 백혈병 유발 바이러스로 비슷한 실험을 하기로 했다. 그는 우선 갓 태어난 마우스에서 흉선을 외과적으로 제거했다. 손톱보다 작은 것이었다. 이후 갓 태어난 마우스에 바이러스를 주사했다. 성체 마우스에 주사하면 백혈병에 걸리지 않고 면역 과정에도 눈에 띄는 효과가 없었다.
밀러의 실험은 흉선이 특정 유형의 면역세포, 훗날 T세포로 알려질 세포의 발달에 필수적임을 입증했다. 이 발견은 적응면역과 그에 관여하는 세포 구성요소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1961년 『Nature』에 실린 결과와 후속 논문들은 비판의 폭풍을 만났다. 데이터에 대한 비판은 아니었다. 그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 비판은 그의 해석에 관한 것이었다. 가장 가혹한 비판은 그의 실험 환경에 집중되었다. 그곳은 원래 말 마구간이었다. 비평가들은 비위생적 환경이 밀러의 결과를 결정적이지 못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응해 밀러는 미국 NIH로 가서 무균 실험실에서 실험을 반복했고 같은 결과를 얻었다.
밀러는 이어 관심을 마우스 백혈병의 발생에서 흉선의 기능으로 옮겨, 흉선이 몸의 면역계 발달에 필수적인 선수임을 입증했다. 밀러 이전에는 모두가 흉선을 쓸모없는 장기라고 말했다. 죽어 가는 림프구의 무덤이라는 것이었다. 피터 메더워는 흉선을 큰 의미 없는 진화의 사고로 여겼다.
그 과정에서 밀러는 미래의 어떤 과학자도 되풀이하기 어려울 일을 해냈다. 그는 인간 장기의 기능을 밝혀낸 마지막 사람이 되었다.
원서 §5.3.2.2
'T세포'라는 용어의 기원도 꽤 흥미롭다. 오스트레일리아면역학회의 비공식 모임에서 흉선(thymus)에서 왔으므로 T세포라는 약칭이 제안되었다. 밀러에게는 이것이 특히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는 'thymus'라는 단어를 발음하지 못해 '치무스(cymus)'라고 소리 냈기 때문이다.
반면 B세포는 실제로는 새의 기관인 파브리키우스낭(bursa of Fabricius)을 뜻하는데, 정작 B세포는 골수(bone marrow)에서 분비된다. 그러니 조금 혼란스러웠다. 4장 §4.1.1에서 이미 나온 그 혼란이다.
모두가 T세포와 B세포라는 이름의 열렬한 팬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미시간 브룩로지의 세미나에서 밀러는 동료 오스트레일리아 면역학자 베드 모리스에게 도전을 받았는데, 그는 B와 T가 'bullshit'이라는 단어의 첫 글자와 끝 글자라고 비꼬았다.
2009년에는 솔크 연구소 공동 창립자 멜빈 콘과 신랄한 공개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콘은 밀러의 팀을 두고 “…그렇다면 그들 중 누구도 어떤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라고 했다.
1966년 이래 밀러의 직업적 삶은 멜버른의 월터앤드일라이자홀 의학연구소, 곧 버넷의 옛 근거지에서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는 림프구 집단의 동역학과 인간 면역반응 기전에 관한 선구적 연구를 수행했다. 1967년 T세포의 존재와 면역에서의 결정적 역할, 1968년 흉선에서의 T세포 생산과 항체 생산에서 B세포의 역할이라는 심원한 발견이 이어졌다. T세포는 적응면역의 결정적 선수이지만 혼자 일하지 않는다. T세포와 B세포가 함께 작동해야 면역계가 온전한 잠재력을 발휘한다.
밀러의 흉선 기능 발견에서, T세포와 B세포가 단일클론항체를 만드는 세포로 그리고 암 면역치료의 살상 세포로 쓰이기까지 거의 60년이 걸렸다.
밀러의 발견은 수십 년간 그를 노벨상 후보 지명의 단골로 만들었다. 그러나 2025년 아흔넷이 되도록 그는 아직 받지 못했다. 그는 동료 오스트레일리아인 버넷이 1960년 자기 노벨상을 받은 뒤에도 자기 이름을 노벨상에 올려 주지 않은 것을 씁쓸해했다. 그럼에도 아흔 살에 그는 에모리대학의 맥스 D. 쿠퍼와 함께 2019년 래스커상을 받았다. 적응면역계의 구획화를 인정받은 것이 생애에서 가장 신나는 시간 중 하나로 남아 있다고 그는 말했다.
원저자는 여기에 한 줄을 덧붙인다. 그는 60년 전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는 꿈을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예컨대 페이턴 라우스는 1911년의 발견으로 55년 뒤인 1966년에 영예를 얻었다. 1장 §1.3의 그 라우스다.
5.3.3앨리슨과 브레이크
T세포는 우리 면역계의 일부로서 적절한 상황에서 바이러스와 암세포를 죽일 수 있다.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제임스 P. 앨리슨과 혼조 다스쿠에게 공동 수여되었다. 수동적 치료 전략과 대비되는, 종양 세포에 대한 면역반응을 강화하는 전략을 개척한 독립적 연구에 대한 것이었다. 두 사람의 발견이 T세포의 브레이크를 풀어 암세포를 죽이는 힘을 해방하는 관문 억제제로 이어졌다.
짐 앨리슨은 초기 경력의 상당 기간 자기 연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1948년 텍사스 남부의 작은 도시 앨리스에서 태어난 앨리슨은 앨리스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그 학교는 종교계의 영향으로 생물 수업에서 진화를 가르치지 않았다. 원저자는 여기에 한 줄을 붙인다. 이 특정한 점에 관한 한 오늘날에도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텍사스대학 오스틴에서 1969년 미생물학 학사, 1973년 생명과학 박사를 받았다.
스크립스 연구소에서 잠시 박사후연구를 한 뒤 텍사스로 돌아와 1974년부터 1985년까지 명망 있는 MD 앤더슨 암센터에서 일했다. 이후 거의 30년간 전국을 옮겨 다니다 2012년 MD 앤더슨으로 돌아왔다. 그 길에서 그는 몇 가지 중요한 발견을 했다. T세포가 외래 항원을 인식하는 방식과 T세포 수용체의 조절을 밝히는 데 기여한 것이 그렇다.
돌아보면 놀랍게도, 앨리슨의 면역치료 돌파 논문 하나에 대해 어느 심사자는 학술지에 거절을 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면역치료가 쓰레기라는 건 우리 모두 알잖아요. 한 번도 통한 적이 없어요.”
원서 §5.3.3
앨리슨의 역사적 유산을 못 박은 것은 그의 그룹이 발표한 『Science』 논문이었다. 마우스에서 얻은 세포독성 T림프구 항원-4(CTLA-4) 단일클론항체가 T세포를 활성화해 흑색종 세포를 죽이도록 지시할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 그들의 단일클론항체는 CTLA-4가 수지상세포의 B7 리간드에 결합하는 것을 막아, 조절 T세포(Treg)가 종양 세포를 죽이는 능력을 회복하게 했다.
CTLA-4는 1987년 프랑스 마르세유의 피에르 골스타인과 동료들이 처음 확인한 면역관문이다. CD28 수용체 계열의 구성원으로, 통상적 T세포에서는 항원 활성화에 의해 세포 표면에 유도되고 Treg 세포에서는 항상 발현된다. CTLA-4가 자가활성 T세포를 잠가 두는 관문이므로, 앨리슨의 접근은 지금 관문 억제라 불린다.
흥미롭게도 앨리슨은 블루스 하모니카를 즐기며 「더 체크포인츠(The Checkpoints)」라는 밴드에서 연주한다. 다른 면역학자와 종양학자들이 함께한다.
1장에서 야마기와가 하이쿠를 남겼고 3장에서 에드먼드 피셔가 직업 음악가를 진지하게 고려할 만큼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 이 책에서 발견자들은 자주 다른 재능을 하나씩 갖고 있다.
그리고 앨리슨에게 암은 개인적인 일이다. 그는 어머니와 형제를 암으로 잃었다. 자신도 2016년 초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다. 2장 §2.5와 3장 §3.2.5에서 다룬 그 병이다.
당시 면역치료 분야가 성숙하지 않았던 탓에 어떤 대형 제약사도 앨리슨의 CTLA-4를 다루려 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의 단일클론항체는 뉴저지 프린스턴의 작은 바이오텍 메다렉스의 관심을 끌었다. 메다렉스는 당시 앨리슨이 일하던 UC 버클리로부터 이 약의 권리를 라이선스했다. 메다렉스가 앨리슨의 뮤린 항체를 완전 인간화했고, 그것이 훗날 이필리무맙이 된다. 4장 §4.2.3의 인간화 사다리가 여기서 다시 쓰인다.
임상은 2000년 시작되었다.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가 힘을 보탰고 결국 2009년 메다렉스를 24억 달러에 인수했다. 2011년 승인된 이필리무맙(여보이)이 시장에 나온 최초의 면역관문 억제제였다. 2022년에는 아스트라제네카의 두 번째 항CTLA-4 단일클론항체 트레멜리무맙(임주도)이 병용요법의 일부로 FDA 승인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이필리무맙으로 CTLA-4를 저해하는 것은 종양에 대한 면역반응을 성공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암 치료에 패러다임 전환을 일으켰다. 직교적 접근으로서 관문 면역치료는 통상의 화학요법에 잘 반응하지 않던 흑색종 같은 종양에서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어떤 면역치료로든 이득을 볼 것으로 기대되는 환자는 12명 중 한 명뿐이다. 앨리슨과 그의 팀은 그 적중률을 올리려 열심히 일하고 있다.
원저자는 여기에 최근 소식을 하나 덧붙인다. 2025년 노벨상은 조절 T세포(Treg)에 관한 연구를 이끈 메리 브런코, 프레드 램스델, 사카구치 시몬에게 돌아갔다. 이 대목은 최근 사건이므로 원서 표기를 그대로 옮긴다.
5.3.4혼조와 PD-1 — 교토가 살아남은 이유
BMS와 메다렉스가 최초의 관문 억제제 이필리무맙(여보이)이라는 영예를 자랑하는 사이, 그것은 곧 또 다른 계열의 관문 억제제에 가려졌다. 프로그램된 세포사멸-1(PD-1) 억제제다. 교토대학의 일본 과학자 혼조 다스쿠가 1992년 PD-1 유전자를 처음 발견했다.
혼조는 1942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교토는 1945년 원자폭탄의 표적에서 제외된 일본의 옛 수도다. 당시 전쟁장관 헨리 스팀슨이 여러 이유 가운데 신혼여행의 좋은 기억이 있다는 이유로 교토를 표적 목록에서 뺐다. 3장 §3.2.1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생존자에게 CML 발생률이 이례적으로 높았다는 대목과 나란히 놓고 읽을 만하다. 혼조는 교토대학에서 의학 학위와 박사 학위를 모두 받고 그곳에서 일했다.
1989년 영국의 한 팀이 흉선에 있는 자가반응성이며 잠재적으로 해로운 미성숙 T세포가 프로그램된 세포사멸(아폽토시스)을 겪는다는 것을 보였다. 이 발표가 교토의 혼조 그룹으로 하여금 면역계가 촉발하는 프로그램된 세포사멸에 관여하는 분자 기전을 파고들게 했다. 1992년 그들은 PD-1 유전자를 확인하고 암 치료를 위해 면역반응을 강화하는 데 그것이 중요함을 직관했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PD-1 유전자의 단백질 산물이 프로그램된 세포사멸의 유도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의미에서 PD-1은 잘못된 이름이다. PD-1은 실은 T세포 면역반응의 음성 조절자, 곧 브레이크이자 관문이다. 4장에서 유비퀴틴이 잘못된 이름이었듯 여기서도 이름이 먼저 붙고 정체가 나중에 밝혀졌다.
메다렉스가 또 한 번, PD-1을 겨누는 항체를 개발한 최초의 조직 중 하나였다. 메다렉스는 혼조를 자문으로 둔 일본 회사 오노와 협력했다. 혼조의 전문성으로 메다렉스와 오노는 PD-1에 대한 인간화 단일클론항체를 빠르게 얻어 분리했다. 임상은 2006년 시작되었고 항PD-1 단일클론항체 니볼루맙(옵디보)이 2014년 승인되었다.
키트루다 — 늦게 출발해 먼저 도착하다
메다렉스가 니볼루맙의 임상을 진행하는 동안 세상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쉐링플라우가 2007년 네덜란드 바이오텍 오르가논을 140억 달러에 사들였다. 2년 뒤 머크가 다시 쉐링플라우를 410억 달러에 인수했다. 오르가논에서 나온 두 자산이 열매를 맺게 된다.
하나는 3장에서 광범위하게 다룬 비가역적 공유결합 BTK 억제제 아칼라브루티닙(칼퀀스)이다. 다른 하나가 펨브롤리주맙이다. 3장 부록 2에서 "같은 거래에 아칼라브루티닙이 딸려 있었고 머크는 그것을 1,000달러에 내주었다"고 적은 그 거래다. 5장이 그 거래의 나머지 절반을 설명한다.
머크는 처음에 오르가논의 PD-1 억제제 펨브롤리주맙에 미지근했다. 이 항PD-1 단일클론항체는 2005년 문을 연 오르가논의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지부에서 안드레아스 판 엘사스, 그레고리 카번과 동료들이 발견했다. 머크는 BMS가 자사의 PD-1 억제제 니볼루맙으로 앞서 나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결국 펨브롤리주맙에 매료되었다.
BMS를 따라잡기 위해 머크는 서둘러 1상을 개시했고 눈부신 결과를 보았다. 환자의 3분의 2가 반응을 보였다. 완전 반응부터 부분 반응, 안정 병변까지 걸쳐 있었다. 이 결과가 머크 경영진을 흔들어 펨브롤리주맙에 노력을 배가하게 했다.
그리고 여기서 이 책의 핵심 주제 하나가 다시 나온다. 머크의 신약 개발 과학자들은 현명하게도 이후 임상을 바이오마커로 안내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바이오마커 전략을 성공적으로 채용한 최초의 임상 중 하나였다. 당시로서는 논쟁적이었지만 머크는 PD-L1을 환자 선별 바이오마커로 골랐다.
암세포를 포함한 세포 표면에서 발견되는 PD-L1은 T세포의 수용체 PD-1에 결합한다. PD-1에 결합함으로써 PD-L1은 종양 세포를 Treg 세포가 되도록 강제한다. 예비 바이오마커를 확인한 것이 환자 배정을 결정하고 펨브롤리주맙의 적용을 최적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PD-L1과 높은 마이크로새틀라이트 불안정성(MSI-H) 같은 특정 바이오마커로 환자를 선별한 것이 펨브롤리주맙의 성공을 크게 끌어올렸다. 1장 §1.6.2에서 MSI가 DNA 기반 바이오마커로, 2장 §2.6.2에서 PD-L1이 면역학적 바이오마커로 나왔고, 4장 §4.2.4에서 HER-2가 최초의 바이오마커 주도 개발이었다.
BMS의 니볼루맙보다 늦게 시작했음에도 펨브롤리주맙(키트루다)은 '혁신치료제' 지위를 받아 2014년 9월, 니볼루맙보다 몇 달 앞서 승인되었다. 2017년 FDA는 키트루다를 최초의 조직 불문(tissue-agnostic) 암 치료제로 지정했다. 어느 장기에 생긴 암인지가 아니라 어떤 분자적 특징을 갖는지로 처방하는 시대가 여기서 시작한다. 키트루다는 2024년 295억 달러가 넘는 매출로 가장 수익성 높은 약이었다.
2015년 미국의 제39대 대통령 지미 카터가 아흔한 살에 전이성 흑색종 진단을 받았다. 뇌로 전이된 상태였다. 그는 머크의 키트루다로 치료받고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카터는 이후 아홉 해를 더 살아 2024년 백 살이 되었다.
목숨을 구한 것 외에 키트루다는 머크에 횡재를 안겼다. 2018년부터 2025년까지 최다 판매 약이었다. 그런데 특허가 2028년 만료된다. 머크는 2025년 특허 절벽에 대비해 직원 6,000명, 전체 인력의 약 8%를 감원하고 있다.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 사노피, 화이자도 비슷한 감원을 발표한 뒤다.
4장 §4.4에서 생물학적 제제의 바이오시밀러는 저분자의 제네릭만큼 가파른 가격 절벽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6,000명이다. 한 약에 얼마나 많은 것이 얹혀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숫자다.
오늘 미국 시장에 약 일곱 개의 항PD-1 단일클론항체가 있고 중국에도 몇 개가 있다. 2025년 일라이릴리가 중국의 항PD-1 약을 미국으로 들여오려 했으나 FDA의 저항을 만났다. 임상이 전적으로 중국에서만 수행되었기 때문이다. FDA는 승인에 앞서 더 다양한 환자 집단을 요구했다. 4장 §4.5.3의 '중국이라는 변수'가 여기서 규제의 문턱을 만난다.
PD-L1 쪽에서는 미네소타 로체스터 메이오 클리닉의 첸 리핑이 1999년 마우스에서 또 다른 T세포 자극 분자 B7-H1의 발견을 보고했고, 이것이 훗날 PD-L1로 개명되었다. 교토의 혼조 그룹이 같은 달에 같은 발견을 했다. 2002년까지 첸의 그룹은 악성 폐암·대장암·흑색종 세포의 표면에 PD-L1이 존재함을 밝혔다. 이것이 PD-L1을 면역치료의 또 하나의 주요 표적으로 만들었다. 연구의 홍수 끝에 세 개의 항PD-L1 단일클론항체가 승인되었다. 제넨텍의 아테졸리주맙(티쎈트릭, 2016), 아스트라제네카의 더발루맙(임핀지, 2017), EMD 세로노의 아벨루맙(바벤시오, 2017)이다.
항CTLA-4 약에서 본 것과 비슷하게, 항PD-1/PD-L1 단독요법에 반응하는 환자의 비율은 낮을 수 있다. 다음 큰 과제는 대부분의 환자가 PD-1/PD-L1 차단에 반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선천적·획득 저항성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일이다.
하나가 좋으면 둘은 더 좋을 것이다. 이중특이 항체가 번성했고 그중 다수가 두 탄두의 팔 중 하나로 PD-1/PD-L1 억제제를 갖는다. PD-1/PD-L1 성분을 가진 삼중특이 항체까지 탐색되고 있다. 4장 §4.4의 이중특이 항체 대목이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 5.4 · Cell and Gene Therapy
살아 있는 약
A living drug
세포·유전자치료(CGT)가 종양학에서 유행어가 되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이 암과의 싸움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다.
관문 억제제는 '무기력한' T세포를 활성 T세포로 바꾸어 암세포를 공격하게 한다. T세포를 활성화하는 또 다른 방법은 T세포 자체를 만지작거려 암세포를 직접 겨누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T세포를 암세포로 돌려세우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CAR)가 제작되어 왔다. CAR는 항체 유래 표적화 조각과 T세포를 활성화할 수 있는 신호전달 도메인을 결합한 재조합 융합 단백질이다.
5.4.1에샤르 — 안식년에 떠오른 착상
이스라엘 면역학자 젤리그 에샤르가 CAR T 치료의 아버지다. 환자의 면역세포를 유전적으로 변형해 암세포를 겨누고 파괴하게 하는 치료다.
에샤르는 미국에서 보낸 안식년 동안 CAR T의 착상을 떠올렸다. 역사상 몇몇 획기적 착상이 안식년에 잉태되었다. 장마리 렌은 안식년 중 구조 특이적 상호작용을 갖는 화학계를 개발한다는 착상을 얻어 1987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쿠르트 뷔트리히도 생체 거대분자의 3차원 구조를 결정하는 NMR 분광 기법을 안식년에 개발했다.
에샤르는 1941년 텔아비브 교외 페타티크바에서 태어났다. 페타티크바는 세계 최대의 제네릭 제약사 중 하나인 테바의 발상지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받은 뒤 레호보트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에서 면역 조절에 관한 박사 연구를 시작했다. 3장 §3.2.3에서 알렉산더 레비츠키가 티르포스틴을 보고한 그 연구소이며, 노벨상 수상자 세 명을 배출한 이스라엘 최고의 대학이다.
에샤르는 1976년 하버드의 바루흐 베나세라프 그룹에서 박사후연구를 했다. 베네수엘라계 미국인 면역학자인 베나세라프는 주조직적합복합체(MHC) 유전자의 발견으로 1980년 노벨상을 받게 된다. 면역계가 자기와 비자기를 구분하는 데 중요한 세포 표면 단백질 분자를 암호화하는 유전자다. 하버드에서의 작업 뒤 그는 바젤 면역학연구소에서 발명자 게오르게스 쾰러에게서 직접 새로 만들어진 하이브리도마 기법을 몇 달간 배웠다. 4장 §4.1.5에서 지하 배양실에서 아내를 껴안고 뛰던 그 쾰러다.
1982년 모교인 바이츠만 연구소에 교수로 합류한 에샤르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 T세포의 유전공학에 매달렸다. 1980년대 중반 스탠퍼드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중 단일클론항체 기법을 이용해 T세포를 인위적으로 조작한다는 착상을 떠올렸다.
바이츠만으로 돌아온 에샤르는 대학원생 기데온 그로스와 함께 그 착상을 실험실에서 현실로 만들었다. 쾰러의 단일클론항체 기법을 이용해 두 사람은 CD3-제타라는 T세포 활성화 도메인을 T세포 내부에 설계해 인위적으로 이식했고, 최초의 융합 T세포 수용체를 만들어 냈다. 그 결과물인 키메라 항원 수용체 T(CAR T) 세포는 세포 표면의 단일클론항체와 융합되어, 종양 세포의 CD19에 특이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 종양 세포가 주로 발현하는 항원을 특이적으로 겨누도록 재프로그램된 T세포이므로, 실험실에서 암세포를 죽이는 것이 확인되었다. NCI의 저 유명한 스티븐 로젠버그 실험실에서 보낸 또 한 번의 안식년이 몇 가지 기술적 장벽을 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89년 처음 보고되며 CAR T 세포 치료가 태어났다.
돌파를 자산화하기 위해 에샤르는 2013년 특허 권리를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의 바이오텍 카이트 파마에 팔았다. 바이츠만 연구소를 졸업한 이스라엘 과학자가 세운 회사다. CAR T 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하자 카이트는 사람 대상 임상을 시작했다.
카이트의 CAR T 치료 악시캅타젠 실로류셀(예스카타)은 2017년 10월 B세포 악성종양 치료로 FDA 승인을 받았다. 치료 한 번에 373,000달러라는 가격표가 붙었다. 그 두 달 전 8월 카이트 파마는 길리어드에 120억 달러에 팔렸다.
이사이자 자문이었던 에샤르의 스톡옵션은 7,200만 달러의 가치가 있었다. 그의 제자 기데온 그로스는 특허권의 일부로 이미 150만 달러의 로열티를 받았음에도 이스라엘 법원에 1,100만 달러를 요구하는 가처분을 냈다. 전처도 발명이 혼인 중에 이루어졌다는 이유로 횡재의 일부를 요구하며 소송에 뛰어들었다.
원저자는 이렇게 닫는다. 오늘 에샤르는 그 모든 소송과 반소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2025년 7월 여든넷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노벨상은 사후에 수여되지 않으므로 바이츠만 연구소는 네 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낼 기회를 잃었다.
CAR T 세포 치료는 제품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약'이다. 먼저 환자의 혈액을 뽑아 백혈구에서 T세포를 분리한다. 에샤르의 CAR를 이용해 정상 T세포를 CAR T 세포로 형질전환하고 — 이 과정에 두 달이 걸릴 수 있다 — 다시 환자에게 주입한다. 그러면 CAR T 세포가 B세포의 CD19 도메인에 결합해, 만성 림프성 백혈병(CLL)이나 급성 림프성 백혈병(ALL) 같은 백혈병의 종양 세포를 죽인다.
5.4.2카를 준 — 먼저 도착한 사람
착상을 먼저 떠올린 개척자라고 해서 자기 약이 먼저 승인된다는 보장은 없다. PD-1 억제제에서 이미 본 대로다. 카이트의 예스카타는 두 번째 승인에 그쳤다. 최초로 승인된 CAR T 세포 치료는 킴리아였고, 노바티스가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카를 H. 준이 개발한 기술로 이루어 냈다.
1953년생인 준은 아나폴리스의 미국 해군사관학교에서 공부했다. 1980년대 초 국립해군의료센터에서 HIV/에이즈 환자를 치료하면서, 에이즈 환자에게서 T세포를 얻어 암을 치료한다는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HIV는 T세포를 감염시켜 무용지물로 만드는 데 파괴적으로 효과적인 바이러스다. 1996년 해군 복무를 마친 뒤 준은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독립 연구를 시작해, 불활성화한 HIV의 도움으로 T세포를 자극하는 일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준의 CAR T 세포 구축은 에샤르가 발명한 것과 유사하다. 인위적으로 조작한 CAR 유전자로서의 CAR 벡터 구축물은 세 개의 유전자로 지어진다. 이 유전 구축물은 이어 죽은 HIV에 이식되어 귀중한 바이러스 벡터를 제공하는데, 이것은 정상 T세포의 핵으로 침투하는 경향이 매우 높다. 이제 익숙한 중심 도그마에 따라 DNA가 핵에서 mRNA로 전사되고, 그것이 CAR라는 형태의 단백질로 번역된다.
사람을 무력화하는 바이러스를 죽여서, 사람을 살리는 유전자의 운반체로 쓴다. 4장 §4.7에서 종양용해바이러스를 두고 '야누스의 얼굴'이라 한 그 논리가 여기서 가장 극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다만 악마는 세부에 있다. CAR 벡터 구축물의 세 유전자는 흔히 다르다. 준의 바이러스 벡터에서 하나는 단일클론항체의 단일사슬 가변 조각(scFv)이고, 나머지 둘은 공자극 분자인 4-1BB(그리고/또는 CD28)와 CD3-제타 신호 도메인이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에이브럼슨 암센터의 중개연구 책임자로서 준은 팀을 이끌어 조작된 CAR 유전자와 바이러스 벡터를 완성해 갔다. 2003년 준의 팀은 멤피스의 세인트주드 아동병원과 물질이전계약(MTA)을 맺었다. 세인트주드는 항CD19-BB-제타 키메라 T세포 수용체 구축물과 관련 유전자 서열을 준의 팀에 제공했다. 2007년의 두 번째 MTA로 준은 그 구축물을 임상에 쓸 수 있게 되었다.
2011년 준의 그룹은 진행성 CLL을 앓는 환자 세 명에서 CAR T 세포의 임상 활성을 처음 보고했다. 환자 셋의 결과만 담은 이 보고는 논쟁 없이 지나가지 않았다. NCI의 스티븐 로젠버그가 일부 결론을 비판하는 신랄한 서한을 썼다. 그럼에도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이 돌파 연구는 명성뿐 아니라, 당시 자금난에 시달리던 팀에 준의 이름으로 700만 달러가 넘는 NIH 연구비를 포함한 넉넉한 자금이라는 부(富)를 함께 가져왔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은 CAR T 기술로 거대 제약사 노바티스와 상업적 협업에도 들어갔다. 훗날 티사젠렉류셀이라 불리게 될 기술이다.
2012년에는 소송도 왔다. 세인트주드는 펜실베이니아대학이 세인트주드 미국 특허가 다루는 물질을 부당하게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시애틀의 스타트업 주노 테라퓨틱스가 출범하면서 그 특허를 라이선스하기로 합의한 터였다.
이 법적 사건은 2015년, 노바티스가 1,250만 달러를 지불하고 향후 지급금의 일부를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세인트주드와 주노로 옮기는 것으로, 거의 3년에 걸친 특허 소유권 분쟁이 마무리되었다.
준과 공저자들은 논문을 수정해, 실제 DNA가 세인트주드 아동연구병원에서 일한 다리오 캄파나와 이마이 지하야에 의해 “설계되고, 개발되고, 제공되었다”는 감사의 말을 “누락했다”고 밝혔다.
2014년 FDA는 CAR를 '혁신치료제'로 지정해 이 분야의 과학적·임상적 진전을 부각했다. 노바티스의 CAR T 세포 치료 티사젠렉류셀(킴리아)이 2017년 8월 FDA 승인을 받아, 카이트/길리어드의 예스카타보다 6주 앞서 최초의 승인 CAR T 세포 치료가 되었다. 마이클 킨치는 『시작의 끝』이라는 책에서 준과 펜실베이니아대학과 킴리아를 둘러싼, 당시 부통령 조 바이든이 '암 정치'라 부른 그 드라마를 생생히 묘사했다.
특집 · Two children
에밀리 화이트헤드가 T세포 치료가 거둔 승리의 얼굴이라면, 제시 겔싱어의 죽음은 유전자치료가 어긋났을 때의 위험을 알리는 경고다.
원저자가 §5.4.2.3의 첫 문장에서 두 아이를 나란히 세운다. 이 장에서 가장 무거운 대목이며, 이 책 전체에서 사람의 이름이 가장 크게 남는 자리다.
에밀리 화이트헤드 — 22일
준의 티사젠렉류셀 1상에서 에밀리 화이트헤드는 일곱 번째 ALL 환자이자 첫 소아 환자였다. 앞선 성인 여섯 명의 결과는 반반으로 갈렸다. 셋은 들었고 셋은 듣지 않았다. 따라서 화이트헤드의 결과가 저울을 기울일 수 있었다.
2010년 다섯 살에 ALL 진단을 받았다. ALL 환자의 85%가 화학요법에 잘 반응해 완화에 이르지만 에밀리는 유감스럽게도 그중 하나가 아니었다. FDA가 CAR T 치료에 청신호를 켰을 때 그는 열 살이었다. 선택지가 떨어져 가고 있었으므로 가족의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필라델피아 아동병원에서 치료받았다. 혈액을 뽑은 뒤 22일 동안 실험실에서 처리해 T세포를 CAR T 세포로 바꾸었다. 주입 후 충격적이게도 에밀리는 심한 사이토카인 폭풍을 겪었고 혈중 TNF와 인터루킨-6 수치가 치솟았다.
다행히 그를 돌보던 의사들은 이미 자가면역질환을 다뤄 본 경험이 있었다. IL-6 같은 사이토카인의 상승이 자가면역질환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IL-6 억제제 토실리주맙(악템라)을 주입한 것이 에밀리가 사이토카인 폭풍을 이겨 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는 회복했고 그 이후로 완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오늘 스물다섯이며 15년째 암이 없다.
다른 병을 오래 다뤄 온 경험이 새 치료의 첫 소아 환자를 살렸다. 4장 §4.6.3에서 결핵 백신 BCG가 69년 뒤 방광암 백신이 된 것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다.
제시 겔싱어 — 98시간
겔싱어는 X염색체의 유전자 결함으로 생기는 희귀 대사질환 오르니틴 트랜스카바밀레이스 결핍증(OTCD)을 앓았다. 간이 단백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요소와 암모니아 수치가 올라간다. 완전 결핍인 신생아 남아는 대개 출생 며칠 안에 죽지만, 겔싱어의 OTCD는 모자이크였다. 일부 세포만 결핍된 효소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저단백 식이와 벤조산나트륨 같은 약으로 증상은 대체로 통제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1999년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OTCD를 유전자치료로 치료하는 임상시험 소식을 듣고, 열여덟이 되어 자격이 생기자마자 “아기들을 구하려고” 열심히 등록했다.
제임스 M. 윌슨이 개발한 이 유전자치료는 약독화한 아데노바이러스를 벡터로 썼다. 바이러스 복제 유전자를 없애 세포에 들어가면 막다른 길에 이르게 만들고, 그 '양성' 아데노바이러스가 정상 OTC 유전자를 발현하도록 조작했다. 1세대 벡터는 마우스에서 대사 결손을 거의 완전히 교정했으나 간독성이 관찰되었고 고용량에서 일부 마우스와 원숭이가 죽었다. 팀은 2세대와 3세대 벡터로 개선했고 3세대가 더 안전했다.
3세대 벡터로 1997년 1상이 시작되어 2년 반 동안 6개 코호트 17명이 용량을 올려 가며 치료받았다. 최고 용량 한 명을 포함해 심각한 이상반응은 없었다. 겔싱어는 18번째 환자였고 최고 용량으로 치료받는 두 번째 사람이었다.
1999년 9월 3일 제시는 3세대 벡터를 투여받았다. 그는 즉시 심한 염증 반응, 곧 사이토카인 폭풍을 겪었고 이어 다장기 부전에 빠졌다. 슬프게도 벡터를 받은 지 98시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같은 사이토카인 폭풍이 한 아이는 살리고 한 아이는 죽였다. 차이는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끌 방법이 손에 있었는지였다. 에밀리를 돌본 의료진에게는 토실리주맙이 있었고, 제시를 돌본 의료진에게는 그런 대비가 없었다.
비극은 세상을 뒤흔들었다. OTCD 시험은 중단되었고 펜실베이니아대학 팀의 관행이 낱낱이 검토되고 비판받았다. 일련의 오류가 이 시험을 괴롭혔음이 드러났다. 윌슨과 대학에 걸린 수천만 달러 규모의 돈과 명성의 영향이 증거로 드러났고, 어떤 이들은 이것을 임상시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이해충돌” 사례라 불렀다.
겔싱어 가족과 연방정부가 대학과 윌슨을 고소했다. 결국 두 소송 모두 공개 사과나 잘못의 인정 없이 합의로 끝났다. 윌슨은 5년간 임상시험 참여가 금지되었고 대학은 50만 달러의 벌금을 냈다. 그 합의의 일부로 윌슨은 제한 없이 인체 연구에 복귀하기 위한 선행 조건으로 겔싱어 시험에서 배운 교훈에 관한 논문을 쓰도록 요구받았다.
2009년, 제시 겔싱어의 죽음으로부터 10년 뒤 모든 법적 문제가 정리되자 윌슨은 「오르니틴 트랜스카바밀레이스 결핍증 유전자치료 시험에서 배운 교훈」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가) 강화된 선천면역에 대한 유전적 소인, 또는 (나) 자연 감염 상황에서 벡터에 대한 면역 기억 내지 이전의 아데노바이러스 노출이 두 번째 노출에 대한 숙주의 반응을 증폭했을 가능성. 달리 말해 겔싱어는 펜실베이니아대학이 벡터로 쓴 바로 그 아데노바이러스에 이미 감염된 적이 있었을 수 있다. 실제로 그의 중화항체 역가는 같은 용량을 받고도 뚜렷한 이상반응이 없었던 피험자보다 네 배 높았다.
시간이 치유하고 윌슨의 구원도 때가 되어 왔다. 그것은 다른 바이러스 벡터의 형태로 왔다. 겔싱어의 비극 직후 윌슨의 연구실은 더 안전한 벡터인 아데노관련바이러스(AAV)로 방향을 틀었다. AAV는 외피가 없는 작은 이중가닥 DNA 바이러스로 유전자치료 벡터로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다. AAV 벡터는 이 분야의 더딘 재탄생을 이끌었고, 250건이 넘는 시험과 두 개의 미국 승인 유전자치료에 쓰였다.
2024년까지 윌슨은 학계를 떠나 두 개의 생명공학 회사를 설립했다. 실제로든 인식으로든 이해충돌이라는 가시 돋친 문제를 제거한 것이다.
제시 겔싱어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무책임한 의학 연구의 교과서적 사례가 되었다. 과학자들이 유전자치료를 다시 만지작거려도 될 만큼 편안해지기까지 또 10년이 걸렸다.
§ 5.4.2 · Gene Therapy
유전자치료
From Berg's splice to Luxturna
CAR T 세포 치료는 유전자치료이기도 하다. CAR를 위한 바이러스 벡터가 서로 다른 여러 유전자 조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세포치료는 유전자 편집된 세포를 이용해 암과 싸운다. 중간 단계를 건너뛰고 유전자 전달을 직접 쓰면 그것이 유전자치료다.
5.4.2.1폴 버그와 유전자 이어붙이기
유전자치료의 기원은 1972년 스탠퍼드대학의 폴 버그가 재조합 DNA 기법, 곧 유전자 이어붙이기를 발명한 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6년 뉴욕시에서 태어난 버그는 브루클린의 에이브러햄 링컨 고등학교에 다녔다. 1929년에 세워진 이 학교는 보통 고등학교가 아니다.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 세 명을 배출했다. 생화학자 아서 콘버그(1959년 생리의학상), 생화학자 버그 자신(1980년 화학상), 그리고 제롬 칼(1985년 화학상)이다.
1952년 웨스턴리저브대학에서 생화학 박사를 받은 뒤 코펜하겐의 헤르만 칼카르 실험실에서 1년간 박사후 훈련을 받고, 이어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의 콘버그 그룹으로 옮겼다. 거기서 워낙 잘해 1년 뒤인 1956년 조교수로 임명되었다. 그곳에서 대장균 추출물에서 전달 RNA(t-RNA)를 발견하고, 아미노산이 단백질로 조립되기 위해 t-RNA에 붙기 전에 활성화된다는 것을 보였다. 여러 해 뒤 버그는 훗날의 재조합 DNA 기법 발명보다도 그 발견을 자기 연구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1959년 콘버그가 미생물학과 전체를 워싱턴대학에서 스탠퍼드로 옮겨 새 생화학과를 세울 때 버그도 함께 옮겨, 은퇴할 때까지 40년 넘게 스탠퍼드에서 일했다.
1967년 버그는 라호이아의 레나토 둘베코 실험실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바이러스와 암을 연구하는 기법을 익혔다. 1장 §1.5.2에서 알프레드 크누드슨이 칼텍에서 겹쳤던 그 둘베코다. 1968년 버그는 실험실을 세균 효소학 연구에서, 당시 잘 이해되지 않던 잠재적 발암 DNA 바이러스 SV40 연구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유전자가 일곱 개뿐인 SV40은 유전학을 연구하기에 단순한 모형이다. 4장에서 시풀류셀-T의 배경으로, 1장 §1.5.4에서 p53의 발견 무대로 나온 그 SV40이다.
1972년 버그는 SV40의 DNA와, 세균이나 바이러스에서 온 DNA를 공유결합으로 이어 붙여 잡종 또는 키메라 분자 — 훗날 재조합 분자로 알려진 것 — 를 만들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외래 DNA를 숙주 세포의 유전체에 도입해 외래 단백질을 생산하는 것이다.
재조합 DNA를 만드는 데는 제한효소를 비롯한 일군의 효소가 동원되었다. 우연히도 스탠퍼드 생화학과의 냉동고에는 효소가 잔뜩 놓여 있었다. 대체로 '아서 왕' 콘버그가 남긴 유산 덕이었다. 1장에서 스모트킨이 냉동고에 있던 NIH 3T3 세포를 골라 쓴 것이 행운의 한 방이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다.
처음에 버그의 그룹은 SV40의 원형 유전체를 자를 제한효소가 필요했다. 수백 개의 제한효소가 있지만 시도한 많은 것이 SV40 유전체를 너무 많은 조각으로 잘게 부수었다. 다행히 1971년 UCSF의 허버트 보이어가 약물 저항성 대장균 배양에서 EcoRI 제한 엔도뉴클레이스를 발견했다. 흡족하게도 EcoRI는 SV40의 원형 유전체를 단 하나의 고유한 자리에서 예측 가능하고 특이적으로 잘라 원형 DNA를 선형으로 바꾸었다. 과제에 필요한 돌파였다. 게다가 EcoRI는 DNA 이중가닥을 고르게 자르지 않고 어긋나게 잘라 두 개의 튀어나온 단일가닥을 만들었다.
1972년 가을 그들은 『PNAS』에 in vitro 재조합 DNA의 구축을 기술한 논문을 발표해 재조합 DNA 기법의 탄생을 알렸다. 혁명적이었지만 원래 절차는 상당히 번거로웠다. 버그의 대학원생 재닛 머츠가 DNA 전자현미경 전문가 로널드 데이비스와 함께 곧 더 단순한 프로토콜을 내놓았다. 두 DNA를 EcoRI로 절단하고 높은 DNA 농도에서 대장균 DNA 리가아제와 함께 15°C에서 배양하는 것이다.
1973년 보이어와 스탠퍼드의 과학자 스탠리 코언이 더 높은 종인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DNA를 대장균의 유전물질에 삽입했다. 코언은 두꺼비-세균 재조합 DNA에 입을 맞춰 성공을 확인했다고 농담했다.
농담은 접어 두더라도, 두꺼비 DNA는 세균 세포가 분열하면서 함께 증식할 수 있었다. 유전자를 복제하는 과학, 곧 클로닝이 태어났다.
1976년 보이어와 코언은 최초의 생명공학 회사 제넨텍을 공동 창립해 완전히 새로운 생명공학 산업을 열었다. 4장 전체의 주인공인 그 제넨텍이다.
재조합 DNA 기술에 윤리적 우려가 떠오르자 버그는 1973년과 1975년 샌프란시스코 남쪽 아실로마 회의센터에서 두 차례 회의를 공동 조직했다. 그 결과 나온 아실로마 I·II 성명은 유전적 변경에 따르는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재조합 DNA 연구를 제약하는 일련의 지침을 제공했다. 몇 해 뒤 놀랍지 않게도 버그는 1980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버그는 경력 내내 생명윤리를 지켰다. 예컨대 2018년 CCR5 유전자를 편집한 두 아기가 논란 속에 태어난 뒤, 버그는 CRISPR 개척자인 에릭 랜더,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펑 장을 포함한 많은 연구자와 함께 유전 가능한 인간 유전자 편집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요구했다.
버그는 2000년 공식적으로 실험실을 닫고 아주 활동적인 명예교수로 지냈다. 가족에게 헌신적이었고, 거의 75년을 함께한 아내 밀드러드 레비가 2021년 세상을 떠나자 삶에 대한 열의를 많이 잃었다. 유전공학의 아버지 버그는 2023년 아흔여섯으로 세상을 떠났다.
5.4.2.2운명을 바꾸려 한 사람들
재조합 DNA 기술이 나오자 과학자들이 유전자 조작을 실험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UCLA의 저명한 종양·혈액학 연구자 마틴 클라인이 '운명에 손대려' 한 첫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쿨리 빈혈이라고도 불리는 베타 지중해빈혈을 유전자치료로 치료하려 했다. 헤모글로빈의 한 소단위를 암호화하는 단일 베타 글로빈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심한 빈혈을 일으키는 유전성 적혈구 질환이다. 그래서 지중해빈혈은 유전자치료의 이상적 표적이다. 당시 겸상적혈구병과 지중해빈혈 양쪽의 범인인 베타 헤모글로빈 유전자는 이미 분리되어 있었다.
재조합 DNA 분야에 갓 들어온 클라인은 인산칼슘 형질도입으로 올바른 유전자를 혈액 세포에 전달해 베타 지중해빈혈 환자를 단번에 낫게 하려는 계획을 꾸몄다. 1장 §1.4.6.2에서 와인버그의 첫 제자 스모트킨이 쓴 그레이엄-판 데르 에브의 그 인산칼슘 요령이다. 베타 글로빈 유전자와 헤르페스 티미딘 인산화효소(TK) 유전자의 재조합 잡종을 만들었다. 마우스, 특히 골수 세포에서 시험한 결과 유전자가 소량 흡수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Nature』와 『Science』의 논문이 인쇄되기도 전에 클라인은 사람에게 유전자치료를 시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당시 아실로마 I·II 결의는 인간 유전자를 만지작거리는 데 모라토리엄을 요구했고 NIH도 미국에서 그런 시술을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클라인은 지중해빈혈 환자가 더 많고 규제가 덜 엄격한 나라로 나감으로써 그 '불편함'을 우회했다.
1980년 6월, 훗날 그가 후회하게 될 '오만과 순진함'의 순간에, 그는 이스라엘과 이탈리아에서 온 지중해빈혈 환자 두 명을 재조합 DNA로 치료했다. 모두에게 베타 글로빈만 쓰겠다고 약속했음에도 그랬다. 두 환자 모두 이상반응을 겪지는 않았지만 클라인은 UCLA와 NIH 양쪽에서 호되게 견책받고 유전자치료 분야를 떠나야 했다. 이번에는 어떤 자존심 있는 학술지도 그가 이스라엘과 이탈리아에서 모은 인체 데이터를 실어 주지 않았다.
10년 뒤 또 하나의 유전자 전달 치료가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다. W. 프렌치 앤더슨이 마이클 블리스, 케네스 컬버와 함께 1990년 NIH에서 아데노신 탈아미노효소(ADA) 결핍증을 앓는 어린 소녀 두 명을 유전자치료로 치료했다.
ADA 결핍증은 ADA 효소가 없어 아데노신을 무해한 이노신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희귀 유전질환이다. 이 해독 경로가 없으면 몸이 아데노신 대사의 독성 부산물로 막히고 면역계가 심각하게 손상된다. 중증 복합 면역결핍증(SCID)이라는 악명 높은 질환군에 속한다. 유전 결함이 잘 정의된 유전성 질환이므로 유전자치료의 좋은 후보다. 1984년까지 ADA 유전자는 범인인 20번 염색체에서 전 세계 세 그룹이 클로닝했다.
앤더슨 팀은 ADA 유전자 클로닝의 개척자 중 하나인 신시내티대학의 존 허턴에게서 ADA 유전자를 빌렸다. 앤더슨은 레트로바이러스 벡터로 재조합 DNA를 준비했다. 마우스 치료 결과는 유망해 보이지 않았지만 앤더슨과 블리스는 영장류가 사람에 더 가깝다고 판단해 원숭이 14마리로 실험을 진행했다. 그중 절반만 살아남았고 다섯 마리 중 한 마리만 양성 결과를 보였는데도 팀은 FDA 승인을 받은 뒤 1990년 9월 ADA 결핍증 소녀 두 명을 자신들의 유전자 전달 기술로 치료하는 데로 나아갔다.
유전자 치료는 2년 뒤 끝났지만 통합된 벡터와 T세포에서의 ADA 유전자 발현은 지속되었다. 결국 두 환자가 심각한 이상반응을 겪지는 않았지만, 앤더슨의 유전자 전달 치료의 효능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두 환자가 ADA 효소를 폴리에틸렌글리콜 고분자로 감싼 약 PEG-ADA의 혜택도 동시에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앤더슨을 '유전자치료의 아버지'라 불렀다. 화이트헤드 연구소의 리처드 멀리건은 그의 시험을 “깨끗하고 정결한 유전자치료”가 아니라 “홍보용 묘기”라 불렀다.
그리고 갓 태어난 유전자치료 분야가 겨우 나아가고 있을 때, 1999년 제시 겔싱어의 죽음으로 그것은 급정거했다.
5.4.2.3오늘의 유전자치료
과학자들은 대체로 유전자치료에 더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예컨대 최초의 src 종양유전자를 발견한 해럴드 바머스가 1993년부터 1999년까지 NIH 원장이던 시절, 그는 늘 인간 유전자치료에 신중을 권했고 과학이 더 성숙할 때까지 사람으로 가지 말라고 실천가들을 만류했다. 1장 §1.4.5에서 영문학 석사로 종양유전자를 찾아낸 그 바머스다.
반면 임상의들은 인간 유전자치료를 밀고 나가는 데 더 적극적이다. 날마다 쇠약하게 만드는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마주해야 하고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이 긴장이 이 절 전체를 관통한다.
최초의 FDA 승인 유전자치료는 2017년에 왔다. 스파크 테라퓨틱스/노바티스가 개발한 보레티진 네파르보벡(럭스터나)이다. 망막색소상피(RPE)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생기는 희귀 유전성 시력 상실인 유전성 망막이영양증(IRD) 치료에 쓴다.
럭스터나는 RPE65 유전자의 상보 DNA와 다른 조절 요소를 담은 단일가닥 DNA 분자다. 아데노관련바이러스 2형(AAV2) 벡터를 이용해 정상 RPE 유전자 사본을 도입해 양대립유전자 돌연변이를 보완한다. 그 결과 생산된 정상 RPE65 단백질이 이성질화 가수분해효소로 작용해 트랜스-레티닐 에스터를 광수용체 옵신의 천연 발색단인 11-시스-레티날로 전환함으로써 시력을 회복시킨다. 유리체절제술 후 망막하 주사로 투여한다.
바이러스 벡터의 잠재적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유전자치료 분야는 교정 유전자를 세포로 실어 나르는 '택시' 역할을 할 비바이러스 벡터를 실험해 왔다. 유기 형광 벡터, 금속 착물, 양자점, 금 나노입자, 그리고 더 최근에 더 인기 있게는 지질 나노입자(LNP)가 있다.
암을 치료하는 최초의 유전자치료는 CAR T 세포 치료였다. 노바티스의 킴리아와 카이트의 예스카타로, 둘 다 2017년 혈액암 치료로 FDA 승인을 받았다. T세포의 유전자를 조작한다는 점에서 CAR T 세포 치료는 유전자치료의 한 형태다. 유전자치료 임상의 대다수가 암에 집중되어 암이 일차적 조사 영역이 되었다.
– $4M+그 제품들의 가격 범위. CAR T 예스카타 한 번의 치료가 373,000달러다.
오늘까지 FDA는 수십 개의 유전자치료를 승인했다. 사렙타의 에테플리르센은 디스트로핀을 만드는 유전자의 일부가 없거나 돌연변이되어 생기는 유전질환 뒤셴 근육병 치료용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다. 2장 §2.1.5.2에서 HDAC 억제제 지비노스타트가 같은 병 치료로 허가된 그 뒤셴이다. 누시네르센(스핀라자)은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용이고 나머지는 암, 감염병, 희귀질환용이다.
현재 마이크로RNA, 짧은 간섭 RNA, 짧은 헤어핀 RNA,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 CRISPR/Cas9, 플라스미드 DNA 같은 다양한 유전자치료가 악성 종양, 에이즈, 심혈관질환, 유전질환에서 제한적인 잠재력을 보였다.
그런데 원저자는 이 장을 밝은 전망으로 닫지 않는다. 2025년 7월 22일 데이터 마감 기준으로 사렙타의 약으로 치료받은 뒤 여덟 명의 환자가 사망했다. 앞서 보고된 급성 간부전 사망 두 건을 제외하면 나머지 여섯 건은 모두 뒤셴 치료와 무관한 것으로 판정되었다고 회사는 밝혔다. 다만 이 약물명 표기에 대해서는 주기를 참고할 만하다.
그럼에도 이 불행한 전개는, 최근 유전자치료와 연관된 몇몇 다른 사망과 더불어 유전자치료의 안전성에 대한 물음을 다시 촉발했다. 안전성 우려와 나란히, 확장성의 장애물과 제조에 따르는 하늘 높은 비용 때문에 일부 투자자가 CGT 사업에서 발을 빼고 있다.
유전자치료를 더 안전하고, 더 유효하고, 더 감당할 만하게 만들기까지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1장이 「암은 유전자의 병이다」로, 2장이 「피로스의 승리」로 닫혔다. 3장과 4장은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5장은 처음으로 아직 아니다라고 명시적으로 적는다. 앞의 네 장에서 값은 회사의 대차대조표에 기록되었지만, 이 장에서 값은 한 사람당 매겨진다.
부록 1 · The delegation
위임의 계보
Who does the actual work
이 장을 두 번 읽으면 네 절이 모두 같은 형식을 갖고 있음이 보인다. 약은 표적을 직접 처리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기계를 표적 앞으로 데려다 놓거나, 그 기계를 막고 있던 잠금을 푼다. 그것이 이 장이 앞의 네 장과 갈라지는 지점이다. 흩어진 것을 한자리에 모으면 이런 표가 된다.
| 양식 | 누가 일하는가 | 약은 무엇을 하는가 | 대가 |
|---|---|---|---|
| 분자접착제 glue degrader | 26S 프로테아좀 | 표적 단백질과 E3 리가아제의 두 표면 사이에 끼어 근접을 만든다. 링커가 없어 작고 약물 같다. | 거의 모두 우연으로 발견되었다. 합리적 설계가 어렵다. |
| PROTAC | 26S 프로테아좀 | 두 리간드를 링커로 묶어 표적과 E3를 강제로 붙인다. 설계할 수 있다. | 분자가 크고 무겁다. 3상에서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
| 면역관문 억제제 | T세포 | CTLA-4·PD-1이라는 브레이크의 잠금을 끊는다. 죽이는 일은 T세포가 한다. | 어떤 면역치료든 이득을 볼 환자는 12명 중 한 명. 선천적·획득 저항성이 남는다. |
| CAR T | 개조된 T세포 | 환자의 T세포에 키메라 항원 수용체 유전자를 넣어 종양 항원을 직접 인식하게 만든다. | 사이토카인 폭풍. 제작에 두 달. 한 번에 373,000달러. 고형암에는 아직 통하지 않는다. |
| 유전자치료 | 세포 자신 | 바이러스 벡터나 지질 나노입자로 정상 유전자를 넣고 세포가 스스로 단백질을 만들게 한다. | 벡터에 대한 면역반응. 제시 겔싱어의 98시간. 27만 5천 달러에서 400만 달러 이상. |
표를 세로로 읽으면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첫째, 위임이 깊어질수록 대가가 커진다. 분자접착제는 리핀스키의 5의 법칙을 지키는 작은 알약이지만, 유전자치료는 살아 있는 벡터이고 값은 백 배가 넘는다. 둘째, 위임이 깊어질수록 실패의 양상이 달라진다. 앞의 두 줄은 효능이 부족해 실패하고, 뒤의 세 줄은 면역계가 과하게 반응해 실패한다. 사이토카인 폭풍은 약이 듣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잘 들어서 생기는 재난이다.
부록 2 · Price per patient
한 사람당 값
What a living drug costs
3장의 부록 2가 도그마의 값을 회사의 대차대조표로 계산했다면, 이 장은 처음으로 환자 한 사람당 값을 적는다. 이 장의 양식들이 대량 생산되는 알약이 아니라 개별 환자를 위해 제작되는 살아 있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 항목 | 금액 | 비고 |
|---|---|---|
| 예스카타 1회 치료 | $373,000 | 환자 한 사람의 T세포를 뽑아 개조해 되돌려 주는 데 드는 값. 제작에 두 달이 걸릴 수 있다. |
| 승인된 CGT 41종 | $275,000 – $4M+ | 2025년 2월 기준. 이 범위의 위쪽은 웬만한 주택 여러 채 값이다. |
| BMS → 셀진 | $74 B | 2019년. 분자접착제 분해제 파이프라인을 얻기 위해. 2023년 레날리도마이드 매출 110억, 포말리도마이드 34억 달러. |
| 길리어드 → 카이트 | $12 B | 2017년 8월. 예스카타 승인 두 달 전. 에샤르의 스톡옵션 7,200만 달러. |
| BMS → 메다렉스 | $2.4 B | 2009년. 이필리무맙과 니볼루맙이 모두 이 회사에서 나왔다. |
| 화이자 × 아비나스 | $2.4 B | 2021년 ARV-471 개발·상업화 계약. 주가 $20 → $108 → $7. |
| 노바티스 → 세인트주드·주노 | $12.5 M | 2015년. CAR 특허 소유권을 둘러싼 3년 가까운 분쟁의 합의금. |
| 펜실베이니아대학 벌금 | $0.5 M | 겔싱어 사건. 윌슨은 5년간 임상 참여 금지. 공개 사과는 없었다. |
| 키트루다 연매출 | $29.5 B | 2024년. 2018년부터 2025년까지 최다 판매 약. 2028년 특허 만료를 앞두고 머크는 6,000명을 감원 중이다. |
표의 위 두 줄과 아래 일곱 줄은 단위가 다르다. 위는 한 사람이 치르는 값이고 아래는 회사가 치르는 값이다. 그리고 이 장의 마지막 문단이 지적하듯, 안전성 우려와 나란히 확장성의 장애물과 하늘 높은 제조 비용 때문에 일부 투자자가 이 분야에서 발을 빼고 있다.
2장의 「자연이 내주는 양」에서 트라베크테딘 1그램에 멍게 1,000킬로그램이 필요했다. 그 문제는 결국 더 상류의 재생 가능한 중간체를 찾아 풀렸다. 그런데 CAR T의 원료는 환자 자신이므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갈 곳이 없다. 원저자가 §5.4.1.4에서 '기성품(off the shelf)' CAR T — 환자 대신 건강한 공여자의 면역세포를 쓰는 방식 — 를 언급하는 것이 그래서다. 그렇게 하면 건강한 공여자 한 사람에게서 다량의 동종 CAR T 세포를 만들 수 있고, 무엇보다 대규모 생산으로 CAR T 치료의 비용을 낮춘다.
주기 · On the source text
원서 표기에 관하여
이 문서는 인명·연도·수치를 원서 표기에 따랐다. 다만 원서 안에서 서로 어긋나거나 오기로 보이는 대목이 몇 군데 있다. 임의로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옮긴 뒤 여기에 표시해 둔다.
- 마틴 클라인의 연대
- §5.4.2.2는 클라인이 “1990년대 말(in the late 1990s)” 운명에 손대려 한 첫 사람 중 하나였다고 적고, 같은 문단에서 “1980년 6월”에 두 환자를 치료했다고 적는다. 10년 이상 어긋난다. 앞뒤 문맥과 뒤이은 앤더슨의 1990년 시술 서술을 보면 1970년대 말~1980년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서는 연대를 특정하지 않고 옮겼다.
- 카필조밉의 승인 연도
- §5.1.2.3은 암젠의 카필조밉을 “Kyprolis, 2021”로 적는다. 그런데 같은 절과 §5.2에서 크루스가 1990년대 말 이 물질을 발견했고 프로테오릭스가 2009년 오닉스에, 2013년 암젠에 인수되었다고 서술한다. 인수로부터 8년 뒤 승인이라는 서술은 앞의 서사와 잘 맞지 않는다. 본문에서는 원서 표기임을 밝히고 옮겼다.
- 사렙타의 약물명
- §5.4.2.4는 여덟 명의 사망을 “사렙타의 에테플리르센(엑손디스)”과 연결하고, 이를 유전자치료의 안전성 문제로 서술한다. 그런데 같은 문단이 에테플리르센을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로 정의한다. 안티센스 올리고와 바이러스 벡터 유전자치료는 서로 다른 양식이며, 급성 간부전은 통상 후자와 연관되는 이상반응이다. 약물이 뒤바뀌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나 본 문서에서 단정하지 않고 원서 표기를 따랐다.
- 인간 유전자 수 — 1장과 어긋난다
- §5.4.2.1은 “인간 유전체에는 21,000개의 유전자가 있다”고 적는다. 1장 §1.4.5는 “단일 인간 세포에 대략 5만 개의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적고, 같은 1장 §1.4.6은 “인간 세포에는 2만 개가 넘는 유전자가 있다”고 적는다. 1장이 스스로 어긋나며, 5장의 숫자는 그중 뒤쪽과 부합한다.
- 바르샤프스키의 노벨상 배제
- §5.1.2.4는 바르샤프스키가 “어찌 된 일인지” 2004년 노벨상을 나누지 못했고 위원회가 로즈를 세 번째 수상자로 골랐다고 적는다. 1장의 「노벨상 원장」에 항목을 더할 만한 서술이나, 원서는 그 이상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본문에서는 원서 서술을 그대로 옮겼다.
- 2025년 노벨상
- §5.3.3은 2025년 노벨상이 조절 T세포 연구의 메리 브런코, 프레드 램스델, 사카구치 시몬에게 돌아갔다고 적는다. 원서가 인쇄된 시점에 가까운 최근 사건이므로 본문에서도 원서 표기를 그대로 옮겼다.
- 단백질 항상성의 표기
- §5.1.2는 단백질 항상성을 “protein hemostasis”(지혈)로 두 차례 적는다. 같은 장 뒷부분에서는 “cellular protein homeostasis”(항상성)로 올바르게 적는다. 본문에서는 항상성으로 옮겼다.
- 기타 표기
- 기데온 그로스를 Gross와 Goss로 번갈아 적은 것, 벱데제스트란트의 코드를 ARV-471과 AR-471로 섞어 적은 것, 풀베스트란트를 fulvestran으로 적은 것, 겔싱어 시험의 외과의사 이름 Stephen Reaper, 존 콘포스를 Conforth로, 허 젠쿠이를 Jianqui He로, 헝가리를 Hungry로, 밀레니엄을 Millenium으로, 샌타모니카를 Sant Monica로, 사렙타를 Serepta로 적은 것 등 다수의 철자 오류가 있다. 오르가논 인수액을 3장은 144억, 5장은 140억 달러로 적는 차이도 있다.
참고
원주에 관하여
원서 제5장에는 56건의 원주가 달려 있으며, 1장과 달리 별도의 일반 독서목록은 없다. 1991년 리우와 슈라이버의 『Cell』 칼시뉴린 논문에서 시작해 2025년 CGT 안전성 보도까지 이어진다.
원주 가운데 이 장의 서사를 직접 뒷받침하는 단행본이 넷 있다. 배리 워스의 『A Billion-Dollar Molecule』(1994), 찰스 그레이버의 『The Breakthrough: Immunotherapy and the Race to Cure Cancer』(2018), 마이클 킨치의 『The End of the Beginning: Cancer, Immunity, and the Future of a Cure』(2019), 그리고 에럴 프리드버그의 폴 버그 전기 『A Biography of Paul Berg』(2014)다. 앨리슨의 심사자 일화와 준을 둘러싼 '암 정치'가 각각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에서 왔다.
이 문서에서 인용한 문장·연도·수치는 모두 첨부된 원서 PDF 제5장 본문에서 확인한 것이다. 다만 원주에 실린 개별 논문의 서지 사항은 원서를 직접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